yuna's lifelog


빛과 어둠의 시간들


블로그를 30대 초반이었던 2003년 부터 써왔는데 이 글을 쓰면서 20년 만에 그때의 글들을 뒤져봤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도 삶은 쉽지 않았다.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내향성 기질을 타고났고, 몸을 움직이기 보다 오랜 시간 앉아서 머리를 짜내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직업을 가졌다. 항상 마음이 조급해서 집까지, 주말까지 일을 끌고 가 밤늦게까지 일하기 일쑤였고, 스트레스를 술 담배 같은 걸로 푸는 나쁜 습관에 일찌감치 빠져있었다. 일하면서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연애를 할 때는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자주 화가 났다. 반복적으로 상처받고 상처를 줬고, 혼란스러웠고, 불안했고, 나중엔 체념했다.

그때도 잘 살고 싶은 마음은 지금 못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으로 했던 야근과 주말 근무들은 사실 내 일을 꽤 좋아했기 때문이었고, 사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하는 걸 좋아했고, (실패했지만) 몇번의 금연을 했고, 뭐든 찾아 읽고 시도해봤다. 하지만 나아지는 것 같았다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지옥같이 어두운 시간들과 에너지가 넘치고 온 세상이 빛으로 가득한 것 같은 시간들이 끊임없이 교차했고, 그 굴레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암 진단 후에는 가끔이나마 비치던 빛 마저 사라졌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여러가지 약을 먹어보기도 했지만 머리가 멍해지거나 긴 시간 잠을 자거나 변비가 생기거나 하는 것 외에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삶이 뭔지, 왜 사는지 몰라서 괴로운데 약으로 해결하려고 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그때는 뭐라도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뭘 해도 ‘이게 맞나’ 하는 의구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불한당

이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불한당은 ‘불경을 한글로 옮기는 모임’이다. 2013년에 생겼다고 들었다. 도법스님과 윤구병 선생님 외 도반들이 <법성게>라는 불교 경전을 공부하며 나눈 대화를 엮은 <스님과 철학자>라는 책이 2016년 말 출간됐다. 내가 불한당에 들어간 것은 2016년 5월이었다. 2주에 한번 도법스님과 도반들이 모여 법성게, 반야심경 등의 경전에 대해 토론하고, 저마다 자신의 말로 경전을 풀어서 썼다.

도법스님은 내가 알던 어떤 어른과도 달랐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른들, 특히 선생님들과 잘 지내지 못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어쩐지 불편하고 무서웠다. 도법스님을 만나고 한참 지난 후 그 이유를 알았다. 긴 세월 동안 싫고 좋음, 맞고 틀림, 네편과 내편의 판단을 너무나 많이 해온 사람들한테서 보이는 ‘판단하는’ 혹은 ‘나는 이런 사람이야’하는 느낌과 태도. 도법스님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스님은… 나무나 물 같이 그 자리에 계셨다.

스님은 스스로를 스승이 아닌 ‘같이 걸어가는 도반’이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모임에서도 우리를 이끌거나 가르치지 않으셨고, 필요할 때 가끔 질문을 던지셨다. 그 질문들은 그때까지 꽉 막혀있던 논의나 시야를 넓고 환하게 밝혀주곤 했다. 불한당 도반들은 나와는 나이도, 해온 일도, 감성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었다. 불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처음 몇 달 동안 그저 다른 도반들과 도법스님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건 마치… 여러 권의 흥미로운 책을 한꺼번에 읽는 것처럼 머리가 핑핑 도는 느낌이었다. 이후 뭘 좀 알게 되었다고 토론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역시, 도반들의 이야기에서 매번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을 얻곤 했다(불한당 모임의 기록들은 블로그에 #불한당 태그로 남겨두었다).

불한당 모임은 힘들었던 삶을 지탱해준 기둥 중 하나였다. 정기적으로 도법스님을 뵙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위안을 얻었고 수행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일상에서 지친 마음과 떠오르는 여러 질문들을 안고 도법스님과 도반들을 만나러 갔고, 모임에서 들은 붓다와 스님과 도반들의 말들을 가슴에 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리고 모임에서 알게 된 경전과 책, 자료들을 찾아 읽었다.

도법스님의 불교

도법스님이 말씀하시는 불교는 그전까지 막연히 알고 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불교는 한자로 쓰여진 뜻모를 주문을 외우고, 불상에 절을 하고,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채 긴 시간을 수행해야 겨우 해탈에 이를 ‘수도 있다’는, 흥미롭지만 아주 어렵고 힘들고 멀어보이는 그런 것이었다. 불교 경전이나 해설서를 읽어봐도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기 힘들었고, 이게 정말 삶에 도움이 되나 싶었다. 그런데 도법스님은 불교가 ‘지금 바로 여기에서 실현되는 가르침’이라고 하셨다. 붓다는 자신이 얻은 깨달음이 ‘누구에게나 말로 설명할 수 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도법스님은 붓다가 이야기한 연기, 공, 무아의 진리를 나처럼 불교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해주셨다. 도법스님께 ‘무아’에 대해 질문했던 날이 기억난다. 나는 “스님, 어떻게 내가 있는데 내가 없어요?“라고 물었고, 도법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
“불교를 공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관념에 빠져 힘들어하는데, 그건 그냥 관념일 뿐이야. 중요한 것은 실제 삶 속에서, 사람들과의 다양한 관계에서 나를 낮추고 상대에게 베푸는 것이지. 그게 진짜 ’나를 내려놓는’ 일이야.”

도법스님은 나같은 사람들이 질문을 할 때마다 지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나는 있다. 다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분리독립되고 고정불변하는 나라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라고 말씀해주셨다. 나도 나처럼 헛갈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도법스님의 이 말씀을 전달하곤 한다.

’윤회‘에 대한 질문에 하셨던 대답도 생각난다(영상 참고). 나의 다섯 고양이 중 버디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틀 뒤인 2024년 7월 25일, 조계사 불교대학에서 불한당 모임이 있어서 도법스님을 뵈러 갔었다. 도법스님은 불교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금강경 강의를 막 끝내신 참이었다. 어떤 학생이 윤회에 대해 질문을 하셨고, 그때까지 강의를 녹화하던 카메라가 꺼진 상황이라 내가 급하게 휴대폰 카메라를 켜 도법스님의 답변을 영상으로 찍었다. 그날 나는 좀 울었다.

불한당에 들어간 후 처음 찾아 읽었던 도법스님의 책이 <지금, 당장>이었다. 그때의 발췌를 지금 돌아보니 불교의 핵심은 이미 그 책에 다 들어있었다. 도법스님이 말씀하시는 불교의 핵심 중 또 하나는, 우리 안에 이미 붓다의 마음이 갖추어져 있고, 우리는 그것을 깨닫고 그대로 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도법스님이 주창하신 ‘붓다로 살자’ 운동은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절대적인 존재 앞에 엎드리라는 게 아니고, 열심히 살아 저렇게 되라는 것도 넘어서, 너와 너를 둘러싼 다른 이들 모두 본래 거룩한 존재이니 그렇게 살면 된다는 불교의 가르침.
단순하고 깊고 아름다웠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경전을 한글로 옮기는 모임이라고는 하지만 도법스님은 어떤 경전 보다도 인간 붓다의 삶 자체를 중요시하셨다. 도법스님이 가끔 이야기해주시는 붓다 생전의 이야기들은 어렸을 때 할머니가 해주신 옛날 이야기처럼 재밌고 감동적이었다. 도반들의 추천으로 조계종출판사에서 나온 <부처님의 생애>라는 책을 읽었다. 붓다의 삶을 소설처럼 써내려간 그 책을 킥킥거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읽어내려갔다. 종교고 철학이고를 떠나 몇천년 전에 살았던 한 인간이 가졌던 고뇌가 내 안에서 이렇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데 놀랐고, 그가 찾아낸 해답을 좀더 원형에 가깝게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바램을 충족시켜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서양 사람들이 쓴 불교 책이었다. 카렌 암스트롱의 책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에는 붓다가 왜 출가를 했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깨달음을 얻었는지, 붓다가 말한 깨달음은 무엇인지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여있었다.

도법스님을 본격적으로(…) 존경하게 된 것 역시 도법스님의 삶에 대해 알게 되면서 부터였다. 불한당 도반이었던 김왕근 선생님이 2017년 도법스님 평전 <길과 꽃>을 출간했다. 한 인간으로서의 도법스님의 삶을 따라가며 '사람이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도 도법스님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불한당에서 내가 얻은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이 마음이다. 삶이 의미 없고 고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 마다, 일터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인류애를 잃어갈 때 마다, 모든 존재를 고통에서 구제하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았던, 주도면밀하고, 자상하고, 지치거나 포기할 줄 몰랐던 인간 고타마 싯다르타를 생각했고, 도법스님을, 도법스님의 삶을 생각했다.

캄캄한 동굴 안에서 멀리 아주 작은 불빛을 보았다.
그전에는 절에 가서 불상 앞에서 절을 하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았었는데 붓다의 삶과 그가 남긴 것들을 알게 된 후로는 불상을 보면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다. 그가 인류에게, 아니 내게 알려준 것들이 고마워서. 깨닫고 나서 혼자만 잘먹고 잘산 게 아니라 평생을 바쳐 그걸 다른 사람에게 알려준 게 너무 고마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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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브런치에도 같이 올리고 있다.
* 불한당 모임은 얼마 전 불교 경전이나 관련 책들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으로 성격을 바꿨고 이름도 ‘소소당’ - 소 타고 소 부리는 사람들의 모임 - 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