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로 살자] 3. 개껌던지기와 위빳사나 명상
붓다의 가르침은 쉽고 명확하고 현실적이라는데 현실의 삶은 여전히 어려웠다. 붓다와 도법스님의 삶을 보며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고, 붓다가 말한 무상과 무아, 연기의 진리와 사성제, 팔정도 같은 수행의 원칙과 방법들에 대해 공부하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 두려움과 무기력이 덜해지긴 했지만 ‘이것으로 충분한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당장 일터에서 고객이나 동료와 문제가 생길 때 또다시 이전처럼 마음이 무너졌다. 모든 게 무너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계속해서 나를 물고늘어졌다. 두려움을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들여다보는 것조차 힘들 때가 많았다. 처음의 물음, ‘왜 살아야 하는가’로 끝없이 되돌아갔다. 이렇게 힘들게까지, 어째서, 살아야 하는가. 알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더이상 생각나지 않을 때도 많았다. 무섭고도 익숙한 검은 생각들이 항상 거기에서 내가 발을 헛디디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개껌던지기 – 생각의 흐름을 끊다
그러다 2018년 초 불한당 도반의 언급으로 소공 김영식님의 페이스북을 알게 되었고, ‘무아를 증득하는 방법’이라는 ‘개껌던지기’, 즉 사고를 끊는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다루기 가장 쉬운 유형의 고통에 적용해보았다.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에 대한 시비호오(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의 생각이 일어날 때 마다 특정한 단어를 읊조림으로써 생각의 흐름을 끊는 것이다. 어떤 단어도 괜찮다고 하는데 나는 ‘개껌’을 사용해봤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단순한 방법은 내게 굉장히 빠른 효과를 가져왔다. 며칠 만에 말 그대로 뇌를 세척한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고, 일상적인 에너지 레벨이 높아졌다.
이후에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대상으로 했다. 나는 이런(남들보다 잘난...) 사람이고, 나의 삶은 이래야(남들과 달라야...) 하고, 나는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고 등등 나에 관한 생각이 들 때 마다 개껌을 마구 던졌다(그림 참고). 겸허하게 혹은 겸손하게 살려고 노력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런데 그 노력은 여전히 남과 나를 구분짓고 상대를 어떻게 대할까 생각하는 일이었다. 이 방법은 아예 그런 구분 자체가 일어날 때 마다 그냥 생각을 끊는 것이다. 이건 조금 더 오래 걸렸지만 되더라. 지금 생각하니 이것은 ’무아‘를 삶에 적용하는 과정이었다.

이렇게 생각을 끊어보면서 그동안 얼마나 쓸데없는 곳에 뇌를 낭비하며 살아왔는지를 알게 됐다. 기억도 안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잠자는 시간 외에는 한시도 멈추지 않고 자동으로 돌아갔을 생각들. 생각이 삶의 모든 것이라고 여겼고,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고 믿어왔고, 많이 하면 할 수록 좋은 것인 줄 알았는데, 사실 생각은 삶의 전부도 아닐 뿐더러 내가 겪어온 불필요한 고통이 모두 여기서 오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생각에 휘둘리는 것이 고통의 원인이었다. 이 경험을 시작으로 이후의 크고 작은 경험을 통해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점점 더 명확히 알게 된다.
생각 이전의 것들
“붓다가 말한 것은 사성제 팔정도를 아무리 정확하게 이해하여도 몸의 훈련을 통하여 무의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출처 : 소공님 블로그
개껌던지기로 사고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는 것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사고의 기능이 필요할 때는 사용하고 불필요한 흐름은 차단해버리는 식으로 내멋대로 해석해 사용했다. 사람마다 다를 것 같기도 한데 내 경우에는 타인과의 관계나 물리적이고 구체적인 환경에서 오는 불편한 느낌이나 감정은 꽤 쉽게 조절되는 편이었다. 원인이 뭔지 추론할 수 있거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 명시적인 사고에 기반한 대부분의 미약한 고통도 이 방법으로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몇 년 간 심한 우울증을 앓으면서 우울의 고통에는 의식이나 사고가 닿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생각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물리적인(육체적인) 상태에서 오는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서 솔솔 피어나거나 졸졸 새어나오는 것 같은 어떤 느낌들. 그것은 한순간 모든 것을 장악했다. 분명히 내 뇌에서 일어나는 일일 텐데 구체적인 생각이 아니기 때문에 끊거나 제어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죽음이나 애착하는 대상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공포 같은 좀더 본능적인 감정들은 또 어떤가. 이런 것들도 훈련을 통해 ‘건너갈’ 수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명상을 시작한 데는 이런 무의식 수준의 흐름을 좀더 제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소공님 블로그에서 '개껌던지기로 생각을 끊어내는 연습 외에 생각이 없는 상태로 일정 시간을 '홀로 버티어 보는' 연습을 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글을 읽었다. '두 가지 연습 중 앞에 것은 깊이(파괴력)를 만들고 뒤에 것은 넓이(복원력)를 만든다'고 했다. 일정 시간을 홀로 버티어 보는 연습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명상이 그런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던 차에, 불한당 도반 중의 한 분이 ’위빳사나 명상‘에 관한 얘기를 해주셨다. 붓다 자신이 설한 방법이면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이 행해오며 검증된 명상 방법이라고 했다. 일단 유발 하라리가 추천한 책을 사서 읽었다. 그리고 4월에 담마코리아의 위빳사나 10일 코스를 다녀왔다.
위빳사나 – 반응을 끊다
개껌던지기가 생각의 흐름을 끊는 연습이라면 위빳사나는 반응을 끊는 연습이다. 위빳사나 명상은 감각을 ‘있는 그대로 지켜봄’으로써 나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던 생각 이전의 감각과 그로 인한 사고의 흐름을 좀더 미세하게 알아차리게 해줬다. 무의식적으로 반응해왔던 무수한 감각을 들여다보며 그것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것. 그래서 그 무의식적 반응이라는 습관의 고리(=sankhara. 조건 지어진 정신작용)를 끊어 평정심을 기르는 것이 위빳사나라는 훈련이다.
위빠사나를 하면서 내 안에 나도 잘 몰랐던 무수한 감각 혹은 느낌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불편함과 고통 같은 것들을 들여다보았고, 나중에는 원초적인 기쁨과 충만함, 일렁이는 빛 같은 것도 보았다. 전부터 어렴풋이 느껴왔던 것이기도 하지만 위빳사나를 하면서 더 잘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어쩌면 내가 이 몸뚱이로 존재하기 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굳이 ‘나’와 ‘나 아닌 것’으로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한 무수하고 다양한 존재와 기억들이 내 안에 명시적인 사고 이전의 형태로 존재했다. 그 무수한 감각과 기억들에서 어떤 감정들이, 어떤 사고가 엮여나왔으며, 거기서 또 어떤 ‘증세’들이 생겨났을 것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생겨났다 사라지고, 거기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라는 인간은 어떤 원리나 원칙을 스스로의 몸과 정신에 적용하거나 실험해 이해하거나 깨닫고 그것을 차곡차곡 쌓아가는데, 심지어 그렇게 쌓아놓은 이해, 맞고 옳다고 생각했던 원리나 원칙들마저도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거나, 거기에는 맞고 여기에는 틀렸다. 더이상 내가 ‘이런 사람’이고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자신할 수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고, 어느 누구도, 어떤 삶도, 어떤 이름이나 개념으로 고정시키거나 고정된 잣대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전에 이미 숱하게 말로 배웠던 것들인데, 몸을 들여다보며 진짜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길로 가면 되겠다
지독하던 우울의 강도와 지속 기간이 점점 짧고 약해졌고, 일상에서 순수한 형태의 기쁨을 더 자주,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다. 평생을 '이게 맞을까, 길을 모르겠어, 뭔가 놓치고 있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제서야 ‘그래, 이렇게 살면 되겠어, 이렇게 계속 걸어가면 되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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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브런치에도 같이 올리고 있다.
* 개껌던지기 외에도 소공 김영식님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려주시는 글들 덕분에 나는 붓다가 말한 진리를 좀더 납득하기 쉬운 현대의(?) 언어로,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기록들은 내 블로그에 #소공 해시태그로 기록해두었다.
* 소공님의 글들은 2020년 8월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도법스님께 보냈고, 전자책 출간되길 기다리다 안되겠어서 종이책을 샀고, 이후에 전자책도 샀고, 종이책은 나의 요가 선생님께 드렸다. 얼마전 아빠한테도 보냈다.
* 불교 경전을 공부하는 것 외에 '수행'이나 '명상'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텐진빠모 스님의 책을 읽으며 잘 알 수 있었다. 발췌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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