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로 살자] 4. 고통의 이해 - 진동과 소음
이 글은 2019년 6월 8일의 기록이다. 4년 후인 2023년 8월 손을 보아서 불한당 모임(불한당 모임에 대해서는 2번째 글 참고)에서 공유했고, 이번에 다시 뒷부분을 조금 고쳤다. 이 경험은 그전까지 경전의 텍스트로만 이해해온 ‘공’의 개념을 온 몸으로 이해하게 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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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봄 위빳사나 명상을 시작했다. 명상 중에 몸의 미세한 진동을 점점 느끼게 되었고, 1년쯤 지나면서 부터는 명상을 하지 않을 때도 이 진동을 느끼곤 했다. 몸의 내부에서 오는 진동인지 외부의 진동인지 명확히 구별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다. 명상 선생님과 도반들에게 여쭤보니 명상 중 흔히들 겪는 일이라길래 신기해했고 조금 즐기기까지 했다. 이 밖에도 명상을 하는 사람들에겐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든가 눈 앞에 화려한 컬러나 빛, 풍경이 펼쳐지는 등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얘기를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식구가 많고 한밤중까지 유난히 쿵쿵거리며 걷는 위층 덕분에 골치를 썩는 나날이 계속됐다. 문 앞에 편지를 붙이기도 했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부탁을 하기도 했는데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다. 소음에 이웃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더해져 소음은 점점 크게 느껴졌고, 그에 더해 오래된 집에서 계속 비가 새고 전기가 나가는 등의 안전 문제까지 더해지자 모든 소리가 공포로 다가왔다.
어느날 부터는 집 전체가 울리는 진동이 느껴져서, 급기야 일하다 말고 집을 뛰쳐나갔다. 이게 그냥 내 느낌인지 집에 문제가 있어서 진동이 발생하는 건지 조차 알 수가 없어서, 내가 아는 가장 조용한 장소인 뒷산 무덤가에 올라갔다. 거기서도 진동이 느껴졌다. 마치 땅 덩어리 전체가 낡은 버스처럼 덜덜거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먼 길거리와 주택가의 소음이 바로 옆에서 나는 것처럼 들려왔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거나 밤을 새웠거나 둘다 했거나 했을 때처럼 땅이 흔들리는 건지 내 몸이 떨리는 건지 모를 진동이 느껴졌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무섭고 불안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다가 밤늦게 들어가 지쳐 잠들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설상가상으로 오른쪽 겨드랑이 밑의 근육이 저절로 혼자 움직이는 현상까지 생겼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파킨슨병으로 몸이 멋대로 떨리고 마비되는 증상이 있었던 터라 나는 이게 파킨슨의 초기 증세라고 거의 확신했고, 두려움에 떨며 동생과 아빠한테 전화를 해 엄마의 증상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그런데, 몇년간 두개내저압증으로 심하게 고생한 동생이 자신은 이런 증상을 이미 여러번 겪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흔하게 겪는다는 그 현상들도 겪었다고 했다. 그리고 의사들은 이걸 '뇌 관련 질환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들'이라 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하는 동생은 처음에는 너무 무서웠지만 살다보니 그러려니 한다고 했고, 근육이 멋대로 떨리는 그 증상은 '연축'이라고 했으며, 그러다가 그게 또 사라지기도 하고, 사는 데 별 지장은 없다고 했다.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명상을 하며 느낀 진동과 집에서 느낀 진동소음, 무덤가에서 느낀 진동은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느낌 자체는 거의 같았는데, 나는 전혀 상반된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현상이나 환각이 보이는 증상도 그런 것이었을까 생각하다 보니, 우리가 두려워하고 없애고 싶어하는 '질병'과 명상 중 '신기한 체험'이라며 좋아하던 현상들의 경계가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쩌면 같은 현상에 이런저런 다른 이름과 좋고 나쁨의 꼬리표를 붙이고 그 생각에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틀쯤 지나 근육의 '연축'은 없어졌고, 진동은 간간이 계속 느껴지지만 무섭고 불안한 마음은 없어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며칠 후 '머리를 비우는 뇌과학'이라는 책을 펼쳤을 때 이런 얘기가 나왔다 :
"발작이 일어나기 직전, 나는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알지 못할 방식으로 행복감을 느끼지. 나 자신과 세계 전체가 완전히 조화를 이루었음을 느껴."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 왜냐하면 당시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뇌전증이 환자가 경련을 일으키고 입에 거품을 문 채 바닥에 쓰러지는 중증 질환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여러 인터넷 포럼을 보면, 뇌전증 환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발작을 유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 교환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저혈당 상태를 유지하거나 밤을 새우거나 커피를 과도하게 섭취하거나 지칠 때까지 일을 하는 방법이 거론된다.' - 발췌 보기
모든 것은 중립적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질병'이라고 여기는 (뇌나 신경과 관련된) 어떤 증세들이 실제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극한 행복감이나 영적인 깨달음을 주는 '추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몇달 뒤 우연히 유튜브에서 페마 쵸드론 인터뷰를 봤는데, 그녀는 ‘모든 것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며 중립적’이고 '모든 사람들이 이걸 이해하지 못해서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이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고통 속에서 나는 온 몸으로 그 메시지를 이해했다. 모든 현상은 본래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며 우리가 붙여놓은 좋고 나쁨의 생각이 고통을 가져온다는 것. 이러한 고통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 후로는 괴로울 때 그것이 무엇인지 찬찬히 들여다 보려고 했다. 아는 것만으로는 때때로 부족해서 '모든 것이 중립적'이라는 사실을 괴로움 속에서 애써 기억해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전자는 팔정도의 '정견'일 것이고 후자는 '정념' 혹은 '정정진'일 것이다.
나의 깨달음과는 상관 없이, 그리고 당연하게도 층간소음은 덜해지지 않았다. 위층이 덩치 큰 개까지 입양해 밤중까지 온 집안을 뛰놀게 하면서 이사를 결심하고 집을 보러 다니던 중 어느날 위층이 갑자기 이사를 나갔다. 10년 넘게 살던 집에서 빚을 못 갚아 쫓겨나게 된 것이었다. 전세가가 갑자기 올라 집을 구하지 못하고 있던 나는 그대로 그 집에 눌러앉았고, 그 후 혼자 사는 아주 조용한 이웃이 위층에 이사와서 지금까지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를 깨달았는데,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나의 바램이나 노력과는 별 상관 없이 여러 복잡한 조건에 의해 제 갈 길을 간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는 많은 것에서 마음이 ‘놓였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닌지를 분별한 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 노력을 집중하고 나머지는 쉽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마음은 평화롭고 뇌는 홀가분했다. 그리고 홀가분해진 뇌로 순수한 기쁨이나 아름다움 같은 것을 점점 더 자주,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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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나는 이 글의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
“그리고 아직 해결되지 않는 고통이 있다. 나는 이것을 '삶과 죽음의 과정에 관한 공부'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고통에 대한 공부의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초반에 답을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내가 충분히 이해하지도, 실제 삶에 적용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 막혀있는 느낌이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이제는 넘어섰다고 생각하는 지나간 고통을 되돌아 정리해보았다. 이 일의 목적은 항상 같은데, 그때의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언젠가 마지막 공부가 끝나서 좀더 밝은 또하나의 등불을 들 수 있기를.”
삶과 죽음의 과정에 관한 공부.
다음 글은 그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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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글 : 3. 개껌던지기와 위빳사나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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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브런치에도 같이 올리고 있다.
* 생각해보니 윗집 소음 때문에 견디기 힘들 때 항상 틀어놓던 게 <반야심경>이었다는 사실. 반야심경 여러 버전
* 그리고 반야심경에 대한 나의 오마쥬(2018-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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