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과 2025년의 반야심경 해석 : 오온, 공, 고통에 대해
2025-01-20 21:50 2016년부터 도법스님을 모시고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불한당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불한당은 코로나 시절에 온라인 모임으로 바뀌었다가 끊어졌다가 하다가 2022년 6월부터 새로운 멤버들을 맞아 반야심경을 공부하는 모임으로 다시 시작했다.
2022년 11월 17일 불한당 모임에서 나는 반야심경의 첫 문단을 다음과 같이 해석해 발표했었다. 그 당시 이해한 오온, 공, 고통을 한글로 풀어 쓴 것이다 :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삶에 깊이 적용해보고
조견오온개공
- 감각 작용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모든 정신 작용 가운데에는 분리되거나 독립된 어떤 실체도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았다.
도일체고액
- 그리하여 모든 고통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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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주말 불한당 모임에서 도반 중 한분이 해석해온 반야심경의 첫 구절과 해석의 이유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과정에서 지난 몇년 간 공부하고 삶에 적용하고 이해해온 오온, 공, 고통의 개념이 내 안에서 다시 정리가 되었다. 도반이 해온 해석을 바탕으로 고치고 싶은 부분을 고쳐오는 것이 다음 불한당 모임의 숙제였고, 그날 밤 나는 식탁에 앉아 반야심경 첫 문단의 해석을 다음과 같이 다시 썼다(‘자신과 세상’이나 ‘이름 붙이고 구분하고’와 같은 구절은 도반의 해석을 그대로 사용했다) :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다의 가르침을 삶에 깊이 적용해보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 인간은 감각 작용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느낌, 지각, 개념, 의식과 같은 정신 작용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인식한다.
- 이 인식은 인류가 이름 붙이고 구분하고 만들어낸 것으로, 절대적인 것도 고정불변하는 것도 아니다.
- 이것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나자 그는 고통이라 여겼던 것들 역시 사실은 생각(인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 같은 건 원래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통으로 가득했던 삶의 바다에서 이제 그는 유유히 물결을 타고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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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길게 풀어 썼다는 점을 제외하고) 2022년과 2025년의 해석에서 달라진 점은 다음과 같다 :
1. 오온이 공한 것을 알면 어떻게 모든 고통을 넘어서게 되는지 덧붙였다. 감각 작용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정신 작용이 공하므로, 그 작용들을 기반으로 인식된 나라는 것과 세상이라는 것도 공하고, 결국 우리가 고통이라 여기는 것들도 사실은 공하다, 고정불변하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는 것이다(경전들이란, 게다가 한문으로 된 경전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도 함축적이다. 도대체 그것만 읽고 이런 뜻을 다 알 수 있나).
2. 고통이 고정불변하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난 후에 대한 표현을 고쳤다. 고통을 '넘어서거나', 해결하거나, 고통의 바다를 건너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바다는 그대로다. 다만 고통 없는 바다다. 고통의 바다라고 생각하고 숨도 못쉬고 허우적거렸는데, 알고 보니 그냥 둥둥 떠서 물결을 따라 흘러가면 되는 거였다. 이 부분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가 2019년에 그렸던 그림을 떠올리고 마지막 문장을 썼다.
<물결을 타고 나아가>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불교 공부를 시작한 지 3년째였던 2019년, 그당시 이해했던 고통을 그린 것이다. 내가 빠져있던 것과 비슷한 고통에 빠져있을 사람들에게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그렸었다.
이 그림을 보면 짐작하겠지만, 그 당시 세상과 고통에 대한 인식과 지금의 인식에도 반야심경의 해석과 비슷한 차이가 있다. 그 당시에는 고통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생기고 사라지며,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적다'고 썼다. '물결을 타고 나아가는' 것은 같았지만 이 모든 고통을 내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그에 반해 지금은 내가 고통이라 여겼던 모든 것이 고정불변의 어떤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는 점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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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경전을 다시 이해하고 글 몇 줄로 생각이 정리되었다고 삶이 달라질까? 그렇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정리된 이해를 바탕으로 모든 것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보고 있다.
* 항상 그렇지만 두서없는 이야기에 적절하고 핵심을 꿰뚫는 질문을 던져 생각을 정리하도록 이끌어주시는 도법스님께 감사를 드린다.
* 2025-01-21 ‘실체가 없다’는 말을 오해가 없도록 ‘고정불변의 무언가가 아님’으로 바꾸었다. 도반의 해석을 일부 사용한 부분도 밝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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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년 동안 불교 공부와 수행 이야기를 페이스북 #붓다로살자 태그와 블로그의 '붓다로 살자' 카테고리에 정리해 기록하고 있다. 나의 미약한 발자국이 내가 놓였던 것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기도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무언가를 할 때 내 안에서 엄청난 기쁨과 에너지가 솟아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가 그렇다는 것도 알고 있다.
기쁘고 즐거운 이 에너지를 잃지 않기를.
올해는 더 많이 싸다니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그리고 그동안 못썼던 더 많은 글을 쓰는 한 해를 보낼 수 있기를.
더 밝은 등불을 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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