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6 당신의 전략이 무용지물이 될 때
* 2024-08-25 16:25 메모 정리를 하다가 4년 전 이맘때 써놓은 글을 봤다. 4년 전이면 처음 내 고양이의 죽음을 맞고 몇 달이 지났을 때. 4년이 지나는 동안 고양이들은 모두 떠났고, 나는 평생 해온 '똑똑한 생각'을 버리고 하루하루를 사는 연습을 해왔다. 하고 있다.
기록을 위해 여기 올려둔다.
#붓다로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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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26일
입맛이 없어서 이틀 동안 두 끼를 쥬스로 때웠는데, 그 작은 일탈만으로 살이 확 빠져버렸다. 새벽에 깨어서 이런저런 걱정으로 머리를 비롯한 온 몸의 조직이 쓸데없이 흥분해서 윙윙 돌아가며 소중한 칼로리를 낭비하는 게 느껴졌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광고에서 말하는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살이 빠진다’는 게 이런 건가. 생각을 차단하려고 해도 되지 않았고, 빠져나간 칼로리를 채우려면 먹어야 하는데 뭐가 문젠지 아무것도 씹고 싶지가 않았다. 여기에, 별것 아닌 고통에도 이 지경인데 이보다 더한 일들 - 사랑하는 대상과의 이별, 노화로 인한 피할 수 없는 고통들을 비롯해 기후 변화로 인한 온갖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 이 닥치면 나는 어떻게 살아남나 하는 걱정까지 겹친다.
멀쩡하고 심지어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협소해지고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걸 많이 봤다. 그게 무엇 때문인지 난 이제 좀 이해하겠다. 생각이 발달한 사람들. 평생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고 살아온, 생각의 능력으로 자신의 삶을 구축하고 제어하고 지켜온,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나이가 들어서든 시대가 변해서든 혹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 언젠가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 시점이 온다. 자신의 능력으로 대처할 수 없는 차원의 문제에 부딪힌다. 그때까지의 ‘전략’이든 ‘계획’이든 ‘노하우’든 뭐든 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이 공포는,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이런 극단의 공포는 자기가 처한 현실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을 떨어뜨리는데, 여기에 더해 경제력과 건강이 저하되는 나이에 접어들게 되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스스로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나 인식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은지 돌아볼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기는 옳은데 세상이 잘못된 탓이라고 생각한다. 후자의 경우 대부분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민폐를 끼치게 된다. 그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고 조언을 해주는 친구들도 없어지고,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살아온 습은 멈춰지지 않아서 계속 생각을 굴리며 무언가 해보려고 발버둥칠 수록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고통은 커진다.
이런 유형의 인간들이 살아남기 힘든 시대이고,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거대하고 빠른 흐름 앞에 관찰과 예측과 전략을 세우는 것이 무의미한 시대. 개인의 똑똑한 생각으로 자기가 원하는 삶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게 불가능한 시대. 거기서는 그저 흐름을 지켜보고 흐름에 올라타 그때 그때의 삶에서 작은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게 최선일지도 모르는데, 우린 그런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것과는 반대의 방법만 평생을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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