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담마코리아의 위빳사나 명상 10일 코스를 다녀왔다.
기대했던 만큼을 얻었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돌아왔다.
10일 코스를 착실히 따라갔고 고엥까 할아버님(...)이 들려주는 수행의 가르침과 법문의 의미를 온몸으로 이해했다. 다섯째날 부터는 매일매일이 특별한 경험이었고 (지적이나 감각적 유희가 되면 안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재미있어서 끝까지 정말 열심히 했다. 앞으로도 고엥까 할아버님이 시킨 대로 아침저녁 한시간씩 명상을 계속할 생각이다.

위빳사나 명상을 하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생각하고 깨달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들은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고 정리해야할 것 같다. 그래도 그중 하나만 말하자면...
평생을 '이게 맞을까, 길을 모르겠어, 뭔가 놓치고 있어'라고 생각해왔는데, 지금은 ‘그래, 이렇게 살면 되겠어, 이렇게 계속 걸어가면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 아마도 불교를 알게 되면서부터 점점 커진 생각인 것 같은데 이번 코스를 들으면서 편안하게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코스에서 경험한 것들은 생각이 정리되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자세히 정리해서 따로 글을 올려볼 생각이다. 그 목적은 하나, 다른 사람들도 이 좋은 ‘담마(Dhamma, 법)’를 얻을 수 있었으면 해서다.
그 외에, 기억하고 싶은, 혹은 코스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이 알아두면 좋을(...것 같은) 잡다한 것들.

1. 코스의 구성
위빳사나는 외부의 다른 무엇이 아닌 자신의 호흡과 감각을 관찰함으로써, 고통의 발생과 소멸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인 무상, 십이연기, 그리고 담마를 몸으로 이해하게 해준다(고엥까는 법문에서 이를 ‘정신과 물질의 순수 과학’이라고 불렀다). 말이 쉽지 이걸 10일에 체득한다는 게 가능한가 싶기도 한데, 그만큼 코스가 꽉 짜여져 있다. 붓다 시대로부터 2500년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전해내려온 교수법이라는데, 10일 동안 딴 생각이나 딴 짓을 할 겨를이라곤 없게,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필요한 생존 활동들을 하고, 또 그러면서도 바쁘다거니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게, 그렇게 묘하게 짜여져 있다(용의주도한 고오타마님...). 새벽 4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중간에 밥을 먹고 잠시 쉬는 시간들을 제외하고 하루 12시간을 꼬박 앉아서 수행한다.

불교를 공부하면서 '어쩜, 나이브한 면이라곤 없어!'라고 감탄했었는데, 고엥까가 가르치는 위빳사나 또한 그랬다. 가르침은 모두 고엥카 할아버님의 음성+한국 번역 음성으로만 진행된다. 고엥카 할아버님이 계속 옆에서 이런저런 수행법을 알려주고 이래라저래라 열심히 해라 하면서 팁을 주고 불교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고 하면서 10일이 간다. 이런 가르침의 방법에서 번역 외에는 localize될 여지 자체가 없어진다. 그냥 고엥까 할아버님에게 배우는 것이다.

2. 시설
시설의 운영 역시 세세한 부분까지 매뉴얼이 있었고(주방 레시피도 다 정해져 있다고), 그 또한 전세계 위빳사나 명상센터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았다. 한국 센터에 재정이 부족해 시설이 부족하거나 낙후된 것 외에 (다행히도) '한국화'된 부분은 별로 없어보였다.

용의주도하게 짜여진 코스와 마찬가지로 숙소와 명상홀 역시 훌륭하다거나 불편하다고 느낄 여지가 없는 딱 그만큼, 식사도 맛있다거나 형편없다거나를 느낄 여지가 없는 딱 그만큼의 맛이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생활이 쾌적했고, 식사는 정갈하고 속이 편안했다. 이전에 코스에 참여했던 ‘구수련생(old students)’들이 자원봉사로 참가해 정성껏 요리하고 욕실과 복도 화장실을 끊임없이 깨끗이 청소해주었기 때문이라는 걸 꽤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오직 자기가 받은 좋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겠다는 ‘자비와 사랑’으로 말이다. 언뜻 들으면 이해할 수 없겠지만 코스가 끝나갈 때 쯤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3. 황무지, 사람들
열흘간 말을 할 수 없다. 말은 물론 눈짓도 그 어떤 상호작용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니, 이건 천국이었다.

게다가 그곳의 산책로(사실 이 얘기를 하려고 이 글을 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반 사람들(...이 말은 '폐허덕후가 아닌 사람들'을 뜻합니다;)이 아름답다거나 휑하다고 느낄 여지가 없는 딱 그만큼의 그 황무지(...라고 밖에는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음)는, 내가 오래전부터 꿈꾸어온 유토피아의 모습과 흡사했다. 쓸모있거나 감탄스럽거나 보기드문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아무도, 무엇도 가꾸거나 심거나 손대지 않은, 민들레와 작은 이름모를 풀꽃과 억새와 잡초가 우거진 넓지도 좁지도 않은 땅. 그 중간에는 간간이 낡은 의자들이 놓여있고, 태양열로 밝히는 작은 전구들이, 아름다움이나 화려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길을 표시하고 밝혀주기 위해 몇몇 늘어서 있다.

황무지를 지나 명상홀로 가는 길에는 커다랗고 아름다운 벚나무 여섯그루와 크고작은 은행나무들,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멋진 나무들이 서있다(그림1 참조. 카메라가 없어서 사진을 못찍고 필기도구도 종이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아서 마지막날 사무실에서 종이 한장과 볼펜을 얻어서 오후 간식시간도 놓치고 급하게 그렸는데 나중에 보니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음ㅋㅋㅋㅋ). 그 길을 아무 말도 없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우주에서 온 것처럼 거리를 두고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걸어 명상홀로 들어가고 나왔다(그림2 참조. 썬캡과 망토를 둘러쓰고 뒤에 걸어가는 작은 사람이 나임;).

추위와 더위를 둘다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시기였고, 아주 다양한 날씨를 보았다. 첫날은 너무도 추워서 가져간 옷을 다 껴입고 담요를 뒤집어쓰고 명상했다. 밤에는 명상을 끝내고 나오면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져내리는 것 같았다. 북두칠성과 오리온을 한꺼번에 보았다(더 있었겠지만 아는 별자리가 이것 밖에 없음). 둘째날 낮부터 더워져서 옷을 하나씩 계속 벗으면서(...) 명상했다. 땀에 젖은 속옷과 양말을 빨아서 말렸는데 다음 명상 두시간을 하고 오니 다 말라 있었다.

3일째 명상하는데 갑자기 온 천지를 둘러싸고 쏴아 하던 빗소리. 4, 5일째까지 비가 많이 내렸다. 셔츠를 빨아 널었는데 삼일동안 마르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리고 다시 별이 쏟아지던 밤들. 9일과 10일째 새벽에는 자욱한 안개가 끼었다. 둘째날 밤 긴 하루를 마치고 명상홀에서 나올 때 제멋대로 자란 아름다운 전나무 가지 사이로 보았던 눈썹달이, 마지막날 밤 둥근달이 되어 침대 머리맡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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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물론 이 모든 것은 무상, 무상, 무상하다(빨리어로 '아니짜, 아니짜, 아니짜'. 열흘 동안 수백번도 더 들은 듯).
이 모든 평화와 행복, 자유, 그리고 다른 생명을 향한 자비를 경험하게 해준 모든 사람들과 단서들에 감사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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