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2022-08-03 09:59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루시를 보고 왔다. 어제는 눈도 마주치고 뭐라뭐라고 대답을 했는데 오늘은 루시야 하고 불러도 벽을 보고 그대로 누운 채 돌아보지 않고 머리만 약간 움직였다.
……

루시를 보고 와서 여기까지 쓰고 있을 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심정지가 와서 cpr하고 있으니 빨리 오라고. 도착했을 때는 cpr을 10분째 하고 있었고, 에피네프린을 주사하고 3분 더 하다가 그만두었다. 우리가 루시를 보고 병원을 나선 후 얼마 안돼서 심정지가 왔다고 한다. 아마 우리가 갈 때까지 루시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 루시를 씻기고 방울이 때와 비슷한 종이 상자에 담아주었다. 집에 데리고 와서 상자를 내려놓으니 버디가 킁킁 냄새를 맡고 상자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버디는 엊그제부터 이상하게 큰 소리로 울고 방울이가 있던 집 속에 들어가있곤 했다. 아침에 하도 울길래 “버디야. 저녁에 엄마 집에 올거야.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했는데… 방울이 때처럼 엄마도 상자에 담긴 채 돌아왔다. 키키도 방울이도 떠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했는데 루시가 갈 때도… 그래도 루시는 마지막 인사는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비가 많이 온다.
#kitten_lucy
사진은 그저께 낮, 노땡한테 이쁨 받던 루시.

2022-08-03 17:14 하아아...
이 와중에 대출금리가 너무 올랐고 앞으로 미친 듯이 오를 거라고 해서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버팀목' 전세대출을 받으려고 은행에 필요한 서류를 알아보고 있는데...

처음엔 '재직증명서'를 가져올 수 있는 직장인이 아니면 힘들다고 했다가...
프리랜서도 전년도 소득을 증명할 수 있는 소득금액증명과 '위촉계약서'가 있으면 가능하다고 해서 그게 고용계약서랑 비슷한 거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더라. 그럼 일 시작할 때마다 썼던 계약서를 가져오면 되냐고 했더니 된다고 했다가...
오늘 다시 통화했을 때는 명칭이 꼭 '위촉계약서'가 아니어도 전년도 소득에 대한 계약서(고용계약서든 근로계약서든. 근데 근로계약서는 직장인한테만 준다고 함)면 된다고 했다가...
근데 전년도 소득 뿐만 아니라 지금 일하고 있다는 증명이 필요하다며 이름이 '위촉증명서'라든지 무슨 '증명서'여야 된다고 했다가;;; 이랬다저랬다 한다. 동네 은행 담당자와 통화하기도 너무 힘들어서, 전화는 아예 안받고 상담원 통해서 아침에 번호 남겼는데 오후 4시가 넘어서 전화가 왔다. 뭔가 잊어버려서 다시 통화하려고 하면 또 똑같이 상담원 통해서 번호 남기고 한참 기다려서 통화;;;

작년에 일했던 회사에 물어보니 현재 일하고 있는 경우에만 '위촉계약서'를 발급할 수 있다고 해서,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 물어보니 이 회사는 프리랜서에게 '위촉계약서'를 발급해주지 않는다고ㅜㅜ. 이전에 그런 서류를 발급한 적도 없고 '위촉계약서'는 임원이나 보수를 받지 않는 사람에게만 발급해주는 거라는데, 인터넷을 뒤져보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일하는 사람들한테도 발급해준다고 하는데ㅜㅜ... 혼돈의 카오스.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것 같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

2022-08-03 19:10
느린 이별.
루시는 지난주 화요일에 동네에 새로 생긴 24시간 동물병원에서 2주 항생제 컨베니아를 맞았다. 이틀 정도 지나면서 피오줌은 없어졌지만 소변검사지에 계속 잠혈과 단백뇨가 나왔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은 밥먹는 양이 늘었다가 다시 줄어들었고, 월요일엔 츄르와 액체 형태의 캔만 조금 먹었다. 화요일은 츄르 하나를 한번에 먹지 못해서 오전과 오후에 세번 나눠서 먹였다.

그 전에도 루시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누워있었는데, 3주 전 방울이가 떠난 뒤로는 거의 종일 머리를 땅에 댄 채 누워있었다. 체중은 지난주 보다 또 100g이 줄었다. 엉덩이 쪽의 근육이 모두 빠져서 뼈가 그대로 만져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물을 먹으러 가거나 내게 걸어와서 야옹 하고 뭔가 요구하는 것처럼 울었다. 떠나기 전날은 자꾸만 밥과 약을 먹이려는 내가 귀찮은지 물을 먹으러 가는 척하고 일어나 걸어가는데 걸음걸이가 휘청휘청했고, 의자에 올라가려고 뛰다가 그대로 옆으로 떨어졌다. 호흡은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가빠져서, 방울이처럼 흉수가 원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당뇨와 신장수치, 방광염에만 신경썼지 심부전이 와서 흉수가 찼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노화와 그로 인한 죽음이라는 게 어디 한두 군데를 지킨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일지.

키키나 방울이는 죽기 얼마 전부터 어두운 방 구석이나 집 안에 들어가 웅크리고 나오지 않았는데, 루시는 떠나기 전까지 항상 우리 모두가 루시를 잘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누워있었다. 작년 가을 피오줌이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이제 떠나는구나' 하는 몇번의 고비가 있었고 그때마다 다시 회복하긴 했지만 천천히 조금씩 기력이 떨어져갔다. 기력이 쇠해가는 중에도 루시는 여전히 위엄이 있었고, 아름다웠고,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귀여웠다.

방울이를 황망히 보낸 후 나는 루시가 최대한 평소와 같은 환경에서 평소의 루시로 있다가 갔으면 했다. 떠나기 전날 루시가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고 할 때, 평소에 주사기로 먹이던 아침 약들을 계속 먹여야 할까 고민했다. 그런데도 어제 병원에서 루시의 혈액 검사 결과를 들으며, 루시가 다시 회복해서 한 스무살 까지 살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내가 좀더 잘하면, 약도 잘 먹이고 잘 돌봐주면, 혹시 지금까지처럼 다시 나아지지 않을까, 영원히 영원히 내 곁에 있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어제 저녁 루시를 입원시키고 나오면서... 방울이는 그렇게 갔지만 루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산소방 유리문 너머로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는 인사를 했을 때, 루시는 힘들게 엎드려있다가도 내 눈을 바라보며 똑같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알고 있어. 나도 사랑해.'
라는 뜻이었다.
루시는 세상의 다정함을 다 모아 작고 부드러운 덩어리로 응축해놓은 것 같은 그런 존재였다. 루시가 죽었는데, 그런데도 루시는 너무나 작고 부드럽고 다정했다. 루시가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다는 걸 생각하면, 그 다정함의 유전자가 세상 어딘가에서 이어질 거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나아진다. 따뜻해진다.

황망한 이별도 느린 이별도 다 아프다.
잘가. 세상에서 가장 다정했던 나의 고양아.
나무들이 돌들아 풀들아 새들아, 우리 루시 좀 잘 돌봐주렴.
모두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kitten_lu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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