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2021-02-19 06:23

 

 

2021-02-19 06:27 어제 외근 갔다 오던 길 #그냥예뻐서

 

 

2021-02-19 20:16 그냥 일찍 퇴근.

 

 

2021-02-19 09:58 누가 옆에서 일일이 참견하면 뇌가 멈추는 것 같다. 몇년 전에 이걸 한번 느꼈는데 오늘 또 느꼈다. 사람 관계든 일에서든 어떤 형태로든 나의 superviser 역할을 맡은 사람이 핀잔을 준다든가 하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피드백을 주면 그때부터 뇌가 얼어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지금까지 이런 걸 많이 겪지 않았던 이유는 살면서 잔소리를 들을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나같은 사람들은 처음에 기본적인 룰만 가르쳐주고 그냥 두면 알아서 잘 한다. 게으름 같은 것도 피우지 않고 중요한 일을 부주의하게 놓치는 일도 별로 없다(뭐가 중요한가에 대해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나는 일할 때 숲 먼저 완전히 파악하고 나야 세부를 들어갈 수 있고, 그래서 처음엔 좀 느리더라도 숲을 다 파악한 뒤에는 더 빨리 일을 진행할 수 있다(내 생각에 그렇다). 그런데 시간이 없든, 같이 일하는 사람이 자기 방식을 강요하든 이 방식으로 일을 못하는 상황이 되면, 어쨌든 일을 하긴 해야 하니까, 일단 시키는 방식으로 일을 하고 가외의 시간에 내가 하려던 방식으로 일을 하려고 든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에게 하루는 24시간 뿐이므로, 지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회의하기 시작한다. 이럴 필요가 있나. 설계도를 그리고 집을 짓든 아무데나 벽 하나 세우고 벽지부터 바르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데, 왜 혼자 이 고생을 하나. 뭐 그런 생각들. 근데 시키는 대로 벽지부터 바르면서도 회의한다. 이 벽지 나중에 다 뜯어야 할텐데. 일이 밀린다. 잔소리를 듣는다. 이제 머리가 안돌아간다. 도망가고 싶다.
......

이번처럼 새로운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면 또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게다가 누군가 벽지부터 바르다가 폭망한 상태에서 투입된 일들은 상황이 더 빤하다. 그런 일에 많이 투입됐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꼬인 상황은 진짜 처음이다’라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이십년 넘는 세월 동안 도망가지 않고 어떻게든 일을 마쳤다. 그리고 한두번 일해본 사람들은 그 후로는 그냥 믿고 맡겨주었다.

......

힘들고 머리도 안돌아가서 일찍 퇴근하고 집에 오면서 이 글을 썼다. 그리고 왜 내게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깨달았다.

벽지부터 바르는 사람들 덕분에 내가 먹고 살 수 있었다는 것을.

물론 예전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은 달랐다. 그때는 내가 그들보다 잘나서 그들이 못하는 일을 해냈고 그 댓가로 후한 보수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근데 지금은... 그냥 고맙다. 세상 사람들이 제각각 다 다르고 다 저마다의 쓰임이 있어서, 그래서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먹고 살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못날 것도 잘날 것도, 좋고 나쁠 것도 없는, 그냥 거대하고 엄정한 질서. 그 안에 내가 들어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그 안에서 다들 가끔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또 가끔은 남을 괴롭히며, 그렇게들 살고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침울하고 더이상 못하겠다 싶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뭐 어쨌든 이번 주말도 일을 해볼 생각이다.
맞든 틀리든 쓸모가 있든 없든 그런 건 생각 안하기로. 사실 난 내 일을 꽤나 즐기기 때문에 야근을 하든 주말에 일을 하든 게임처럼 언제까지고 할 수도 있다.
쓸데없는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밥벌이 #붓다로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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