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2016-11-07 21:50 일을 할 때는 정해진 큰 줄기를 지키면서 일의 특성에 맞게 이런저런 프로세스를 취사선택해 진행하는데, 나는 그 중에서 고객(사용자) 인터뷰를 제일 좋아한다(두번째는 프로토타입 스케치. 세번째는 프로토타입 테스트).

남의 마음을 이해하거나 본능적으로 공감하는 능력을 타고나지 못한 나는, 자라면서 (주로 안좋은 쪽으로) 사람들과 부딪히며 사람들을 학습해왔다. 사람들은 나와 다르고, 때로는 짜증이 날 정도로 이해하기 어렵고, 사람들에 대한 나의 예상이나 기대는 대부분 무참하게 어긋났다. 고객 인터뷰는 이렇게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학습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다.

(고객 인터뷰의 주 목적은 어떤 분야나 서비스, 작게는 특정한 task에 대한 고객의 '주요 니즈'를 뽑는 것이고, 이렇게 뽑은 고객 니즈는 그 뒤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기준이 된다. 대부분의 사용자 경험(UX) 디자인 방법론이 이 '고객의 니즈'를 가장 핵심적인 기반으로 삼고 있다.)

나같이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이 일에 적합할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본능적인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나는 아주 자세히 캐묻고, 주의를 기울여 듣고, 관찰하고, 혼자서 인터뷰이의 대답을 다시 정리하고,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다시 묻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공감은 잘 안가지만 분석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는 별로 없었다. 사람의 욕구나 욕망이라는 게 무수한 갈래가 있는것 같지만 몇개의 근원적인 욕구로 묶어서 이해할 수 있더라. 그리고 이렇게 좀더 근원적인, 좀더 근원적인 욕구가 뭘까 고민하고 이해하고 정리해가는 과정 또한 재미있다.

(오히려 일부 고갱님들처럼 스스로 고객의 니즈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가 된다. 여기서 오는 폐단은 '십대향 스마트폰의 UX 결정권을 중년 아저씨들이 가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같은 비화들에서 다들 많이 봤겠지. 스티브 잡스가 고객 조사를 안하고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낸 건 자기가 그 제품의 핵심 고객층이었기 때문이지 고객 조사를 안해도 된다는 게 아님.)

고객 인터뷰 중에서도 제일 재밌는 건, 내가 절대로 해볼 일이 없을 특수한 직업군의 사용자가 쓸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 그들이 일하는 방식이나 생각을 듣는 거. 다른 세계의 문을 열고 빼꼼히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 이런 일은 흔하지 않지만 까다롭고 복잡한 경우가 많아서 종종 나한테까지 넘어온다. 하아. 어렵고 복잡해서 너무 재밌다.

그런데...
요즘 일들은 일정이 대부분 번갯불에 콩궈먹기라 사용자 인터뷰를 제대로 못하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럴려고;;
#밥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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