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아마'바라'에서 일할때 이 음반을 처음 들었던 것 같다.
70년대 풍의한적한 클래식 음악 까페 바라에서 스물 세살 내 백수 시절의 몇개월을 보내면서,뮤직박스에 있던 수많은 클래식 엘피와 씨디들을 하나하나 꺼내그 멋진 탄노이 스피커로 들었었다.
지금까지 내 생애에 딱 한번 있었던 유예기간이었다.
미래는 불확실했고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되지도 않는 사랑에 눈멀어 있었지만
맛난 커피를 마음대로 마실 수 있었고 멋진 음악들을 마음대로 들을 수 있었고,찾아오는 손님들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고, 일이 끝나면 단골 술집에서 밤새 술을 퍼마시던, 나름대로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거기에 바리톤 Fischer-Dieskau가 부른 이 겨울 나그네의 엘피가 있었다. 그걸 듣고 난 후 CD를 샀었다.그리고 그겨울 내내 스물 네개의 노래를 반복해 들었다. 겨울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을 끝내고나와 추운 공기에 옷깃을 여미면서 택시를 잡던 기억이 난다.
처음 엄마아빠의 집을 나와 살았던, 아침에 햇빛이 지독히도 밝게 비쳐들었던 그작은 방에서,추운 아침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면서 이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정말 오래된 기억.

겨울 아침의 촉각과시각과 청각의 기억들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내게 'winterreise'라는 단어로 각인되어서,
이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는 것 만으로도 그 오랜 감각들이, 그 모든기억들이살아난다.
그때의 나는 지금처럼 살아갈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사실 어떻게 살아갈 건지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다).

Gute Nacht.
그 음반은 이 노래로 시작한다. Fishcer-Diskau가 부른Winterreise는 다른 사람들이 부른 것보다 약간 느리고 무겁다.
그래서 좋아한다.
나는 가끔씩,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일까. 라고 생각한다.


* 그 엘피에는 독일어와 영어로 된 가사집도 있었다. 이 노래의 내용은 잘은 생각은 안나지만 아마도 어떤 겨울날 애인을 두고 길을 떠나가는 남자의 이야기였던 듯 싶다.
그녀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그녀의 어머니는 결혼을 이야기하네. 그리고 나는 떠나네. 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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