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의 전환점, 두권의 책
나로서는 약간 크다고 할 수 있는 변화가, 요즘의 내 일에 일어나고 있다,아니,일어나게 하려고 한다.
나는 7년 가깝게 웹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 안돼 뭔가 답답함을 느꼈다.
웬지 멈춰져 있는 느낌, 뭔가 반복되는 그 느낌의 이유를 그때 나는 내 안에서 찾았다. 수많은 그래픽 디자인 잡지와 웹진에서 멋지고 화려하고 창의적인 결과물들을 보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었고, 내게 맡겨지는 프로젝트마다 좀더 새로운 비쥬얼, 좀더 효과적인 인터페이스를 시도하려고 했다.
전달하려는 내용을 좀더 잘 보이도록, 잘 느껴지도록 포장하는 것이 웹(그래픽) 디자이너의 일이다.
나름대로 항상 노력했고,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사실,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_-v).
더 시간이 지나니, 내용을 포장하는 것보다 클라이언트와 이야기하고 그들이 전하려는 내용을 파악하고 구성하는 것이 더 재밌어졌다.
회사에서는 몇몇 데스크탑 어플리케이션을 개발 중이었고, 자원해서 UI 기획 일을 맡았다.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고, 재밌었고, 열정이 있었다(결과에 관해서는 침묵... -_-).
UI 기획 역시 포장이다. 그래픽 디자인의 바로 전 단계로, 컨텐트와 기능을 배열하고 이름을 짓고 사용자의 행동에 대한 반응을 정의하는 등, 사용자가 하려는 과업을 좀더 쉽게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하겠다.
음,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의 나의 꿈을 잠깐 돌이켜보자면, 미미하고 소박한 모든 것들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고, 세상이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이 되는데 일조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디자인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저 꿈 정도는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계속해서 나는 그저 '포장'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껍데기를 보지 않는다.
껍데기는 '도와줄' 뿐이다.
정치가가 만들어낸 서비스와 컨텐트를 가지고 시인이 시적으로 컨텐트를 배열하고 네이밍하고 디자인한다고 해서 사용자들이 그 사이트에서 시적 감성을 느끼지는 않는다.
나는 진짜로 사이트를 '만들고' 싶었고, 디자인이 아니라 내용으로, 내 생각과 믿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난 이게 좀더 넓은 의미의 디자인이며, (지금으로서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회사에 이런 내 의향을 전달했고,받아들여졌다.
적지 않은 나이이기 때문에, 경력이 없는 분야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에 많이 위축되기도 했고, 잘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지금 하는 일이나 더 열심히 해서 입지를 다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건 둘째치고라도, 재미없는 일을 계속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_-;
어쨌거나 이제 처음 입사하는 기분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다시 공부하고, 다시 고민하고, 얼마간 잊고 있었던 꿈과 나만의 가치를 내 일에 녹여갈 수 있도록 나를 다잡을 생각이다.
그동안 불안하고 갈피를 잡지 못해 걱정하던 나에게 확신을 주고 해야할 일들을 알려준 책 두권이 있다.
책에 관한 얘기들은 예스24 블로그에 따로 모아놓고 있지만, 이 책들은 좀더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여기에도 소개한다.
티보 칼맨, 디자인으로 세상을 발가벗기다 베네통의 잡지 'Colors'의 편집장이자 아트디렉터였던 티보 칼맨에 관한 책. 불안으로 뒤죽박죽인 저의 고민을 정확히 짚어 이 책을 추천해주신 휘발성고양이님께 감사드립니다. | |
Delete! 라이코스의 검색팀장이었던 전병국님이 쓴, '정보 중독에서 벗어나는 아주 특별한 비밀'. 신간을 뒤지는데 약한 나에게 이 책을 알게 해준 골룸님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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