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내 회사인가, 아닌가...
충분히 생각했다.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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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회사에 어찌 이리도 긴 시간 동안 머무를 수 있었는지, 그 미스테리의 이유가 어쩐 일인지 요즘들어 내 머리속에서 자동적으로 속속 정리되고 있으니.
물론 나의 회사는 어떤 분야에선 업계를 미리 내다보고, 발빠르게 준비하고, 남보다 앞서나갔다. 나는 그런 나의 회사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나름대로의 비젼을 키울 수 있었다.
좋았다. 괜찮았다.
그러나 내가, 까탈스럽고 게으르고 염증도 잘내고 비정한 내가, 이 회사에 기나긴 세월동안 머물렀던(짤리지 않고 붙어있었던... 이라고 해도 좋다 ^^) 이유로 말하자면, 그런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나는 구성원들 하나하나가 스스로를 프로라고 여기고 누가 억지로 시키거나 감시하거나 채찍질하지 않아도 주어진 기간 내에 자랑스런 퀄리티의 결과물을 내놓는, 그렇지 못한 구성원은 도태될 수 밖에 없는, 그런 회사를 원했다.
상사에게 어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첫째는 사용자를 위해, 둘째는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그다음엔 클라이언트나 회사 등등을 위해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그런 태도가 만연한(?),
그런 회사를 원했다.
그리고 나의 회사는 그랬다.
그런 동료들을 보면서 신뢰를 쌓고, 그런 동료와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유연하고도 날카로운 논쟁을 거쳐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그런 분위기의 회사를 원했다.
그리고 나의 회사는 그랬다.
나는 직급에 관계없이 모든 구성원이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아이디어나 건의사항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으며, 그것이 창의적이라면, 합리적이라면 논의화되고 받아들여지는 그런 회사를 원했다.
그리고 나의 회사는 그랬다.
나는 운좋게도, 구성원 하나하나가 존중받고 어떤 문제에 관해서건 투명하고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그런 문화를 가진 회사에서 개개인의 능력이 최대로 발휘되며 결과적으로 그것이 회사의 발전으로 귀결된다는, 정말 도덕책에나 나올 법한 믿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회사를 다닐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즐겁게 일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이며, 즐겁고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구성원들 간의 시너지 효과가 가장 커지고, 가장 창의적이고 합리적이며 잘 팔릴만한 결과물이 나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이 회사의 어떤 부분,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와 인간미가 파고들 수 있는 여유를 원했고, 그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웃음짓게 만드는 힘이 결국은 사람과 조직을 강하게 만들 수 있으며 그 사람과 조직이 만들어내는 서비스, 나아가서는 그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용자들까지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의 회사가 좋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회사를 '나의' 회사라고 생각하고 다닐 수가 있었다.
지금와서 누군가 나에게, 그건 다 너의 착각이자 자기 합리화라고, 너는 지나친 이상주의자며 이기주의자라고, 인간이란 적당히 당근을 던지고 채찍질을 해야 제대로 일하는 비참한 존재라고, 네가 헛살았다고, 세상은 그따위 도덕책 얘기가 통하지 않는 만만챦은 곳이라고, 유머와 감성 따위는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나는 솔깃하지 않겠다.
나의 그런 가치, 그런 확신이 통하지 않는다면 일단은 고치려고 노력할 것이고,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미련없이 그만두겠다.
나는 나의 회사를 믿고, 나의 상사, 나의 부하직원, 나의 동료들을 믿는다.
아니 그것보다, 삶에 대한, 인간에 대한, 직업에 대한 나의 가치관이 옳다고 믿는다.
얼마전 닐쓰님의 블로그에선가, '더이상 내 회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둔다 라는 말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말을 읽을 당시에는 몰랐는데, 자꾸만 곰곰이 되씹어보게 하는 구석이 있다.
(피곤한데도 곱씹느라고 잠도 안온다, 뒝장)
오래된 연인처럼 익숙한 이 회사가 진짜 내 회사인가, 아닌가,
내가 진정 원했던 그 회사인가, 아닌가,
그 안의 나는 내가 꿈꾸었던 나인가, 아닌가,
나는 내가 원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제대로 뛰고 있는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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