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 4일째 - 범생이 옷을 사야한다!
4일 내내 하루에 3~4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속도가 느린 건지, 게으른 건지.
누구 말대로, 졸라게 열심히 하는데도 결과가 그저 그러면 더 불쌍하니, 게으르다고 칠까. 음...
오늘은 하루 종일 담당자 인터뷰 5건이 있었는데,
의견과 아는 것이 모두 다른,모르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이끌어내고, 비전을 공유하고, 결과를 기록하고, 정리하고...
게다가 계속해서 조심조심 말해야 한다는 것!
재미있긴 하지만 나중엔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내가 좀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헛갈릴 정도로,
조금 지쳐버렸다.
아니, 아니다.
사실 나를 지치게 한 것은, 파견지의 드레스코드를 따르라는 조심스런 지적(우리 회사 측의)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입은 건데!(구두까지 신었단 말이닷!) ㅠ.ㅠ
나에 대한 다른 어떤 소리에도 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나지만, 이 얘기는 나에겐 굉장한 스트레스다.
난, 옷이란 계절별로 편안한 옷 두세벌씩만 있으면 되고, 하나를 이틀에서 삼일 입은 후
다음 옷을 입고, 또 빨아서 다음 옷을 입고,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침에 옷을 고르느라 절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나는 옷이나 치장에 투자하는 돈이 너무너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많은 옷을 사들이고 또 버리는 것은 지구 환경의 오염과 자원낭비에 일조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다.
(뭐냐, 사실 옷을 산다고 해도 투자대비 효과가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니더냐!-_-)
게다가 어떤 점잖은 옷도 내가 삼일만 입으면 후질구레가 되어버리고 만다.
나는 의자 위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것을 좋아하고, 턱을 고이거나 몸을 있는 대로 찌그려서 이상한 자세로 일하는 것을 즐기는데, 범생 옷을 입어버리면, 하루종일 말이 마구를 둘러쓴 것처럼 힘들다.
물론 나라고 몇년이 넘는 회사 생활 동안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
그러나, 범생이 옷을 입혀 놓아도 도대체 범생이처럼 보이지가 않게, 그렇게 생겨먹을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도대체 옷이 뭐가 중요해, 옷으로 능력이 평가돼? 빌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는 공식 세미나에도 청바지 입고 나오던데...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투덜투덜 거리다가...
일찍 퇴근하고 옷을 사러 나갔다... -_-;
성실한 범생처럼 보이고, 평범하지만 진취적인 회사원처럼도 보이고, 있어보이고, 말쑥해 보일 그런 옷을 사러.
캬캬캬 그러나 결국은, 역시나, 가당키나 하더냐!
이 밤중까지 싸다니며 사온거라곤 니트 셔츠 하나(따거워서 입기가 싫다)에 삼천원짜리 빵모자 하나.
같이 옷 고르느라 돌아다녀준 울 디자이너 아그한테 미안하다.
후우... 어쩌지...
이건 정말 최고로 자신없는 일이야...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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