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2020-03-13 03:16 동네 동물병원에서 3월 2일과 6일 두번 루시 혈당 곡선 체크를 했는데 모두 실패했다. 첫번째인 3월 2일은 집에서 아침 일찍 밥 먹이고 인슐린을 맞춰서 데려갔는데 이후로도 혈당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500이 넘게 올라가서, 정오 좀 지나 병원에서 검사가 의미 없다며 데려가라고 연락이 왔다. 그날부터 0.015ml에서 0.02ml로 인슐린을 늘렸다. 3월 6일에 다시 한 검사에서도 동일해서 병원에서 동일한 양의 인슐린을 주사했다고 하는데, 이후로 저녁 6시 넘어 집에 데려올 때까지 혈당이 250 가까이까지 떨어졌더라.

동네 동물병원에서는 내가 인슐린을 잘못 놓은 게 아니냐는 의심을 했는데 난 모두 제대로 들어간 걸 확인했다. 딱 한번 루시가 움직여서 인슐린이 바깥으로 샜는데 인슐린은 소량만 피부 바깥에 묻어도 독특한 냄새가 나더라. 그 후로는 주사를 놓은 뒤 냄새가 나는지 확인했다. 그렇다면 인슐린이 안맞는 것일 수도 있어서 3월 6일부터 인슐린을 '란투스'라는 제품으로 바꾸고 일주일 후 다시 혈당 곡선을 체크하기로 했다. 원래 쓰던 건 어떤 제품인지 모르겠고 10배로 희석된 제품이었는데, 란투스 인슐린은 희석하면 안된다고(나중에 알았는데 고양이에게는 원래 란투스만 쓴다고 함ㅜㅜ. 란투스 제품설명서).

어제 민트동물병원 원장님과 문자로 상담을 했는데 당뇨 외의 몇가지 원인이 더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셨다. 일단 집에서 내가 직접 혈당을 재 혈당 곡선을 그릴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유튜브에서 ‘cat glucose measurement’나 ‘cat blood sugar ...’로 검색해보니 하는 방법이 자세히 나왔다. 집에서 체크하는 게 오히려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정확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그렇게 어제 오후부터 루시 귀에서 채혈해 내가 쓰던 아큐첵 혈당기로 혈당을 체크했다. 식전, 밥과 인슐린 후 2시간, 6시간, 10시간, 이렇게 4번. 밥과 인슐린을 하루 두번 준다는 가정 하에 24시간 동안 이렇게 두번의 싸이클을 측정해 인슐린 주사 후 최저점과 최고점을 알아내고 그걸 기반으로 적정 인슐린 양을 정하는 것이 혈당 곡선 측정의 목표다.
* 혈당 곡선 체크와 분석, 적용법 1, 2

처음 몇번은 노땡이 루시를 잡아주었고, 10시와 좀전, 새벽 2시에 혼자 측정을 했다. 두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 도구를 챙기고 자는 루시를 깨워 귀를 바늘로 찌르는데, 피가 충분히 나오지 않아 세번째에야 성공했다. 루시는 아파하고, 나는 손이 떨렸다. “미안해 루시, 미안해”라며 세번째로 루시 귀를 바늘로 찌르려고 할 때 뭔가 쿵쿵쿵 하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내 심장이 뛰는 소리였다. 생전 처음 내 심장이 뛰는 소리를 내 귀로 들었다.

혈당 수치는 529. 밥과 인슐린 이후 6시간이 지났는데 혈당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올랐다. 인슐린이 전혀 듣지 않는다는 얘기. 정말 내가 주사를 잘못 놓은 건지, 뭐가 문제인지 알지도 못한 채 루시에게 츄르를 혈당에 영향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조금 주고, 수치를 기록하고, 정리하고, 다시 잠옷을 입고 방에 와서 누웠다.

다시 잠들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조건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며 그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완벽한데, 지금 나의 마음이 나를 죽이고 있다. 나의 마음은 그 나름의 조건에 따라 나를 죽이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역시 완벽하고 자연스러운 것인가. 혹시 나는 그 조건을 바꾸거나 없앨 수 있나. 그래야 하나. 이 모든 게 무슨 의미인가. 내가 가졌다고 생각했던 안도와 평화는 무엇이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시험 전날 외운 모든 게 시험지를 받아들고 하얗게 증발해버린 것 같다.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이전의 그 모든 공포가 다시 발목을 잡아 끌고 목을 조인다.

2020-03-17 10:27 루시 혈당곡선을 가지고 어제 동네 동물병원에 가서 상담을 했다. 내가 봐도 인슐린이 혈당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인슐린 양을 0.02ml로 늘린 지 열흘 만인 오늘부터 0.03ml으로 다시 늘리고 그 후 혈당곡선을 체크하기로 했다. 내가 찾아본 자료에는 20%씩 늘리라고 했는데 한번에 50%를 늘려도 될까 걱정돼서 어제 저녁부터는 밥을 준 후 30분 있다가 인슐린을 놓았다.

오늘 아침 인슐린을 놓은 지 두시간이 지났는데...
좀전에 루시가 욕실에 놓아둔 내 머리끈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마치 머리끈을 처음 본 어린 고양이처럼 신나게 펄쩍펄쩍 뛰며 오랜 시간을 놀더라. 루시가 이러는 건 십년 전 루시를 만난 후 처음 봐서(루시는 나를 만날 때부터 비만이었다)... 애가 뭔가 잘못됐나, 혹시 저게 인슐린이 아니라 아드레날린 같은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인슐린이 혈당에 영향을 미치진 못하고 있지만 확실히 음수량과 소변량은 줄었고, 어제 몸무게 쟀는데 3.6kg까지 빠졌던 게 3.8kg로 늘었다. 밥 시간이 아닐 때 배고프다고 찡찡거리는 것 때문에 좀 마음이 아픈데, 그건 사실 전부터 그랬던 거고 당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아서였을 테니 인슐린 관리가 제대로 된다면 앞으로는 나아지지 않을까.
인슐린 양을 정하고 혈당이 좀 안정되면 민트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다른 문제가 없는지 세세한 검사를 하기로 했다.

2020-03-22 13:36 루시는 3월 17일 인슐린을 0.03ml로 올린 이후로 혈당이 100 이하에서 300 약간 넘어로 잡히는 거 같은데 들쑥날쑥해서, 3월 18일~19일 동안 다시 혈당 곡선을 그려서 엊그제 금요일에 동네 동물병원에 가지고 가서 상담을 했고, 일단 그대로 0.03ml를 주기로 하고 인슐린을 좀더 타왔다.

어제는 주식캔을 처음 줬는데 잘 먹길래 칼로리 계산해서 캔 위주로 줬고, 저녁 먹기 전에 혹시나 해서 요당 스틱을 해봤는데 당 쪽이 하나도 색이 변하지 않더라. 놀라서 급하게 혈당을 재보니 76이 나와서ㅜㅜ 사료랑 캔을 조금 먹이고 두시간 쯤 있다가 재니 110이 넘어서 좀더 먹이고 인슐린을 0.025ml만 줬다. 오늘 아침에도 0.025ml를 줬다. 아무래도 0.02ml에서 0.03ml로 급격하게 올리는 게 아니었다ㅜㅜ.

그렇게 아침을 먹고 루시가 잠들었는데... 너무 곤하게 자길래 겁나서 깨웠더니 마치 틱 장애가 있는 것처럼 애가 머리를 떤다ㅜㅜ. 놀라서 민트동물병원 원장님께 다시 SOS 보내 상담하고 다음주 화요일에 데려가 자세한 검사를 하기로 했다. 좀전에 일어났는데 배고파하길래 캔이랑 사료를 줬더니 사료를 먼저 먹고 캔도 먹었다. 아직도 간간이 몸을 움찔거린다. 루시가 조금만 이상해도 손이 덜덜 떨리고 나쁜 생각이 들어서 아무것도 못하겠다. 점심 먹다 말고 멍청히 앉아있다가 기록이라도 해둬야지 싶어서...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다.

그동안의 요당검사 결과. 결과 보는 표도 제대로 된 게 없어서 얼마나 헤맸는지ㅜㅜ. 하아아 진짜.
* 소변스틱과 결과 해석은 이 글 참고 ▶

2020-03-22 19:02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증을 받은 비침습·연속혈당측정기는 국내에 전무한 상황이다.'
루시 혈당을 재다 보니까 소아 당뇨 부모들의 심정이 어떤 건지 조금이나마 짐작하겠다. 예전에 시계 형태로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연속혈당 측정기 만들어서 엄마들한테 나눠줬다고 검찰에 기소당했던 엄마 기사도 생각나고. 국가에서 좀 빨리빨리 인증도 해주고 좀 그러지ㅜㅜ. 그게 몇년 전인데 여태 이러고 있냐. 하아아.
이 수의사는 연속혈당측정기 쓴다는데 어디꺼 쓰는지 모르겠네.

#고양이당뇨 #kitten_lu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