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키키 신부전

고양이.cats 2020. 5. 1. 22:00

2020-04-24 18:20 키키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어렸을 때는 체중이 9kg 가까이 나갔고, 열두살이었던 2016년에 체중이 7.4kg였다가, 몇년간 꾸준히 줄어서 지금 5.1이 되었다. 작년 가을부터는 좀더 빨리 줄었다. 2017년 말에 동네 동물병원에서 검진했을 때는 혈액검사나 초음파 상으로 별 이상이 없었고, 선천적으로 신장이 하나라고 했고, 구내염인가 잇몸이 상했나 해서 스케일링하면서 이를 하나 뺐다.

몇년 전부터 소변을 자주 보는데 요즘 더 심해진 거 같고, 궁디팡팡을 좋아하는데 몇달 전부터는 두드려주면 오줌을 지리곤 했다. 지리는 양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다. 요 며칠은 식욕이 줄어서 거의 밥을 먹지 않고, 앉지도 서지도 않은 엉거주춤하고 불편한 자세로 앉아있다. 앉으라고 해도 다시 일어난다. 눈꼽이랑 입가의 오물도 많아지고 구취가 더 심해졌다.

민트동물병원 원장님께 문자로 여쭤봤는데 아무래도 신장 쪽의 문제인 듯. 약물도 나와있고 식이요법도 있다고 하니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제 신장 질환도 공부해야겠구나.
....................

김미희 님의 책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를 사놓고 읽지 못했다. 바쁘기도 했지만 두려웠다. 마음이, 아니 상황이, 아니 내가 괜찮을 때 읽어야겠다 싶었는데... 그런 때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오늘 저녁을 먹고 쿠키를 하나 꺼낸 후 책을 열었다가 몇장 읽고 엉엉 통곡을 하고 말았다. 울면서도 ‘울면 기운이 빠져서 아무것도 못하는데...’ 생각했다.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하다.
지금 이 시간이 모든 것이다.

#kitten_kiki #kitten_lucy


2020-04-28 12:20 좀있다 키키 데리고 용산 민트동물병원 간다. 키키는 지난 삼일 정도 밥을 거의 안먹고 물먹고 오줌누고를 반복했고, 멍한 상태로 한참을 엉거주춤 서있거나 집에 들어가서 잠만 잤다. 궁디팡팡을 해달라고 찡얼거려서 해주면 그때만 활력이 잠깐 돌아왔는데, 그때도 오줌을 줄줄 지렸다.

고양이들은 정말 순식간에 건강한 상태와 아픈 상태를 오가는구나 생각했는데 그건 그냥 나의 기준이고 내 시간의 흐름이겠지. 점심은 쿠키랑 커피로 간단히 먹고 저녁에 노땡과 (아마도 차 안에서) 먹으려고 도시락을 쌌다. 이 모든 것의 와중에도 우리는 먹어야 하고, 잘 먹어야 한다.

뭐든 특별히 욕심을 내지 않으면서도,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겠지. 키키에게는 오늘 병원에 간다고, 힘들 수도 있으니까 많이 먹고 쉬어두라고, 그리고 내가 옆에 있으니까 아무 걱정 말라고(정작 걱정은 내가 하지만...) 어제부터 말해두었다.
#kitten_kiki


2020-04-28 19:30 키키는...
신장 상태가 심하게 좋지 않아서 병원에 맡기고 집에 왔다.
머리가 멈춘 것 같다.
원래도 안좋았는데 한달 전부터 생식을 먹인 게 신장에 더 안좋은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해서, 일단 엊그제부터 생식을 먹기 시작한 방울이한테 생식을 주지 않았다.
도시락...
먹어야지.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무 생각도 안난다.
#kitten_kiki

2020-04-29 10:24 저녁에 키키 데리러 가야하고, 일은 해야 해서 일찍 스타벅스에 왔다. 토요일에 as 보낸 랩탑은 어제 전화했더니 아직 도착도 안했다고 하고, 일 때문에 빨리 좀 처리해달라고 보내기 전부터 몇번 부탁했는데도, 내일부터 다음주 화요일까지 연휴라며 그 이후에나 처리될 거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어제 내일이라던 오늘은 쉬는 날이 아닌데. 하긴 급한 거야 내 사정일 뿐이지. 누구에게 뭘 바라나.

집에선 멀쩡히 되던 애플 무선키보드는 카페에 오니 갑자기 연결이 안되고, 아이패드 파워포인트에서는 텍스트박스를 선택할 때 조금만 오래 눌러도 키보드가 올라와서 오브젝트는 저 위로 찍 올라가 버리고, 텍스트박스를 하나 옮기려면 계속 크기가 조절되고, 뒤집히고, 늘어나고, 커서는 원하는 위치에 눌러지질 않고, 이런 상황이니 자그마한 그래픽이 잔뜩 들어있는 도표들은 손댈 엄두조차 안나고.
속이 터질 것만 같다.

요즘 들어 자꾸만 옆에 붙어있으려고 하고 방울이 이뻐할 때 꼭 옆에 와서 같이 끼려고 하고 시도때도 없이 궁디팡팡 해달라고 조르고 ‘아앙’하며 좋아하던 키키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기억과 느낌, 상황, 지금 해야할 일을 뒤섞으면 안되겠지.

나는 최선을 다했다. 세상에도 내게도 키키에게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어제 저녁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씻지도 않고 그대로 컴컴한 방에 혼자 누워있었다. 선잠이 들면 온갖 악몽을 꾸었고, 평소엔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잔뜩 나왔고, 깨어나면 온갖 걱정과 생각들에 어지러웠다. 도망가고 싶었다.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 다 망가져가고 있는 것만 같은 상황이 내게는 아직도 지옥이나 다름없다는 걸 깨닫는다.

키키 걱정돼서 망설이다 문자 보냈더니 원장님이 ‘새벽까지의 병 수발이 아깝지 않게도 차도를 보이고 있다’고 하신다. 키키 제발 힘내줘. 제발. 내가 뭔가 할 수 있게 해줘. 미안해...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선생님께 맡겨서 다행이라고 어제부터 백번도 더 감사함...
#kitten_kiki

2020-04-29 23:56 키키 신장 수치 좀 내려가서 집에 데려왔다. 아직 괜찮은 상태는 아니고 약을 많이 먹여야 하고 수액도 매일 해줘야 하지만. 온몸 곳곳이 안좋은 상태고, 수액 너무 많이 맞아서인지 잘 일어서질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만해져서 집에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월급의 절반이 날아갔지만...
정말로 감사하다.
춘심이가 준 똥냄새나는 티 하나 남은 거 그동안 아껴뒀는데 오늘 개봉했다. 오늘은 좀 푹 자고 싶다.
#kitten_kiki


2020-04-30 22:34 키키 병원 얘기는 나중에 자세히 정리해서 올리려고 한다. 노령이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장기적으로 진행되었을 거고, 어떤 부분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안좋아졌고, 또 어떤 건 다른 부분이 안좋아지니 따라서 안좋아졌을 거라고 한다. 근데 그 중 성기(=곧휴)의 오줌 나오는 부분(요도 바깥쪽이라고 해도 되려나?)이 부분부분 막혀있었다고. 아마도 그래서 궁디팡팡을 하면 자극을 받아서 오줌을 좀더 시원하게 지렸을 거고 아마도 그래서 궁디팡팡을 자꾸 해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는데...

작년 쯤 부터 버디가 궁디팡팡을 너무 좋아한다. 궁디팡팡 해달라고 조르는 빈도도 점점 잦아지고, 안해주면 옆에 와서 아주 간절한 눈으로 뭐라뭐라 얘기를 하고, 며칠 전부터는 아예 밤에 막 괴성을 지르면서 졸라댄다. 그냥 궁디팡팡 중독인가, 봄이라 놀고 싶은 에너지가 넘쳐서 그런가 싶어 웃고 지나갔는데 키키 얘기를 들으니 아무래도 요도계 질환이거나 신장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싶어서 다음주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기로 했다.

이제는 고양이들이 하는 행동들이 다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내가 뭔가 해야하는데 모르고 있는 거 같고, 뭔가 이미 늦은 거 같고. 이런 생각들은 살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불안하다. 그냥 지금 알고 있는, 알게 된 것들을 기반으로 지금 할 일들을 해야지. 생각을 부풀리지 말아야지. 내가 알 수 있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아주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키키는 오늘도 일어나지 못하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다. 불린 사료와 캔을 갈아서 1ml 주사기로 100ml 정도 먹였고, 캡슐약, 가루약, 수액 150ml를 줬고, 곧휴를 3-4번 소독하고 두드려주었고, 그때마다 오줌을 지렸는데 총 100ml 정도 될 것 같다. 아침에는 왼쪽 앞발 패드와 손목 관절 쪽이 부어 있었는데 지금은 내렸고, 아침에 확인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오른쪽 뒷발의 관절 쪽이 부어있다. 네 발이 모두 차가워서 한두시간 마다 주물러주고 있다. 주물러주려고 몸을 뒤집거나 안아서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하다가 복부 쪽이 눌리면 비명을 질렀다. 숨도 계속 헐떡거리면서 힘들게 쉬는데(심비대가 있다고), 숨쉬는 소리도 전체적인 상태도 점점 안좋아지는 것 같아서 또 불안하다.
..........

오늘 들은 #내면의소리 는 이랬다:
‘어쨌든 삶은 계속된다.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모든 삶은 끝난다.’
오전에 한 문장이 들렸고, 조금 후에 두번째 문장이, 그리고 좀전에 마지막 문장이 들려왔다.
#kitten_kiki

2020-05-01 10:36 새벽에 키키에게 가보니 누운 채로 패드에 오줌을 쌌더라. 패드를 갈아주는데 또 오줌을 줄줄 누길래 다 눌 때까지 기다리는데, 갑자기 헉헉거리며 힘들게 개구호흡을 했다. 급히 동영상을 찍고 원장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는데... 상태가 안좋은 것 같다고. 오전에 있던 회의를 취소했다. 나 없을 때 갈까봐.

그래도 아침을 먹이고 약을 먹이고 수액을 놔줬다. 모두 잘 먹었다. 키키 얼굴에 뽀뽀할 때 희미하게 그르릉거리는 걸 들었다. 원장선생님이 오늘쯤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하셨던 기억이 나서 좀전에 거실에 데리고 나갔는데 서지도 앉지도 못하고 그냥 옆으로 쓰러진다. 힘든지 또 개구호흡을 잠깐 했다.

괜찮다고, 아무래도 괜찮다고, 힘들면 가도 된다고, 하지만 좀더 기운내보자고 얘기해주었다. 우리가 함께한 기억들에 대해 얘기했다. 물론 이건 다 나를 위한 일이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네가 갈 때 내가 곁에 있을 거라고, 거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노땡이 가져온 쵸코파이를 먹었다.

다른 고양이들은 다들 아무렇지도 않다.
가장 힘든 건 항상 생각하지 못한 곳에 있다.
#kitten_kiki


2020-05-01 12:01 무기력하다. 고양이들이 다 자기 별로 가고 나면... 다 정리하고 아주 긴 여행을 떠나야지 생각했다. 뭐... 내가 먼저 내 별로 돌아갈지도. 도법스님 말씀 대로 ‘누가 먼저 갈지는 아무도 몰러’지.
지금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나에게 제일 힘든 게 이런 거.

2020-05-01 23:29 키키 상태가 급격히 안좋아져서 의사선생님께 상태를 얘기하고 주사기로 하던 강제급식을 점심까지만 하고 중단했다. 저녁 약도 먹이지 않고, 의사선생님이 퀵으로 보내주신 약도 주지 않고, 수액만 놨다.

엊그제 집에 왔을 때부터 일어나기는 커녕 앉지조차 못했고, 다음날은 강제급식은 잘 받아먹었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힘들었다. 지금은 숨쉬는 것도 힘들어하고, 동공은 계속 커진 채로 있고, 수액은 몸의 낮은 곳에 고여서 배출되지 않고 조금만 건드려도 낮은 비명을 낸다. 이 상태에서 계속 약과 밥을 들이붓는 게 못할 짓 같았다. 갈 때가 된 거라면 아프지 않게, 고통스럽지 않게 보내주고 싶다.

몇년 전 방울이 아팠을 때 반려동물의 질병과 안락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노땡과 나는 그 다큐멘터리의 시각에 공감했고, 몇가지 합의를 했다. 우리 고양이들이 병에 걸려 회복의 가능성이 낮고, 이후에 스스로 움직여 음식을 먹고 대소변을 볼 수 없게 될 거라는 의학적 판단이 내려진다면, 그 시점에서 억지로 삶을 연장하지 말고 보내주어야한다고.며칠 전 키키를 처음 데려갔던 날 상태가 안좋다는 얘기를 듣고 치료 방법을 이야기할 때 의사선생님께도 이런 의견을 짧게 말씀드렸다.

하지만, 나름 구체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점’을 판단하는 저 기준이란 게 얼마나 뭘 모르는 소리였는지. 일주일 전만 해도 멀쩡히 걷고 먹고 오줌싸고 아양떨던 앤데 어쩐지 내일이면 일어나서 다시 멀쩡해질 것만 같다. 지금도 눈 위에 뽀뽀하면 짧고 힘든 그르릉을 한두번은 하는데. 의사선생님은 일주일 정도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면서 지켜봐야한다고 하셨는데 나는 지금 너무 빨리 판단을 내린 건 아닌지. 내 그 판단이 키키에게 어떤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kitten_k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