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똥자네한테 받은 크리스마스 고양이

당일 오전까지 장소조차 불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상최대의 인원이 일사불란하게 먼 곳까지 모여들어, 흥겨운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냈다.
케잌을 사들고, 와인을 사들고, 요리를 해들고 속속들이 모여든 5자매와 그 파트너들, 그리고 두 조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공감, 서로에 대한 완벽한 호의와 신뢰의 푹신한 매트리스 위.
누구의 눈치볼 필요도, 분위기가 썰렁해질까, 누구의 마음이 다칠까, 어디로 말이 날까 걱정할 필요도 없이 먹고 웃고 떠들고 즐겼다.


나는 속이 안좋고 피곤해서(게다가 파트너도 없고 -_-) 맥주도 한잔 못마시고 나중엔 소파에 누워있어야 했지만, 그 편안한 분위기와 재미있는 얘기들, 귀여운 조카들의 재롱을 맘껏 즐기다가 밤이 늦어 달콤한 졸음에 빠져들었다.
감기 후유증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이래저래 지쳐있었던 내게, 따뜻하고 편안한 안도감을 준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언니와 형부, 제부를 포함한 가족들(막내가 빠져서 섭섭했다), 유일한 솔로인 둘째 이모가 심심하지 않게 놀아준 귀여운 조카들, 동생들의 수호천사 찬수와 득수(이름이 마치 형제같다), 모두모두 사랑한다.

사진 더보기 : http://album.paran.com/yuna

<Coffee and Cigarettes> 중.
이미지는
http://coffeeandcigarettesmovie.com

다음날인 성탄절엔 생선회와 포도주, 그리고 단 과일들로 나의 동거 고양이들과의 작은 저녁 성찬을 준비했다(녀석들, 생선회를 싫어하다니 -_-).
조용하고 맛난 저녁을 먹고, 보글보글 커피를 내리고, 짐 자무쉬의 '커피와 담배'를 보다.
꺼져가는 '커피와 담배 세대(coffee and cigarettes generation)'에 보내는 오마쥬.

타인, 구면, 친구, 사촌, 사촌이 되려는 사람, 쌍동이까지 그 모든 유형의 관계.
그 틈새의 정신없는, 겸연쩍은, 적대적인, 질투하는, 친밀한,아무 것도 아닌, 혹은 죽음의, 순간들.
그 모든 것에 커피와 담배는 얼마나 그럴싸하게 묻어가고, 만만한 양념이 되어왔나.
이 영화에선커피와 담배가 양념이 아니라 그 모든 상황을 엮어가는 끈이 된다.


나는 짐 자무쉬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는 수다스럽지 않다. 그저 커피와 담배면 된다.
현란한 카메라웍도, 대사도, 배우도 필요없다(사실 배우진은 현란한다).
컬러도 필요없다. 흑백이면 된다.
그래도 몇번씩 보게된다.
놓친 뭔가를 재발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너무 흥미진진해서도 아니고, 현란한 배우들 때문도 아니다.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경주용 자동차처럼 정신없이 달리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질 것 같고, 무의미한 농담을 끝없이 하면서도 아무 눈치볼 필요 없는 편안한 파티 한 구석에 앉아 조는 것 같고, 부른 배를 깔고 노란 햇빛 아래서 배를 깔고 엎드린 고양이마냥, 그렇게 편안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놀라운, 무언가가 있다.


* 영화에선 '커피와 담배는 찰떡궁합'이라고 하지만, 솔직히는 '맥주와 담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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