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역사
러닝머신 20분, 스트레칭 후 서킷트레이닝 3회, 그리고 싸이클 20분이 매일 하는 코스.
집에 TV가 없는 내가 TV를 보는 시간은러닝머신 위에 있는그 20분이 전부인데, 그 시간엔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세기의 항공기 사고나 동굴 탐험 등등 무지 재밌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내보낸다(하긴 이 채널은 하루종일 봐도 재밌다).
오늘은 '인류의 여정'이라는 시리즈가 나오고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생겨난 인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서로 다른 모습의 '인종'으로 나뉘어지는 그 장대한 여정.
이전에 고고학만으로는 밝혀낼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요즘은 발달된 유전학덕분에 밝혀지고 있다는데...
잘생긴 우리의 주인공께서 지구 곳곳의 오지를 돌면서 직접 그 표본(사람)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혈액을 채취한 후 수백 수천명 사람들의 DNA 분석을통해(티비에서는 주인공 혼자 하는 것처럼 나왔지만 설마 그럴리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이 사실은 같은 조상 아래에서 나왔다는 것을 밝혀준다. 아 놀라워라.
"아프리카는 인류를 낳았고, 중앙아시아는 그 인류를 키웠다."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인들이 해안선을 따라 인도와 호주,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번성해 북유럽과 아메리카 대륙까지 퍼져나가면서 다양한 환경 아래 제각각 다른 피부색과 생김새를 발전시켰고, 인구가 막대하게 증가해 그 인종들이 섞이고 또 섞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들의 생김새와 유전자에는그간의'흔적'이 남아있다.
같은어머니 아버지 아래서 나온 형제들을 이제는 서로 이해할 수 없기조차 한 다른 '인종'으로변화시킨 그 세월이 신기하고, 수천 세대를 거친 그 무서운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몸 속의 증거가또 신기해서,
도저히TV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리해서, 지방질이 없으니 유산소 운동을 오래하면 안된다는그간의 트레이너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장장 60분 동안을 러닝머신만 했다(그래도 다 못봤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나의 먼 조상이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겪었던 점진적인 변화의 역사가, 나의 이 몸 안에도 고스란히 남아있겠지. DNA는 둘째치고, 이 작은(그리고 짧기도 한 -_-) 몸과 평평한 얼굴 역시 그 오랜 세월을 걸쳐 최적화되어 온 산물이 아니겠나.
갑자기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게 느껴진다(물론 다리가 후들거려서 그렇기도 하고... 아직도 후들거린다).
게다가 그 오랜 시간에 비하면 나는 미세한 먼지 같은 한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늙고 죽어 없어지고 다음 세대로 전달될 이 짧은 세월의 DNA 소유의 증거를, 세월에서최적화된 생김새를 거부하고 큰 돈을 들여 몸 속에 이물질을 집어넣고 째서 주름을 만들고 하는 짓거리 따위가 다 무어냐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건 마치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한 선물을 상대방이 '이쁘지 않쟎아!'라며 칼질을 하는 격이니, 그 선물을 준비한 시간이 느낄 배신감은 어떠하겠냐고.
*살아오면서 주변에서 생김새 때문에 큰 불이익을 봤다거나 하는 경우는 못봤다.
다만 인상이 안좋아서 불이익을 보는 경우는 좀 있겠다.
얼굴이 맘에 안들고, 얼굴 때문에 뭔가 안되는 거 같으면 많이 웃고 사시라.
(나는 내 얼굴이 그런대로 맘에 들기 때문에 그닥 많이 웃진 않는다 -_-)
그리고 사실 내 생김새는 나보다 다른 남이 보는 시간이 더 많으니 내가 멋지게 생겨봐야 좋을 것은 또 뭐냔 말이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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