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두 편의 영화
토요일 밤을 새우고 일요일 느지막히 일어나 마사지와 마스크를 하고, 차를 마시고, 빨래를 개고, 느긋하게 두 편의 영화를 본다.
'You Can Count on Me',
박기복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영매 :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우연히도 두 영화 모두 형제에 대해,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죽은 언니 무당의 씻김굿에 쓸 제물을 손수 낚시를 해 말리고 장만하는 무당 채정례.
언니와 동생, 그녀들의 주름진 얼굴을 보며
언젠가는 사그라들 젊음을,
쪼그라들어 없어질 나의 몸뚱이를 생각한다.
그리 길지 않은인생.
우린 남을 사랑하는 법, 남에게 상처를 주는 법을 모두 가족에게서 배운다.
그래서 가족에 대해서는 사랑도, 상처도 더 깊다. 상처는 이승에서 풀 수 있을때 풀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한이 되어버린다. 무당, 혹은 영매라는 존재는 오랫동안 이렇게 산 자와 죽은 자의 한을 풀어주는역할을 해왔다.
가족이 있어서, 형제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나에겐 그런 영화였다.
쟁글거리며 울려대는 꽹과리 소리 만큼이나 강렬한화면들, 기름기 하나 없이 건조하지만, 그래서 좋은 설경구의 내레이션.
내가 평생 가야 만나보지 못할 사람들을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그들이 평생에 걸쳐 보듬어온 가슴속 이야기들을 듣고, 심지어는 신이 내리는 것처럼 그들이 내 안으로 파고 들어오는 경험을내 방에 앉아 할 수 있다는 것.
좋은 책만큼이나, 좋은(다큐멘터리) 영화가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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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21의 박기복 감독 인터뷰 중 발췌 :
"...극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돈을 못 벌어서 그렇지 다큐멘터리 작가라는 게 재미있고 작품에 대한 성취감도 높다. 작품 한편 하면서 관련서적 수십권을 보면서 공부한 것만해도 남는 게 많다. 물론 다음 작품 하고나면 마흔 넘겠구나 싶을 때는 조급한 생각도 들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극영화는 할 필요가 있을 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고급인력이 다큐멘터리 만드는 작업에 참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안타까운 것은 이 분야에선 성공한 전범이 없다는 점이다. 인디음악이건 뭐건 전부 성공한 전범이 있지만 한국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은 아무리 성공해도 기본적인 부가 보장되지 않으니까 다들 조금 하다가 빠져나간다... 가끔 기록영화로 극장상영해서 돈 벌어보는 게 꿈이라는 말을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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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오마이뉴스'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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