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 관한 얘기 중 이런 얘기가 있다. 남녀는 너무 생각이 틀리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할 때는 정확히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것이다'라거나 '나에게 이러이러하게 대해달라'고 말해야 한다고(정신과 육체를 모두 포괄한다 @.@).
리더쉽에 관한 책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상사가 부하직원의 잘못을 지적할 때에는 '합당한 이유에 의해 적절한 시기에 알맞은 방식으로 정확한 대상을 향해'야 한다고.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정확해야' 하고 또 '양방향'이어야 한다. 여자↔남자, 상사↔부하직원, 부모↔아이들, 강자↔약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말을 하는 사람의 스킬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네가 맘에 들어.보다는 나는 네가 이러이러해서 좋아.라고
나는 당신이 싫어.가 아니라 나는 당신이 나에게 이러이러하게 대하는 것을 이렇게 고쳐주었으면 좋겠어.라고
회사가 조까태.가 아니라 사장이나 상사한테 가서 (예를 들어) 나 이만큼 했으니 연봉 이백프로 올려주쇼.라고
이눔의 나라는 도대체 맘에 안들어.가 아니라 스스로 뭔가 바꾸려는 노력을 하든가 아니면 해당 부서에 이런 정책은 이렇게 바꾸어 주세요.라고 얘기해야 한다.
문제가 뭔지,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스스로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방에게서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을까?
사실 제대로 커뮤니케이션했다고 해도 그게 받아들여지느냐는 또 다른 문제긴 하다. 뭐 하지만 유신시대도 아니고. 말한다고 어디서 잡아가는 것도 아니지 않나.
"말만 하면 쥐어터지는 분위기에서 자라서 말하기가 무서워요"
"말이 많으면 다른 사람들이 혼자 튄다고 싫어할지도 모르는데 구태여 말해야 하나요?"
"말해봤자 해결이 안될게 뻔하니까 차라리 말 안할래요"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도 그냥 혼자 조용히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상대방이 남자든 여자든, 상사이든 부하직원이든, 강자든 약자든 간에, 그사람은 나와 다르다. 내 생각과는 달리, 내가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내가 원하는 것을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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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나 연인 같은 사적인 관계에서는 아마 말하지 않아도 챙겨주고 알아채 주는 그런 것을 얼마간 기대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게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공적인 관계에서는, 불만이나 요구가 있을 때 바로 그 상대 앞에서 당당하고 정확하게 얘기해야 하며,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대안까지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유치원 시절처럼, 내가 입을 다물고 있어도 세상이 친절하게 나에게, 뭐 먹고싶은 건 없니? 어디 불편한 데는 없니? 뭐 불만은 없니? 라고항상 물어봐줄 거라고 생각하나?
설령 물어봐준다고 해도, 그래서 상대방이 해결해준다고 해도, 상대방이 생각하는 해결책과 내가 원하는 해결책은 다르지 않을까? 그럼 또 그때 가서 '내가 원한 건 그게 아니었는데...' 하면서 혼자 투덜거리실 겐가?
회사 내의 상사와 부하직원의 커뮤니케이션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은 매우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가 끊임없이 먼저 자신의 일을 챙겨주길 바라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이 요청하지 않았는데 먼저 도움을 주려고 나서는(혹은 참견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후자의 경우 먼저 자신이 최선을 다해 해결하려고 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상사나 동료에게 도움을 청한다. 이런 사람은 상사의 자리에 있다고 해도 자신의 팀원에게 일단 일을 맡긴 후 합의한 데드라인이 될 때 까지는 일단 그대로 두고 본다. 정해진 시점에서 완성된 결과물을 가지고 조언하고, 그 전이나 후에는 본인이 요청하지 않는 한은 참견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이게 옳을 수도 있고 저게 옳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렇게 회사 내의 다양한 타입의 사람들 속에서, 끊임없이 너무 많이 챙겨서 귀찮게 하거나, 혹은 너무 방관하는 등의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규정한 것이 바로 정기적인 '보고' 체계이다. 이를 통해 부하직원은 자신이 어떤 일을 정해진 스케쥴에 맞게 하고 있다거나, 아닐 경우 어떤 문제가 있고 문제의 원인은 무엇이고 누구의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다른 팀원이나 상사에게 알려줄 수 있다. 도움을 청할 때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가 어떤 일을 언제까지 어떻게 해줘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될 수도 있다는 것까지 정확히 알려주어야 한다.
누군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 하나하나를 탐문하고 다니지 않아도, 이 최소한의 규정에 따라서 서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고, 필요한 도움을 구하고 해결할 수 있다. 아주 기본적인 이 커뮤니케이션 룰을 그저 '형식적인 페이퍼웍'이라고 생각한 채 대충 무시하고, 끊임없이 누군가 '비형식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체크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굉장히 불합리한 발상이다.
그럼 상사가 해야 할 일은?
상사는 부하직원을 체크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체크한다. 그리고 부하직원 말고도 여러 다른 루트로 그 일을 체크해야 한다. 그리고 부하직원을 평가한다. 그게 그사람의 일이다. 그런데 부하직원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사람은 간과할 수도 있다. 그럴때 그 부분을 알려주는 것이 부하직원이 해야할 일이다. 그리고 부하직원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일 때 개입해 더 넓은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상사가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상사라는 사람이 일에 대해서 항상 유치원 보모처럼 꼬치꼬치 물어보고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개인적인 교감을 틈틈이 나누는 것이 바람직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눔의 상사가 또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디 사람이 다 맡은 일을 제대로 하나? 그럴 경우는 직접 면전에서 다시 요구하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윗선에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꼴통 상사가 잘못을 고칠 거 아닌가. 그 문제는 지금 그가 하는 일에 국한된 것일 수도 있고 조직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문제든, 해결이 안될때 위로 위로 올라가며 얘기할 수 있는 경로만 있다면, 그 후는 부하직원의 의지와, 그 조직에 대한 그의 애정에 달렸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상사는 부하직원이 필요로 할때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지, 부하직원이 하겠다고 한 일을 제대로 못했을때 감싸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 나는 원칙주의자이고, 원칙은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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