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폴 오스터를 읽다보면... 자기 자신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남들이 지루해하건 말건 내처 지껄여대는, 혹은 남들이 지루해할까봐 계속 지껄여대지만 여전히 남들은 지루해하는... 그런 사람과 마주앉아있는 느낌도 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 검고 작은 책을 손에서 놓기는 싫었거든요. 헨젤과 그레텔이 마녀를 따라 가면서 가져간 빵조각처럼, 혹은 아껴서 먹기도 하고, 혹은 길을 잃을까 잘라서 중간에 떨어뜨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계속가지고 다녔지요.

낯익은 거리, 혹은 낯선 거리를 그냥 내처 걸어본 기억이 있다면, 읽어보세요.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빵조각을 천천히 씹듯이.

...때로는 마치 어느 도시를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우리는 길을 따라 걷다가 기분 내키는 대로 다른 길을 택하고, 어떤 건물의 처마 장식을 감상하기 위해 걸음을 멈춘다. 또 우리가 찬탄해 왔던 어떤 그림을 떠올려 주는 포장 도로의 얼룩을 살펴보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들이 내면적으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상상해 보고, 점심을 먹으러 싸게 파는 음식점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밖으로 나와 강 쪽으로(만일 그 도시에 강이 있다면) 계속 걸음을 옮긴다 - 미끄러지듯 떠가는 보트들이나 항구에 정박한 큰 배들을 보기 위해. 어쩌면 걷는 동안 혼자서 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을 불거나 아니면 우리가 잊고 있던 어떤 것을 기억하려고 애쓰면서. 때로는 우리가 시내를 걷고 있는 동안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고 있는 것처럼. 언제 어디에서 멈춰야 할지 알려주는 것은 오직 우리가 느끼는 피로감인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러나 한 걸음이 어쩔 수 없이 다음번 걸음으로 이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가지 생각에 이어 다음번 생각이 뒤따르기 마련이고, 결국에는 한 가지 생각이 하나 이상의 생각(이를테면 그 중요성이 서로 같은 두 가지나 세 가지 생각)을 끌어낸다. 그래서 첫번째 생각을 따라 결론까지 가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두번째 생각을 따라 결론까지 가기 위해서도 원래의 생각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고, 그 다음에는 세번째 생각에서도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만일 우리가 마음속으로 그 과정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한다면 순환계(심장, 동맥, 정맥, 모세 혈관)의 이미지에서나 지도(예를 들자면 도시, 그것도 되도록 큰 도시의 거리 지도나 아니면 주유소에서 볼 수 있는, 미 대륙을 가로질러 뻗어 나가고 갈라지고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 지도에서도)의 이미지에서처럼 망상(網狀)으로 얽힌 길들이 그려지기 시작해서 우리가 시내를 걷고 있을 때 정말로 하는 일은 생각이고, 그것도 우리의 생각이 여행을 구성하는 그런 생각이다. 그런데 이 여행은 우리가 뗀 발짝보다 더 많지도 더 적지도 않아서 결국 우리는, 설령 우리의 방을 떠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여행을 했다고, 그것은 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또 설령 우리가 그곳이 어디인지 모른다 하더라도 어떤 곳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폴 오스터 '고독의 발명' 중 '기억의 서' 일부

폴 오스터 원작의 영화 'Smoke'('Smoke 2'였나...)에 출연했던 짐 자무쉬. 카리스마라는 단어는 그런 데다가 쓰는 거였다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