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사람, 블로그, 끈

일.work 2004. 2. 21. 13:49

루비나비님의 푸념과, 휘발성 고양이님의 한시적(?) 이사에 이어 해피님까지 다른 곳을 고려중이라고 방명록에 글을 남기셨다. 한미르 블로그가 문제가 많긴 많은가보다.

사실 나는 블로그가 10개도 넘는다. 내가 디자인한 곳, 벤치마킹하느라 만든곳, 그리고 회사블로그, 개인블로그까지...
블로깅을 처음 시작한 곳은 바로 여기, 한미르 블로그였다. 그런데 처음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할 때와는 달리, 방문자도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 꽤 애착을 갖고 있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다. 내 개인 블로그를 만들어 이사를 하려고 했던 것인데, 그게 그렇게 되지가 않았던 것이다...

나는 10년 전에 만든 천리안 계정을 아직도 쓴다. 하루에 수백통씩 스팸이 와도, 회사 메일과 천리안 이외에 다른 건 쓰지 않는다.
옷이나 신발, 컴퓨터 등도 이것저것 구경하는건 좋아하지만 그냥 맘에 드는거 하나 생기면 다 떨어지고 망가질 때까지 그것만 입고, 그것만 쓴다(그래도... 갈아입긴 한다 ;-).
어쨌거나 내겐 익숙함이 가장 중요하고, 익숙해지면 다른 것에 별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움... 그러나 남자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다. 어찌하여 그 문제에는 꼭 `싫증`이라는 변수 하나가 더 개입된단 말이냐. 푸허허 -_-;)

그렇지만 이건 익숙함의 문제는 아니다.
루비나비님 말대로 사람때문이었다.
나의 글, 사진 따위를 옮기는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 남겨진 코멘트들, 방명록에 남겨진 한줄 인사들, 적지만 규칙적으로 내 블로그를 찾아주는 방문자들의 기록들, 그런 것들 때문에 섣불리 내 글을 지워버리고 뜰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다른 한가지 이유.
이 역시 사람 때문이긴 하다.
하이텔과 한미르의 블로그 통합 작업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그리고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이 일에 쏟아붓고 있는 열정을 보면서, 나도 그 결과물에 점점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뭐... 대세는 어쩔 수 없다.
규모가 크고,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 우세한건, 어떤 곳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몇몇 포탈을 뺀 나머지들은 모두 불리한 입장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단위 서비스들을 단지 `개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자기 영역 밖의 일이다. 전적으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위에서, 혹은 옆에서 마케팅이나 홍보를 잘해서, 혹은 돈을 처발라서라도 성공을 시키거나, 죽을 쑤어 버리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했거나 할 수도 있는 것이다(애써 만든 사이트를 갖고 죽을 쑤어버리는 걸 보면 참 한심하고 가슴아플 때도 많다..).

아, 얘기가빗나갔다 -_-;
어쨌든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거대한 회원 규모나 막대한 자금도, 방대한 서비스 범위나 심오한 데이터도 아닌, 바로 그걸 쓰는 하나하나의 사람, 그리고 그 사람들간의 끈이라고 생각한다. 거대하기보다는 촘촘한 끈들. 말이다.

블로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무제한 용량을 준다고 해서 거기에 평생 정말 가치있는 자료들을 무제한으로 모아놓을까? 어쩌면 내가 블로그에 올리는 사진들, 글들, 모두 쓰레기일 수도 있다. 스스로 쓰레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내 컴퓨터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으니, 모두 날라가도 난 아무 상관없다.

내 블로그에 몇백명, 몇천명이 와본다는 것, 이건 물론 중요하다. 내 목소리를 많은 사람들이 읽어준다는 것. 하지만 천성적으로 나는 모르는 사람 몇백명보다는 내 주변 가까운 사람한두명과의 끈끈한 의사소통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몇몇 거대 포털 블로그에서 노출 기회가 많다는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그곳엔 내 블로그 외에도 무수한 읽을 거리들이 있다는 것. 역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사실이다.
게다가 RSS reader를 쓰는 나로서는 어떤 사람의 블로그가 어느 포털에 있건 별로 상관이 없다. 그냥 리더에서 업데이트된 글 리스트를 살펴보고, 코멘트를 달고 싶으면 가서 달고, 그러면 그만이니까(그러나 아직도 비회원 코멘트를 막고 있는 우스운 포털 블로그들이 몇몇 있다... -_-; 한미르도 그중 하나...).

결국, 내가 어떤 곳에 둥지를 틀고 있든, 별로 상관은 없는 거다.

블로그라는 것은 개인적이면서도 상당히 개방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이다. 물론 서비스를 하는 포털의 입장에서는 좀더 폐쇄적으로 운영하고 특이한 기능들을 넣고 해서라도 회원과 그들이 생산하는 컨텐트를 확보하고 싶겠지만, 어쨌거나! 블로그의 기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 끈이 끊어지거나, 이어지려는 행위를 방해받거나 해선 안된다는 생각이다.

나는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사람 사이의 이 `끈`을 좀더 자유롭게 맺을 수 있도록 블로그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강화하고, 각종 포털간의 장벽들을 낮추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블로거들 역시포털 블로그들의 벽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롭게 나돌아다니시길...
그리고 어디로 옮기면 좋을까 너무 조바심들 내시지는 마시길...
아, 마지막으로,
옮길 때는 주소를 꼭 남겨주시길...
(끈은 이어져야 한다. -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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