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붓다로살자 기록 - 타인과 나
2019-04-10 Alex Honnold <Free Solo> - 인류가 분노와 증오, 혐오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불교에서 말하는 채식 동물과도 같은 인내와 자기성찰, 연민과 자비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가 다른 동물에서 볼 수 없는 유래 없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문명의 진화를 이룬 데는 육식동물과도 같은 도전정신과 어려운 곳에 굴복하지 않는 저항 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알렉스 호놀드의 프리 솔로를 보면서 도대체 이 사람들이 왜 그런 도전을 하는지 나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것이 등반 역사의 한 획을 긋고 다른 등반가들이나 다음 세대 등반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또 다른 획이 나오게 한다는 것은 틀림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던 원동력이자 다른 어떤 동물 종보다도 빨리 진화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는 것도.
최근 이렇게 상반된 두가지에 성격을 나는 여러군데서 보아왔다. 불교가 채식동물과 같은 면을 강조 하는 종교라면, 얼마 전에 읽은 SF 소설에서는 인류가 어떻게 자신보다 더 지능이 높고 중국어 혐오 같은 곳에 뇌세포를 낭비하지 않으며 지적인 발전을 이루는 다른 종족 보다 더 뛰어나고 빠른 속도로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는지를 탐구하는 글을 읽었다.
수행 방식에 있어서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직면한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다가 수행을 하게 되고, 자신의 고통의 해결 되면 주변의 고통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다른 사람은 주변의 고통을 보고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그 고통을 해결해보겠다고 나선다. 자기가 난 자리에서 저절로 자라는 풀을 뜯어먹고 자라는 채식 동물, 스스로 끈임없이 사냥감을 쫓아 달리고 남보다 더 빨리 달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육식동물, 그 둘의 성격이 우리 모두에게 둘 다 들어 있고, 사람마다 강한 쪽이 있다. 나는 타고난 것을 넘어서는 것이 수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타고난 것을 더 발전시키는 것이 수행인지도 모르겠다. # 붓다로살자
https://noyuna.tistory.com/3919
2019-04-01 22:56 오늘 명상 모임 마지막에 선생님은 “상처는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말씀하셨다. 상처는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누군가 내게 상처를 주려고 해도 내가 받지 않겠다면 줄 수 없다는 것, 상처를 받고 받지 않고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반사~’ 같은 거라고 해야하나;;).
문득, 자비심 역시 마찬가지구나 생각했다. 자비심은 내가 가져야 할 성품이지 남에게 기대해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구나 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비심 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깊은 질곡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주변 사람에 대한 자비심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구나 하고.
남의 병은 신기하게도 한눈에 보이더라.
내 마음은 예전보다 평화로워졌는데, 어쩐지 예전보다 더 많이 울게 된다. 예전엔 내 문제만으로도 울 일 천지였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 그것의 원인이나 옳고 그름, 좁고 넓음, 무겁고 가벼움에 상관없이내것처럼 마음에 와닿는다.
그 사람이 언젠가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길.
우리가 할 수 있는, 해야하는 일이란, 이 마음으로 그를, 그들을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내게 그렇게 해준 것처럼.
#붓다로살자
https://noyuna.tistory.com/3919
2019-04-03 09:54 요즘 #불한당 모임에서는 숫따니빠따를 읽고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 유명한 ‘코뿔소 뿔의 경’에 보면 ‘자기보다 낫거나 동등한 친구와 가까이 사귀어야 한다’고 나온다. 또 어제는 지인의 텀블러에서 용수스님의 말씀을 읽었는데 여기는 ‘어리석은 사람과 엉키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라고 했다.
일단 ‘모두들 자기와 동등하거나 나은 사람하고만 가까워지려고 하면 어리석은 사람은 누구랑 사귀나?’라는 질문이 머리 속에 맴돌고ㅋㅋㅋ. 왜 이런 말씀들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계속 생각 중인데...
지금 떠오른 것 하나는 자기보다 어리석은(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있을 때 우리가, 아니 내가 갖게 되는 마음이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낫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아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마음. 그렇게 ‘나’에 대한 상을 또 만들고 강화하는 것, 그걸 경계해야 하는구나 하고.
#붓다로살자


2019-04-03 22:47 신뢰하는 마음.
‘많이 신뢰한다’는 게 사실은 ‘내가 보고 싶은 모습 외에는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네.
신뢰하는 대상에 대한 상을 만들고 그것에 집착하는 마음. 거기서 벗어나는 것은 전혀 신뢰하지 않는 마음.
#붓다로살자
이래서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고 한 건가...
https://noyuna.tistory.com/3922
2019-04-03 23:31 ‘나와 타인의 불성을 신뢰하지 않고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나와 타인의 불성을 신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산다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반응과 결정이 어떻게 달라질까.
내가 ‘신뢰’라고 믿고 있었던 것은 혹시 나의 힘든 문제들에 대한 고민이나 판단을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기대려는 약하고 게으른 마음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books #재마스님 #기쁨의세포를춤추게하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어떤 부분을 내 기준으로 추측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연습을 더 해야한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냥 그대로 바라보는 것에 그치자. 내가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게 얼마나 많을까. 신뢰나 이해 같은 것도 사실 내가 편하자고 갖다붙인 마음들. 인간의 인간에 대한 평가는 그저 ‘귀여운가 아닌가’ 정도에만 그치는 게 좋을지도. 우리가 고양이들에게 하듯이. (하지만 고양이는 다 귀엽지.)
https://noyuna.tistory.com/3923
2019-04-06 며칠 전 지인에게 한 말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하지 않는 게 나았을까? 며칠 동안 생각했는데 결국은 말이 아니라 그 말이 나오게 된 생각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지인과 이야기하며 깨달았다. 그리고나니 일년 전에 쓴 글에서 고엥까 할아버님의 ‘무엇이 나쁜 말인가’가 눈에 들어온다. 말이 나쁜 게 아니라 생각이 어리석었구나. 팔정도의 ‘정어’ 앞에 ‘정견’이 있다던가 ‘정사유’가 있다던가 (난 이게 항상 헛갈림ㅋㅋㅋㅋ),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지만 역시 말 앞에는 생각이 있다는 걸 또다시 삶에서 배운다.
#붓다로살자 #고맙습니다
https://noyuna.tistory.com/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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