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바라던 비가 오는 좋은 토요일.
하지만 밤을 새우고도 모자라 오후까지 지속된,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은모종의 불화.
지친 마음으로 2주전에 빌린 책들을 반납하러 혼자 도서관에 갔다가 피터 게더스의 '파리에 간 고양이'를 빌려왔다.

사실 오늘은 다른 책을 찾고 있었는데, 찾으려던 책은 안보이고 이 책이 눈에 띄어서 덥석 빌려왔던 것. 요즘 도서관에 가는 일에 맛을 들여서, 2주마다 한번은 꼭 도서관에 간다. 버스를 타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조용히 뭔가를 읽고 있는 사람들과 수많은 책장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두권의 책을 골라낸다. 마감 시간이 좀 남았으면 잡지나 얇은 그림책들을 골라 나무 책상에 앉아 읽는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나면, 사거리 맞은편 이마트 4층의 맥도날드에서 베이컨토마토버거를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훑어본다. 전면이 모두 창으로 된 이마트의 구석 테이블에서는 낮은 앞산과, 도서관, 그리고 낮고 오래된 아파트가 내다보이고, 하늘이 내다보인다. 길바닥엔 흰 선들이 어지럽게 그어져 있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를 맞은 검은 길이 반짝거리고, 저녁 어둠이 밀려온다.


피터가 노튼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 이 고양이놈, 정말 똑똑한걸. 음, 우리 고양이들은 촌고양이라 같이 산책도 못하는데(구석에 가서 숨거나 나한테 엉겨붙으면서 막 할퀸다).. 음...
나는 사람이 죽으면 그 정신과 혼이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로, 무언가로 전이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쉽게 말해 다시 다른 것으로 태어난다고 해도 좋을 것 같지만, 꼭 하나의 생명이 다른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정신 뿐만 아니라 몸도 그렇지 않은가. 썩어서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아주 똑똑한 고양이들을 보거나 그런 고양이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아마 그 고양이는 전생에 고양이가 되고싶어하던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면, 나는 분명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을 것이다. 그것은 한치의 의심도 없다.
고양이.

* 열한시. 다 읽었다. 웃으면서,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중간에 방울이 키키와 가죽끈을 가지고 좀 놀아주어야 했지만.

얼마 전부터 아침마다 재채기와 콧물이 계속 나오고,아무 문제 없던 피부에도 따가움과 가려움증이 생기고, 긁어서 생긴 흉터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마 고양이털 같은 게 원인일텐데, 평생 알러지 같은 것이 한번도 없었던 나로서는 좀 힘들다. 매트리스를 바꾸고 공기청정기와 연수기를 대여하고 커튼도 떼어버렸고 청소도 하루에 꼭 한번씩 하고 있다(그래도 별로 차도는 없다). 고양이를 키운지 일년 쯤 지나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어서 꼭 고양이가 원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면역력이 약해진 것이려니 생각한다.이런 얘기 하면 다들 당장 고양이를 내보내라고 하겠지만, 정말 꿈에도 그럴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뭐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다면 이렇게 사는거지. 이 책을 읽어보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이다.

아, 그리고이 책 읽으면서 잠깐 '음, 노튼에 비하면 우리 방울이 키키는 너무도 평범하쟎아!'라고생각했던 것에 대해 조금 미안하게 생각한다. -_-;
고양이.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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