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게 그가 필요하다
이번 일.
드문 일이긴 하지만 이번엔 처음부터 내 머리속에 확실한 비전이 있었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사이트의 개편 이유, 방향, 강조점, 그에 따른 레이아웃, 색채, 그래픽 컨셉까지, 내 머리속엔 이미 모든 것이 그려져 있었다고나 할까. 게다가 회사 내부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내가 확신했던 부분들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여러번의 회의와 리뷰를 거치면서 마이너한 부분들을 조금씩 머리속에서 수정했고, 그 그림은 점점 형체를 확실히 해나갔다. 다른 때처럼 우연을 기대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바꿔볼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시안을 만들어내는 데 채 몇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만족...
나는 좋은 디자인, 훌륭한 디자인은 여하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에도 훌륭해보이게 마련이라는 생각을 해왔고, 내가 흡족해했던 디자인은 대개 클라이언트나 다른 사람들도 마음에 들어했었다(고 생각한다 -_-;). 내가 봐도 만족스럽지 않은 것들은 누가 보나 만족스럽지 않게 마련이다.
그러나... 오늘, 이상하다.
내가 믿던 디자인의 원칙이라는 것은 다 없어져버린 것인가?
creativity, 완성도, 이런 것들은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일까?
아...정녕 내 눈이 이상해진 것이란 말인가 -_-;
사람들이 이상해진 것인가, 내가 이상해진 것인가...
오늘같은 날, 나에겐 그가 필요하다.
내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날, 의기소침해진 날, 침튀기며 역설하는 나의 지론을 모두 이해하고 맞장구 쳐주던 그.
"네가 틀린게 아냐. 사람들이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뿐이지. 넌 항상 최고야..."
그는 그랬다...
아... 오늘은 거기까지도 안 바란다.
"그 사람들은 이러이러해서 이런 것을 선호하고, 이렇게 판단을 내리는 거야. 그건 네가 이해해야 해. 하지만 네 말은 옳아..."
그의 옆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침을 튀기며 왜 대중의 취향은 이런거야, 왜 얘는 이렇게 완성도가 떨어지냐? 왜 난 이렇게 잘난거야, 그치? 따위를 이야기하며, 맞장구치며, 그러고 싶다.
지금 나에겐... 그게, 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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