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 2011-03-05 18:40 언제부턴가 삶이 참 길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은 점점 빨라지고 산업의 모든 분야는 마치 연예계처럼 변해서, 한 건 터뜨리고, 유명해지고, 더 큰 것에 붙거나 몇년 후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일들이 반복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삶은 점점 길어진다. 사람들은 별처럼 떠오르는 것들을, 그것들만을 바라보며 자신도 그렇게 떠오르고 싶어하고, 떠올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혹은 떠오르고, 떠오르지 못해 불안해하고, 혹은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우리는 가라앉아 사라진 것들에 관심이 없지만, 마치 그것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삶 역시 1회용품처럼 사라진 것처럼 여기고 있지만, 사라진 것들의 한 부분을 이루었던 사람들의 삶은 어디선가 지속되고 있을 것이다. 가라앉은 채로. 길게.

    디이터 람스(Dieter Rams) 전을 보고 왔다.
    그의 디자인이야 50-60년대 하이파이 오디오 기기들을 제외하고는 익히 보아온 것들이라 큰 감흥은 없었지만(그래도 멋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전시물을 모두 들러본 후 전시장 한 켠에서 보게 된 그에 관한 짧은 다큐멘터리는 많은 생각들을 하게 했다.

    "미국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요? Mr. Braun이라고 합니다."

    23세의 디터 람스는 1955년 브라운에 입사해 1997년까지 일했다. 설립된지 거의 한 세기가 되어가는 회사에서 40년이 넘게 일하며 산업디자인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는 것, '미스터 브라운'으로 불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솔직히 나는 모르겠지만,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공감했다.

    그는 그가 평생 해온 일이 '사물의 본질에 가까워지도록 디자인을 줄이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것이 '소비자들을 위한 의무'라고 생각했으며 이런 것을 제품 디자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나아가 온 세상에 구현하고 싶어했다.

    아주 오랜만에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고, 호감을 느꼈다. 디자인이란 것, 일상에서 이름다운 것들이 주는 행복과 마음의 평화를 생각했다. 손에 딱 맞는 우아하고 깨끗한 어떤 것을 쥐고, 그것으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기분. 대량 생산의 시대에 디자인이란 것은 어쩌면 좋은 기를 나누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거꾸로 생각하면 세상을 타락시키고 더럽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일을 바라보는 좀더 넓은 시각 : 그는 세상 만물이 모두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낭비해왔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5. Good design is honest.
    8. Good design is thorough down to the last detail.
    10. Good desgn is as little as possible.

    그리고 성취한다는 것. 그 자부심과 만족과 행복에 관해. 생각한다.
    '확신에 가득 찬 주장을 펼치면서도 시적 감흥을 잃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우아한 것들을 생각하다
    삶이 질척거릴 때, 열정을 통해 우아하게 완성된 어떤 것을 마주함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느꼈다').

    책, 영화, 전시, 음악… 그 중 최고이면서도 가장 마주하기 힘든 것은 아마 '인간'일 것이다.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 완성은 디터 람스의 말처럼 '요란하지 않고 조용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우선은 좀더 평온해지고 좀더 강해져야겠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 : '그러려면 충분히 강해져야겠죠. 그래서 개인적인 삶이 중요합니다.'
  • 2011-03-22 00:05 지금과 다른 방식의 삶 혹은 일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의 일은 지금 상태에서 내가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 + 남보다 잘할 수 있고 재미있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엔 그만큼 감당하거나 견뎌내야 할 것들이 있다.
    돈이야 많이 벌면 많이 쓰는 거고 적게 벌면 또 그에 익숙해질 테니 상관 없다. 내게 부양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어쩌면 '지금과 다르다'는 것에 돈을 버는 방식 뿐만 아니라 돈을 쓰는 방식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이 아니라 당연히. (지금은 지금의 생활 방식을 '견디기' 위해 들어가는 돈도 꽤 많다. 이런 것들을 깨달을 수록 점점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남보다 잘할 수 있는 일. 그게 꼭 지금 하는 이 일 뿐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도 하지만(근거 없는 낙관주의와 자기애) 그보다도 지금의 나는 '남보다 잘한다는 것'에 예전처럼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남보다 잘한들 못한들 도대체 어떻단 말인가. 그게 '남보다 돈을 잘 번다는것' 외에 내게 큰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은 삼십대 초중반부터 생각해왔고, 기대해왔던 일이다. 그때 머뭇거렸던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