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1 위빳사나 10일 코스 한달 후
붓다로살자.live as buddha
2018. 6. 11. 11:00
- 2018-06-11 01:05 i know that feeling...
- 2018-06-11 12:54 담마코리아의 위빳사나 명상 10일 코스를 다녀온지 한달이 지났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최고의 상태였던 몸과 마음은 천천히 이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갔고, 거기에 이런저런 다른 명상법이나 다른 얘기들을 접하면서 혼란과 의심에 빠졌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무엇 때문에 이걸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평생을 시달려온 고통에서 빠져나오고 싶었고, 살고 싶었다. 깨달음의 다음 단계가 뭐든, 기쁨에 집착을 하는 게 좋든 안좋든, 자아가 있든 없든, 이 명상법이 붓다의 것이든 아니든, 지금 내게 그런 게 중요한가. 몸이 아픈 사람이 좋다는 건 다 해보듯 그냥 해보는 거다.
위빳사나 코스에서 다루는 영역을 내가 이해한 한도에서 그려봤다(그림 참고). 불교의 이론이나 명상법의 종류에 대해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아는 것들 위주로 그렸으니 잘못된 게 있으면 알려주시길. 위빳사나 명상법이나 담마코리아의 위빳사나 명상 10일 코스에 대한 소개는 이 글이나 불광미디어 기사에 잘 나와있으므로 적지 않고(그 밖에도 불광미디어 사이트에서 '위빠사나'로 검색하면 참고할 만한 많은 기사들이 나온다), 내가 경험한 것과 생각한 것 위주로만 써보려고 한다.
3일째까지는 호흡수행인 아나빠다 수행법으로 명상을 한다. 인중 부분에서 자신의 호흡을 느끼라는데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분명 숨은 쉬고 있는데 인중 부분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이틀이 지나면서 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부처가 죽을 때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섬겼는데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 '아난다'라는 제자가 있었다는데 내가 바로 그런 사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저녁 법문 시간에 그에 대한 고엥까 할아버님의 상세한 조언이 나왔다.
4일째부터는 지도법사와의 면담이 시작되었다.
5일째 첫번째 미세한 떨림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날은 한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한 자세로 명상하는 '아딧나타(굳은 결심)'가 처음 있는 날이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한시간이었는데 나는 두시간인 줄 알고 두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 30분쯤 지나면서부터 엉덩이와 고관절이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나중엔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쉬었고, 내쉬는 순간 처음으로 팔과 다리에 '미세한 떨림(subtle vibration)'을 느꼈다(오래전에 이것과 비슷한 느낌을 겪은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일곱살 때인가, 유체이탈의 경험이었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5일째 밤부터 불면이 찾아왔고, 6일째 지도법사님께 면담을 요청해 나의 증상(?)들을 설명하고 세가지 질문을 했다.
5일째부터 극심한 고통 후에 하나씩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이런 고통을 느껴야만 다른 부위의 느낌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인가? 이건 너무 힘들다ㅜㅜ.
가슴 부위는 아예 느낌이 없다가 6일째 아딧타나에서 극심한 고통을 참던 중 누군가 어깨를 잡아 흔들고 심장을 꾹 누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몇년 전 사랑하는 생명이 죽었을 때 느꼈던 슬픔과 후회의 고통이 기억났다. 그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혹시 이렇게 고통이 사라지는 것일까 생각했지만 그 이후에도 그때를 떠올리면 그 슬픔과 고통이 여기(심장 언저리에) 남아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식으로 명상을 계속한다면 이게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인가?
모든 고통이나 상카라(sankara. 행)가 사라진 후에도, 그러니까 ‘해탈’을 이룬 후에도 명상을 계속해야 하나? 부처는 평생을 수행했다고 들었다. ==>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그때부터 몸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는 당황스럽게 많은 다양한 감각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어떤 기억과 생각들. 이 몸이란 것에 어찌나 많은 것들이 쌓여있는지, 이걸 하나하나 대응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구나 싶었다. 조급하진 않았다.
8일째의 오전은 ‘free flow(‘자유롭게 통과시키십시오’라고 번역했던가?)를 경험했다. 그 전엔 군데군데 막히는 곳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한번에 '통과'되었다. 기쁨의 눈물이 또 주르륵. 이건 그전의 고통스럽게 흐느끼는 울음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이제야 길을 찾았구나’하는 느낌이랄까, 그랬다.
10일째는 ‘메따 명상법’을 배웠다. 자기 혼자 잘먹고 잘산 게 아니라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원하겠다고 평생을 바친 부처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고 있었지만;) 뜨거운 눈물이 또 주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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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감각'은 깨달음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고 고통이나 쾌락 모두, 그것이 정신의 것이든 몸의 것이든, 몸에 그 흔적을 남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몸에 ‘저장된다’.
정신과 몸의 진정한 능력을 알게 됨. 아딧타나. 고통을 응시하고 반응하지 않으면 얼마 안가 사라진다. 비슷한 종류의 고통에 대한 면역력 증가. 정신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몸의 경험을 통해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확연히 정리된다. 예를 들면 불한당에서도 그동안 계속 논란이 있었던 주제인 '윤회'에 대해 어제 밤의 명상 도중 다음과 같은 세가지로 정리가 되었다.
번식을 통한 진화 - 조건화와 욕구의 보존 -> 민감한 감각으로 느낄 수 있게 됨. 석가모니가 '전생을 보았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몸의 물질이 죽어서 다른 물질이나 생명으로 변함
한 사람의 생 안에서 이어지는 변화들.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망
불한당에서 불교를 공부하던 초기 ‘명상이나 수련 등의 수행이 필요한가’하는 논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결론을 보류했지만 지금은 ‘나에게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의식 이전에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을 더 일찍 의식할 수 있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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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로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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