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마지막 교정을 마쳤습니다.
오타 없이, 잘 수정되어 나와야 할텐데.
책은 다다음주나 나올테지만 이미 온라인 서점에 올라가 있더군요.

교보문고, YES24등.
혹시나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역자 서문을 올려봅니다.
이전에 블로그에 간간이 올렸던 내용들도 들어있고... 전에도 말했지만 깁니다. 너무 뭐라하지 마셈.


사용성usability이 한창 화두가 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이콥 닐슨씨가 그때 유명해졌죠. 사용성이란 사용자가 사이트 안에서 돌아다니며 원하는 것을 쉽게 찾아갈 수 있느냐를 말하며, 일단 사용자가 사이트 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 시절에 비해 5년이 지난 지금, 전세계적인 정보의 양은 얼마나 늘었을까요? 이 책에서 소개하는 무어의 법칙에 의하면 2의 5제곱, 즉 32배가 늘었습니다. 사이트 안에서 돌아다니는 건 둘째치고, 사이트를 찾아올 수 있는 확률 자체가 32분의 1로 줄어든 거죠.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사이트 안에 들어온 순간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 사용자가 검색엔진에 키워드를 입력하고 엔터를 누르는 순간이 됩니다.

언젠가 웹 2.0 컨퍼런스에서 전병국씨가 언급하셨던 것처럼, 지금 한국 IT 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웹 2.0의 물결은 사실 우리가 그동안 등한시했던 '검색'을 그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이 조금씩 바뀔 때마다 수많은 온라인 상점들의 흥망이 바뀌고, 제대로 된 검색 기술의 보유는 곧 엄청난 수익 기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커뮤니티에 이은 블로그 바람으로 사용자가 만들어내는 정보와 데이터의 양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시대에는 그 검색이 웹의 경계를 뛰어넘어 온갖 물건과 사람, 기기 등, 상상하기 조차 힘든 경지로 확대될 테죠.

인터넷의 검색 엔진은 사람들이 찾으려는 것을 좀더 쉽게 찾을 수 있게 해줌으로써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기서 '검색(search)'이라는 단어는 사용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하는 능동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이에 비해 이 책에서 말하는 '발견(find)'이란, 의도를 가지고 찾았다기 보다는 우연히 눈에 띄었거나 어떤 것이 스스로 나를 찾아왔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연히'는 사실 우연이 아니며, ‘나를 찾아온다’는 말 역시 굉장히 큰 의미와 가능성을 가집니다.

이 책은 ‘검색’이 ‘발견’으로 확대되고 그 대상이 웹에서 주변의 모든 사물로 확대되는 바로 그 시점, 벌써 우리 주변에서 시작되고 있는 검색의 거대한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원제인 Ambient Findability에 ‘검색 2.0’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으나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적절하다고 생각하며, 저자인 피터 모빌 역시 그점에 동의하여 좋은 선택이라고 메일로 답변해주셨습니다). 그 시점에서는 사이트 내에서의 사용성, 사람과 컴퓨터의 상호작용(HCI), 디자인,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사람과 정보의 상호작용(HII), 정보의 구조, 즉 파인더빌러티가 핵심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을 번역하기 전부터 개인화 서비스를 준비중이었습니다. 지능적인, 진정 인텔리전트한 정보 배달 서비스라고나 할까요. 사람들이 원하지만 알지 못하는, 혹은 자기가 원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수많은 보석과 같은 정보들을, 통찰들을, 그리고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좀더 쉽게 발견할 수 있게 하고 싶었고, 그렇게 사람들의 생활의 일부분을 바꾸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렇게 정보가 스스로 사용자를 찾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용자의 입장에서 볼때의 ‘발견’입니다. 지능을 가진 개인화 서비스란 바로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발견의 진화'인 거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죠. 생각만 해도 재밌기도 하고. 그래서 그 바탕이 될만한 서비스를 준비하기 시작했으나, 바로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웹 2.0의 붐이 일어 국내에서도 여러 논의들이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걸 어떻게 현실화하고 유용한 것으로 만드느냐는 달랐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정보가 가치있을까, 사용자들은 어떻게 우리를 찾아오고, 우리는 어떻게 사용자를 찾아갈까, 어떻게 하면 쉽게 발견하고, 제대로 향유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줄까 하고, 모두들 고민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구현하려다 보면, 기존의 하향식 정보 분류와 사용자에 의한 분류를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에서부터, 사용자에 의한 분류, 즉 집단 지능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고, 어디까지 적용해야 할지, 그리고 실재하는 각각의 개체와 범주를 대표하는 개념적인 개체는 어떻게 다른지(이 책에서는 그것을 '제품군에서 개별 물건들로의 도약'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과 저것의 관련성은 어떤 기준으로 정의할 것인지, 누구에게 어떤 정보가 가치있는가를 어떻게 결정할지 등등, 아주 근원적이고도 실제적인, 너무도 많은 문제에 부딪힙니다.

누군가 내가 고민하는 걸 이미 고민했을텐데, 세미나를 듣고 자료를 찾고 책을 읽어도 웬지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주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제가 원한 것은 사이트를 어떻게 구축하고 어떻게 마케팅을 하느냐 하는 실용서가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정보의 흐름과 기술의 발달에 대한 통찰, 그 근원적인 맥락에서 지금의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찾아내는 것이었는데 말이죠. 갈증을 느꼈습니다. 오랜만에 '자료를 찾아야겠다'가 아닌, '공부를 해야겠다',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이 책을 만났습니다. 피터 모빌은 정보 설계(IA) 분야를 만들어낸 사람이고, 실제로 웹사이트 구축과 컨설팅을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그 역시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리가 맞고 있는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안에서 무언가 아주 근원적인 갈증을 느꼈을 것이고, 그것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찾고 정리해서 이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은 고대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생물학, 인류학, 고고학, 건축 분야를 넘나들며, 푸시와 풀, 디바이스와 인터페이스의 변화, 인공 지능과 집단 지능, 개인화의 한계, 시맨틱 웹과 소셜 소프트웨어 진영의 대립, 웹 2.0과 GPS와 RFID를 중심으로 전개될 '사물의 인터넷', 그리고 디자인, 개발, 마케팅의 역할까지, 깊게, 얕게, 종횡무진, 마구 뀁니다.

이 책을 읽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일시적인 한계와 오래되고 근원적인 문제들을 구분할 수 있었고, 내가 고민했던 문제가 어디서 오는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를 넓게 보고,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이 약간 더 커지고 정확해졌다고나 할까요.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같이 진행했던 두개의 프로젝트도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수확이라면, 정보라는 것이 어떻게 인간의 행동과 삶을 바꿀 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생각해보면 우연히 이 책이 날 찾아왔지만, 그것 역시 우연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게 사람과 정보, 사람과 사람이 교차하는 미묘한 지점에 관한 통찰 역시 이 책이 주는 또하나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수많은 연구소와 그 안의 연구원들이 웹과 모바일에서의 이 유례 없는 변화를 연구하고, 그 연구 결과가 정리되어 실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공유될 수 있는 그들의 문화가 조금은 부러웠습니다. 국내에도 웹과 모바일을 포함한 IT 분야의 변화의 흐름에 대해 다룬 좋은 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실무를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과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른데, 사실 그 둘 사이의 거리감이 느껴지곤 합니다. 아니 사실 더 부러웠던 것은 실무를 하면서 거기서 얻은 통찰력을 정리해 한권의 책으로 낸 저자 모빌 씨였죠.

얘기가 좀 길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독자의 입장 말고 번역자의 입장에서 좀 얘기해볼까요?

사실 이 책은 쉬운 책이 아닙니다. 원문으로는 이해하는 것 조차 어려운 문장들이 수두룩합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보통의 미국인들이라 해도 이 책을 지하철에서 들고 다니며 쉽게 읽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새로운 개념들이며, 용어들은 기존에 한국어로 번역된 적이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번역이 되었다고 해도 저마다 다른 말을 썼거나 책이 아닌 온라인 페이지에서 직역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대로 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새롭게 번역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선은 기존에 이 용어를 번역한 사례가 있는지를 찾고, 어떤 것이 더 많이 쓰이는지, 어떤 매체에서 쓰였는지, 어떤 것이 더 권위있는 표현인지 찾고, 그게 적절한 번역인지, 더 적절한 말은 없는지를 다시 한번 고민했습니다. 바로 이 책에 나오는 '정보 불안' 증후군 직전까지 간 거였죠. 하하.

그래도 이 책을 만난 것이 기쁜 만큼, 저처럼 뭔가 근원적인 갈증을 느꼈을 한국의 IT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이 책을 소개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좀더 많은 분들이 좀더 쉽게, 검색엔진을 띄워놓지 않고도, 들고 다니면서도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에 많은 것들을 찾고 정리해 역자 주에 담았습니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물론 이 방대하고 멋진 책을 쓰고, 책 내용과 제목에 대한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신 저자 피터 모빌씨에게도 감사드리고, 특히 딱딱한 번역체를 손봐주고 여러 조언들을 해준 언어의 연금술사 누룽게이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두문불출하고 일만 했던 여름, 그 여름 내내 바쁜 동거인 덕에 맛난 통조림 한번 못먹고 건사료로만 버텼던 고양이들에게 감사해요. 이젠 일좀 그만하고 놀자고 성화입니다.

아래는 저의 동거 고양이인 방울이와 키키 형제가 보내는 인사입니다(발로 쳤어요).

ㄴㅋ모ㅝ-ㅎ=33ㄴ
ㅁㅈㅋㄹ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