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지지의 체면

고양이.cats 2010. 1. 8. 23:17

고양이는 체면을 차리는 동물이다.

지지는 이제 나랑 단 둘이 있을 때 궁뎅이를 쓰다듬어주면 그릉그릉 좋아하면서 꽤 친한 척을 하는데(대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기 발바닥을 쪽쪽 빨면서 좋아한다), 방울이 키키가 보고 있으면 터프한 척 하면서 홱 도망가거나 나를 문다. '내가 인간의 손길 따위나 갈구한다고 생각했나!'라는 듯이. 그럴 때 보면 표정도 아주 도도하다. 처음엔 꽤 빈정 상해서 '변덕쟁이 같은 년'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그게 방울이 키키의 시선을 인식해서였다 :=0

뭐, 다른 친절 고양이들은(대개 온몸이 CSI 마이애미의 H 반장 머리카락 같이 호박색인 녀석들이 그렇다고 하던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스스럼 없이 발라당을 하고 무릎에 올라온다고도 하지만, 우리 방울이 키키 지지는 그렇지가 않다(아마 주인 닮는 거겠지). 지지의 경우는 길고양이 생활을 하던 녀석이라 그런지 좀더 심해서, 궁뎅이를 쓰다듬도록 허가하는 데만 6개월은 넘게 걸린 것 같다. 심지어 애가 잠도 잘 안자서 잠잘 때 조차 제대로 쓰다듬어본 적이 없다. 실눈을 뜨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내 손을 깨무는 거다('더러운 인간의 손 따위를 감히 어디에!'). 그러니 궁뎅이를 쓰다듬어주면 발바닥을 빨며 그릉그릉한다는 사실로 볼 때 아마 지금 내가 이녀석의 베프 쯤은 되지 않나 하고 (나 혼자) 생각한다.

어쨌든 단칸방인 우리 집에서 지지와 내가 단 둘이만 있는 경우는 내가 욕실에서 반신욕을 할 때 뿐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반신욕을 할라 치면 지지는 꼭 따라와서 욕조 덮개 위에 자리를 잡는데,이 때도 한편으로는 열린 문으로 바깥 동정을 끊임없이 살핀다. 그리고 또 하나 웃긴 건, 어쩌다 나랑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래서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애정의 시선을 보내기라도 하면 일부러 시선을 딴 데로 돌리면서 딴청을 부린다는 거다. 이럴 때는 대개 뭐라도 있는 듯 눈을 똥그랗게 뜨고 허공을 바라보는데, 이래서 고양이가 귀신을 본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라고 생각하며 무서움을 달랜다).

지금도 또 그런다. 허공에 아무 것도 없는데.

지금 욕실에서 노트북으로 쓰는 거라 사진이 없네. 나중에 그 표정을 찾아 올리겠음

2010.1.16


분명 그쪽엔 아무도 없었는데...


'지지야~ 발바닥 맛있어?'라고 물어도 들은 척도 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