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아토피를 잠재워볼까 하고 사게 된 원목 서랍장.
수건이나 속옷, 양말 등 몸에 직접 닿는 것들을 넣어두는 용도이기 때문에 좀 비싸더라도 나무로 된 것을 사기로 했다.

지마켓 이런 데에서 '원목 서랍장'으로 검색해보면 결과가 꽤 나오는데, 샵은 달라도 물건 사진이 다 한두 종류로 같은 거다(일일이 확인하느라 눈돌아가고 속은 메슥거리고 -_-). 원래 쓰던 플라스틱 서랍장과 비슷한 작은 크기를 원했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주문 제작이 되나 하고 몇군데 전화해보니, 무슨무슨 가구거리 이런 데 있는 중소규모 가구점들인 듯(말투를 들어보니 딱 알겠더라. 이전에 몇번 가봤거든). 아마도 한두 군데 작업장에서 대량으로 만든 물건들을 여러 샵에서 가져다 판매하는 것 같다. 당연히 크기 변경이나 주문 제작 따위는 안된다고. 가격은 싼 편이어서 내가 원하던 크기의 두배가 넘는 큰 서랍장들도 15 - 20만원 정도다.

지마켓을 다 뒤져서 원목 가구를 직접 만들어 판다는 옹스하우스라는 곳을 찾아 전화를 했다. 주문 제작은 되는데 서랍장의 경우 제작이 좀 복잡해서 40만원 정도 든다고. 생각보다 너무 비싼 데다가 올라온 제품들 중에 그닥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사실 서랍장이 별로 없었음).

지마켓이랑 옥션을 배회하던 중 페이지 밑에 나온 텍스트 광고를 눌러 우드워크샵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갔다. 아마 '친환경 원목 가구 주문 제작' 뭐 이런 문구가 써있었던 듯(내가 또 이런데 좀 약하지 않나 -_-;). 여기는 디자인이나 크기는 물론 다양한 수종의 목재 중에서 선택을 할 수 있고, 염색과 마감재까지 친환경 재료로 선택이 가능하다고 해서(!) 당장 전화를 했다. 소나무나 삼나무로 내가 원하는 크기는 25만원 정도라고.

오오! 한달 정도 굶더라도 평생 쓸 서랍장인데 이정도쯤! 하면서 사이트를 마구 뒤져 마음에 쏙 드는 심플한 형태의 서랍장을 찾아내고는 같은 디자인에 단수와 크기만 다르게 주문을 했다. 주인아저씨(;;)가 삼나무는 강도가 약해 패이거나 긁힐 수 있다고 하시길래 겉은 소나무로 하고 서랍 안쪽만 삼나무로 하기로 했다. 염색이나 코팅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물어보니 옅은 색이라 코팅을 안하면 때가 탈 수 있다고 하셔서 천연 왁스로 바깥쪽만 코팅을 하기로. 이렇게 해서 가격은 285,000원.

------------------------------------------------- 

열흘 후, 주문한 원목 서랍장 도착.
호기심 많은 키키가 일단 간을 봐 주신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밝고 노란 색.
(춘심이 표현에 의하면 '털 뽑힌 닭 같다'는;;)

서랍을 여니 삼나무 냄새가 화악 나네.
서랍의 높이도 수건이나 속옷을 넣기에 적절하게 나왔다.

전체적으로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고 탄탄한 느낌.
서랍은 부드럽게 구르다가 마지막에는 약간 힘을 주어 밀면 탁!하고 닫히게 되어있다.

 매끄럽고 부드러운 나무의 순살.
모서리도 모두 부드럽게 처리되어 있고
서랍 안쪽 역시 그냥 나무결인데도 까끌거리지 않고 부드럽다.

떡살무늬 손잡이도 맘에 들고.

붙박이장 안에 넣어두기엔 너무 예쁘고 냄새도 좋길래 그냥 밖에 내놓았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방 안에 삼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나서 기분이 좋다.

나무란 게,
살아있을 때는 그 가지와 잎이 아름답고,
죽어서는 그 속살이 또 이렇게 아름답다. 유용하기까지 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나무라고, 여전히, 생각한다.

* 우드워크샵에서는 목공 공방을 운영하고 있어서
목공 관련 강좌를 듣거나 회비를 내고 공방을 사용할 수 있다.
블로그도 있음.

 

-------------------------------------------------


제대로 된 가구를 사본 적이 별로 없다. 큰 가구나 가전제품을 들여놓는 데는 '이것들을 가지고 오래오래 꾹꾹 눌러 잘 살아보겠어'라는 정도의 의지가 필요할 것 같은데, 내겐 왠지 그런 의지가 없었다. 딱 한번 그 의지가 생긴 적이 있어서(-_-) 큰 가전제품들을 몇몇 사들였었는데 이러저러한 일이 있은 후에 지인들에게 팔거나 줘버리고, 지금 남은 건 오븐 겸용 전자렌지 뿐.

혼자서 내집도 아닌 집들을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이런 삶에는 크고 무거운 가구란 적절치 않게 마련이다. 가볍게 가볍게, 남기는 것 없이 살다가 가야지 생각하고 산다. 살만큼 산 노파처럼. 이렇게 살면 뭔가 홀가분하고 용감해질 것 같지만 반대로 겁도 많아진다. 해야할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많으니까. 너무 많은 걸 쥐고 있지 말아야 하고, 너무 정들지 말아야 하고, 너무 애지중지하지 말아야 하고, 너무 빠져들지도 말아야 한다. 빠져들었다가도 금방 나올 수 있게 나가는 길을 보아두어야 한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무엇을 사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을 하고, 어디를 가고, 이런 것들과 상관없이, 이렇게 임시로 빌린 것처럼 살다 가는 것이 맞나 하고 가끔은 생각한다. 또 가끔은 이런 것들을 사들여놓고 쓰다듬어보며 좋아한다. 그러다가 또 왠지 사는 게 너무 무겁고, 무섭다고 생각한다.

고백하건대, 단 한번도 무섭지 않은 적이 없었다.
너무 무거우면 무거워서 무서웠고, 너무 가벼우면 가벼워서 무서웠다.
나는 항상 충분히 용감하지 못했는데,
그래서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생각도 한다.
나는 충분히 용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오래오래 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