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네번째 번역서 'Simple and Usable - 단순한 디자인이 성공한다'가 7월 20일에 나왔다(알라딘 책 페이지). 진작에 이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이런저런 일로 바빴다.

이번 책은 번역한 후 본문 조판까지 했다. 단행본의 본문 디자인은 처음 해봤는데, (예상은 했지만) 이게 꽤 자잘한 단순 노동에 가까운 일이더라. 그렇지만 책 내용 만큼이나 원서 디자인 역시 단순하고 간결한 원칙 아래 만들어진 것이라, 작업이 까다롭거나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번역서는 약간 더 두꺼워졌지만) 얇고 단순하고 아름다운 책이다. 가능하면 모두 원서 디자인에 맞췄다.

이번에 조판과 교정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두가지 있는데,
첫째는 원문보다 번역문이 3-5% 정도 더 길어진다는 것.

에이콘출판사에서 받은 샘플 세팅에 원서와 똑같은 여백으로 번역문을 흘렸는데 넘치는 페이지가 너무 많았다. 혹시나 하고 이전에 나왔던 번역서들을 원서와 비교해보니 대부분 판형이 원서보다 컸다. 왜 이런가 살펴보니, 한글의 형태상 영어 알파벳보다 더 넓은 행간을 필요로 하기도 하거니와, 번역문 자체도 간결하게 표현된 원문을 번역문으로 딱 맞게 옮길 수 없어서 길어진 경우가 많았다. 이에 관해 얘기하자면 얘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다. 어쨌든 이건 역자의 실력 문제일 수도 있겠고(-_-)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데서 일어나는 근원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책들 같으면 넘치는 내용을 다음 페이지로 넘기면 되는데 이 책은 왼쪽 페이지의 글 + 오른쪽 페이지의 사진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내용을 다시 간결하게 다듬었지만 몇몇 페이지에서 여전히 넘쳤다. 그렇다고 판형을 원서보다 키우는 건 이 얇고 간결한 책에 어울리지 않았다. 여백부터 글자 크기, 줄간, 자간, 인덴트, 문단 간격을 조절하고, 샘플 페이지들을 실제 크기로 프린트해서 책 형태로 만들어 넘겨가며 원서에 비해 너무 답답하진 않은지, 가독성이 너무 떨어지지 않는지 테스트했다. 테스트하고 다시 조절하고 다시 테스트하고. (웹사이트나 앱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하.)

그렇게 해서, 완벽하진 않지만 주어진 제한 내에서 최선을 뽑았다(찬조 출연 루시).

인쇄된 책을 받아 펼쳐보고 아차 했다. 인쇄는 프린트했을 때보다 좀더 라이트하게 나온다는 걸 잊었다. 어떤 페이지는 너무 라이트하게 나왔고, 특히 영문 병기한 게 너무 흐릿하게 나왔다. 더 무거운 서체를 썼으면 너무 무거웠겠지, 영문 병기는 그레이 말고 100 퍼센트 먹으로 할걸 그랬나, 등등... 번역만 했을 땐 그냥 책 나왔나보다 하고 말았을, 전혀 보이지 않았을 것들이 눈에 띄어서, 책을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봤다.

표지는 출판사에서 하신 건데, 부제가 원서에 비해 좀 커졌다. 왜 이렇게 하셨는지 이해도 가고, 하지만 좀 크긴 하다 싶고. 그리고 맨 뒤에서 이것도 발견했다. 하하하 왠지 첫 번역서 나왔을 때보다 더 뿌듯하네;

조판과 교정을 하면서 느낀 점 두번째는 내 문장에, 글에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는 거였다. 겸허한 멘트도 뭣도 아니다. 인디자인 파일을 열고 에이콘출판사 김희정 부사장님이 꼼꼼히 짚어주신 교정지를 한장한장 넘겨가며 수정을 하는데, 내가 의외로 쓸데없는 문구와 적절하지 않은 번역투의 표현을 많이 썼더라. 이전에도 교정지를 받아보긴 했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내 손으로 수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정도인 줄 몰랐다. 그걸 다 고치고 나서 역자 서문을 다시 읽어보니 여기도 쓸데없는 내용이 많았다. 내용을 반으로 줄였고, 그 다음에 또 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4장 '제거'에는 글을 간결하게 쓰는 법이 나온다.)

아휴. 그냥 '책 나왔다'라고 쓰고 링크 걸려고 했는데 얘기가 너무 길어졌네. (-_-);;; 이 글에도 또 얼마나 군더더기가 많을지.

끝으로, 역자 서문은 알라딘이나 YES24 같은 데 나오니 생략하고, 번역하는 동안 발췌해뒀던 구절들 몇개를 옮겨본다. 정확하고 간결한 통찰들. 재밌는 번역이었다. 

  • 'When you're designing any piece of technology, there are at least three perspectives: the manager's, the engineer's, the user's... it's about making things 'feel' simple to use. 2010-11-11 20:59:00
  • expert user냐 willing adopters냐 mainstreamer냐의 분류는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한 시간이나 횟수가 아니라 'attitude' 즉 본성의 문제라는 얘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리 오래 써도 매일 쓰는 기능만 쓴다. 쥐처럼. 그동안 모호하고 광범위하게 착각해왔던 부분이로군.  2010-12-03 07:41:58
  • 'Mainstreamers value ease of control; experts value precision of control.' 'Mainstreamers want examples and stories; experts want principles.- 정확해. 정확한 정의야. 2010-12-03 07:56:10
  • 'Aim to delight your target audience for their core tasks and hope to please them for the secondary tasks.' - 적확하고 간결하군 :-) 그러나 번역하기는 어렵군;; 2011-02-13 04:27:31
  • 컬러를 사용해 정보를 layering하는 것(지하철 노선도)과 컬러를 사용해 정보를 labeling하는 것(신호등)의 미묘한 차이. 전자는 인간 정신의 기본적인 작용을 이용하는 것인 데 반해 후자는 학습이 필요하므로 사용자에게 주는 부담이 전자가 더 적다는 이야기. 이런 통찰력을 좋아한다. 2011-03-06 02:02:35
  • '숨기기를 잘 한 인터페이스는 우아하다. 이들은 가장 섬세한 단서를 사용해 숨겨진 부가 기능의 위치와 특징을 암시한다.' - 2011-03-27 03:12:56
  • '단순한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내는 비법은 복잡성을 적절한 곳으로 옮겨서 매순간이 단순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다.' 2011-04-03 06:25:13
  • 번역이 거의 마무리되어 간다. 끝은 이렇다: '자신의 디자인으로 사용자의 마음을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말라. 단순함을 지향하는 디자인은 사용자가 자신의 삶으로 세부를 채워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좀더 풍부하고 의미있는 경험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충분한 여지를 남긴다.' - 마음에 들어. 좀더 완벽하게 번역해내고 싶은 욕심. 2011-07-04 08:02:25

P.S. 학교 다닐 때 쿽 4.x 써보고(그게 벌써 언제적이냐;;) 인디자인은 처음 써봤는데 잘만들었더라. 뭣보다도 pc랑 맥에서 글꼴 문제도 없이 호환 완벽하고. 옛날에 이런 것 때문에 고생한 거 생각하면 진짜 어도비에 삼천배를 해도 모자란다고 생각했다가. 처음부터 이렇게 왜 못만들었냐 생각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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