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 2019-01-13 19:43 스카이캐슬 보다가 문득 생각났다.
    오래전 다녔던 회사에 하버드 의대 출신이라며 들어왔던 여자가 있었다. 한국말에 30% 정도의 영어를 섞어서 말하고, 안양에서 삼성동까지 매일 콜택시로 출퇴근을 하고, 매일매일 다른 화려한 수트를 차려입고 진하게 화장을 하고 회사에 왔었다.

    그녀와 어울렸던 우리 팀 막내 디자이너의 얘기를 들어보니 매일 명품 매장에 들러 비싼 옷과 구두, 개 용품(...) 등등을 카드로 긁고, 카드 한도가 동나면 부모님한테 돈 달라고 전화해서 징징댄다고. 보조개 수술을 하고 왔다며 자랑을 했던 기억도 나네. 되게 이상했는데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고 그냥 '보조개 수술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너무 즐거워 보였던. 그녀를 따라다니다 명품 백을 카드로 충동구매했던 막내 디자이너가 다음날 아침 환불할까말까 고민하던 기억도 난다. 당시 80만원 정도였는데 그녀 월급(잘 모르지만)의 1/3은 족히 넘지 않았을까...

    회사에서는 당시 진행 중이던 모 대학병원 프로젝트에 무슨 롤인지는 몰라도 그녀를 데려가 하버드 의대 출신 직원이라 자랑을 했다는데... 입사한지 한두달이 채 안된 어느날 그녀는 갑자기 회사를 그만뒀다. 나중에 들으니 미국에서 하버드 의대 나왔다고 거짓말하고 돌아다니다가 소문 나니까 한국에 들어와 똑같은 일을 하고 다녔던 듯.

    꽤 재미있는 캐릭터였다. 살아남으려고, 열심히 일이라든가 공부를 해보려고, 이 인생을 가지고 뭐든 해보려고 발버둥치던 우리들과는 달리 그녀는 항상 입을 커다랗게(입이 되게 컸다 줄리아 로버츠처럼) 벌리고 깔깔 웃었고, 심각한 일이라곤 (카드가 막히는 것 외에) 없어 보였다. 아마 내 평생 만나온 사람 중 가장 색다른 인물이었을 듯.

    그녀를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난다.
    지금은 뭐하고 있을까?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평생 그렇게 사는 게 좋겠지(이건 명상 선생님이 나한테 하신 말씀이다...).
    어찌됐든 그 유쾌한 웃음 잃지 않았기를.

    #tvshow #skycastle E13

    아, 그리고 스카이캐슬 보다 보니 어제 본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가 왜 좋았는지 깨달음. 그 영화에는 우는 장면이 없었다. 뻔히 울 것이 예상되는 대목에 뻔히 우는 1분짜리 장면을 넣지 않기로 하는 것 정도는 이제 한국 드라마에서도 고려해볼만한 거 아닐까 싶은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

    15화 진짜 대박이닼ㅋㅋㅋㅋ #아갈머리찢어버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