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마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공상과학 소설처럼 읽어야한다… 우리는 생존 기계다. 즉, 우리는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들을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 운반자들이다.' - 두근두근. 왜 여태 이책을 안읽었는지 모르겠다! 동네 북카페에서 눈에 띄어 빌려옴 2013-05-27 20:24:46
이 책의 서문과 목차에서 흥미를 끄는 부분들이 어쩐지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의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뒤져보니,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것이 1976년,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는 1980년대 초반에 쓰여져 1992년에 출간되었으며, 서문과 7장에 리쳐드 도킨스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까 과학 이론을 흥미롭고 쉽게 풀어낸 것도 도킨스의 영향을 받은 건가.2013-05-27 21:27:27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며 나를, 사람들을, 살아가는 일을, 계속 다시 생각한다. 이런 풀밭에 비친 햇빛을 보며 느끼는 것 같은, 아주 깊고 오랜 행복감 같은 것들에 대해. 나는 어째서 이런저런 것에 행복해하고 불행해하는지. 풀밭이나 숲속을 거닐며 느끼는 이런 행복감은 아마도 풀과 나무를 좋아했던(=먹이로 삼았던) 어떤 개체(들)의 유전자가 풀밭에서 숲속에서 배불리 먹고 마음껏 뛰놀며 느꼈을 행복과 생존에 대한 기대를, 그 결과를 수백만년 후의 나도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겠지.
나를 괴롭히는 이 우울 유전자는 그 치명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절멸하지 않고 수백만년을 살아남아 나에게까지 왔을까. 그에게는 다른 어떤 '생존 기술'이 있었을까.누구에게나 어떤 '생존 기술'이 있어서 수백만년에 걸친 유전자 경쟁의 과정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아온 거 아닌가. 아무리 열등한(?) 개체라도 그 안에 경쟁에서 살아남은 우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사람들 하나하나가 조금은 달라보여.
어쨌든 이 모든 게 유전자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왠지 모든게 더 단순하고 유쾌해지는 기분이랄까. 나를 괴롭히는 것이든 행복하게 하는 것이든, 이 모든 게 어떤 오래된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다니 왠지 안심이 되는 느낌이랄까. 써놓고 보니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 느끼는 것과 흡사하군.
1장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2장 자기 복제자
'원시 수프(primeval soup)'에서 '자기 복제자(replicator)'가 생겨나고, 장수, 다산성, 복사의 정확성을 가진 안정한 자기 복제자(분자)들로 가득차게 된다. 그리고 '자기와 경쟁하는 분자를 화학적으로 파괴하는'(=먹는?) 생존경쟁이 일어나는 과정.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속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담을 그릇, 즉 운반자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 과학자들의 글은 정말로, 놀랍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옴2013-05-27 23:32:43
안정성을 증가시켜 경쟁 상대의 안정성을 감소시키는 방법은 점점 교묘해지고 효과적이 되었다. 그중에는 자기와 경쟁하는 종류의 분자를 화학적으로 파괴하는 방법을 '발견하여' 한때 다른 분자를 구성했던 구성 요소를 자기의 사본을 만드는 데 이용하는 개체도 있었을 것이다. 이들 원시 육식자는 먹이를 얻음과 동시에 경쟁 상대를 제거할 수 있었다. 아마도 어떤 자기 복제자는 화학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거나 둘레에 단백질 벽을 만들어 스스로 방어하는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최초의 살아있는 세포가 나타난 것 아닐까?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쏙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담을 그릇, 즉 운반자(vehicle)까지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살아남은 자기 복제자는 자기가 들어앉을 수 있는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를 스스로 축조한 것이다.
오늘날 자기 복제자는 덜거덕거리는 거대한 로봇 속에서 바깥세상과 차단된 채 안전하게 집단으로 떼 지어 살면서, 복잡한 간접 경로로 바깥세상과 의사소통하고 원격 조정기로 바깥세상을 조종한다. 그들은 당신 안에도 내 안에도 있다. 그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생존 기계다.
3장 불멸의 코일
이렇게 복잡한 상호 의존성에도 불구하고 왜 '유전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지 궁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성생식은 유전자를 섞는다. 이것은 개체의 몸이란 일시적인 유전자의 조합을 위한 임시 운반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개체에 들어있는 유전자의 조합은 일시적이지만, 유전자 자체는 잠재적으로 수명이 매우 길다... 한 개의 유전자는 수많은 개체의 몸을 연속적으로 거쳐 생존하는 단위라고 생각해도 좋다.
체세포 분열(mitosis) : 1개의 세포가 2개로 갈라지는 정상적인 세포 분열
감수 분열(meiosis) : 이는 정소와 난소에서만 일어남. 46개의 염색체의 완전한 두 세트를 갖는 1개 세포가 분열하여 한 세트에 23개의 염색체를 갖는 생식 세포가 만들어짐. 어떤 한 개체에서 만들어진 모든 정자와 난자 세포는 서로 다름
정자 또는 난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아버지 쪽의 염색체 조각들은 서로 떨어져서 어머니 쪽 염색체의 해당 조각과 바뀐다. 염색체의 조각이 교환되는 이 과정을 교차(crossing over)라고 한다.
여기에서 사용하는 유전자라는 말은 수많은 세대까지 존속되고, 많은 사본의 형태로 널리 퍼지기에 충분히 작은 유전 단위를 뜻한다. 이것은 '모 아니면 도' 식의 융통성 없는 정의가 아니라, 이를테면 '크다' 또는 '늙다'처럼 경게가 불분명한 정의다. 염색체의 어떤 한 부분이 교차에 의해 쪼개지거나 여러 종류의 돌연변이 때문에 쉽게 변할 가능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여기에서 말하는 의미의 유전자로 불릴 자격은 점점 없어진다. 시스트론은 아마도 유전자로 불릴 자격이 있을 것이지만 그보다 더 큰 유전 단위 역시 자격이 있다...
개체는 안정적이지 않다. 정처 없이 떠도는 존재다. 염색체 또한 트럼프의 패처럼 섞이고 사라진다. 그러나 섞인 카드 자체는 살아남는다. 비로 이 카드가 유전자다. 유전자는 교차에 의해서 파괴되지 않고 단지 파트너를 바꾸어 행진을 계속할 따름이다...
어떤 유전자는 1백만 년을 '살 수 있'지만 많은 새로운 유전자는 최초의 한 세대조차 넘기지 못한다. 소수의 유전자가 그 고비를 넘기는 것은 운이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그 유전자가 중요한 무언가, 즉 생존 기계를 잘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풀 속에서 대립 유전자 대신 자기의 생존 확률을 증가시키는 유전자는 어느 것이든 그 정의상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유전자는 이기주의의 기본 단위인 것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차이이고, 진화에서 중요한 것은 '유전자에 의해 제어되는 차이'이다...
아기를 만드는 것이 이 정도로 복잡한 협력 사업이라면, 그리고 모든 유전자가 그 일을 달성하기 위해 수천 개의 동료 유전자를 필요로 한다면, 개별 유전자는 불가분의 존재라는 내 정의와 이 사실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늘 사라지는 쪽에 있는 유전자는 불운한 것이 아니라 나쁜 유전자다'라는 사실을 8명이 한 팀으로 배를 조정하는 조정 경기에 비유해 설명한 것은 기발하다.)
어떤 유전자의 '환경'이 대부분 다른 유전자로 구성되어 있고, 그 환경을 구성하는 유전자들 각각은 또 다른 유전자로 구성된 환경과 얼마나 잘 협력하느냐에 따라 선택되기 때문에 복잡한 것이다...
이 논의의 기초가 되는 것은 유전자가 불멸인 데 비하여 몸 이상의 큰 단위는 일시적이라는 과정이었다. 이 가정은 두 가지의 사실, 즉 유성 생식과 교차가 있다는 사실과, 개체는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에 근거를 둔 것이다... 왜 우리와 대부분의 다른 생존 기계는 유성 생식을 하는 것일까? 우리의 염색체는 왜 교차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영원히 살지 못하는가?...
그러나 성공한 유전자가 가지는 또 하나의 일반적인 특성은, 자기 생존 기계의 죽음을 적어도 번식한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유전자는 생애의 특정 단계에서 몸에 최대 영행을 미치는데, 치사 유전자와 반치사 유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피터 메더워Peter Medawar의) 이 이론에 따르면, 노쇠 현상은 후기에 작용하는 치사 유전자와 반치사 유전자가 유전자 풀에 축적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산물일 뿐이다. 이들 치사 및 반치사 유전자는 단지 후기에 작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연 선택의 그물 구멍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진화의 많은 부분은 유전자 활동의 개시 시기를 유전적으로 제어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어떤 여녕, 예컨대 40세 이전에는 번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수백년 후에는 이 연령 제한을 50세로 올리고 그 후에도 조금씩 늘려 간다. 이러한 방법으로 인간의 수명을 수백 살까지 연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두번째 방법은 유전자를 '속여서' 자신이 들어있는 몸을 실제 연령보다 젊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하려면 나이가 들어서 일어나는 몸 속의 화학적 환경 변화를 알아야 한다.
성과 교차로 이내 유전자 풀은 유동적이며 유동자는 부분적으로 뒤섞인다. 진화는 유전자 풀 속에서 어떤 유전자는 그 수가 늘어나고 또 어떤 유전자는 수가 줄어드는 과정이다. 이타적 행동과 같은 어떤 형질의 진화를 설명할 때는 습관처럼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좋다. "이 형질은 유전자 풀 내의 유전자의 빈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4장 유전자 기계
동물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갈래의 생존 기계는 식물을 먹든지 다른 동물을 먹든지 하여 식물의 화학적 노동을 가로채는 방법을 '알아냈'다...
진화의 과정 중에 기억이 '발명'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기억이라는 장치 덕분에 근수축의 타이밍은 가까운 과거의 사건 뿐만 아니라 먼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체스 프로그래머와 체스를 두는 컴퓨터에 비유) 유전자가 할 수있는 것은 미리 생존 기계의 체제를 만드는 것 뿐이다. 그 후 생존 기계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며 유전자는 그저 수동적인 상태로 그 안에 들어앉게 된다. 유전자는 왜 그렇게 수동적이 되었을까? 왜 고삐를 잡고 일일이 명령을 내리지 않을까? 그 이유는 시간적 차이 때문이다.
(유전자가 개체를 직접 조작하지 못하는 이유를 소설 '안드로메다의 A'에 나오는 안드로메다의 외계인에 비유해 설명한다. 한번 의사를 전달하고 대답을 들으려면 이백년이 걸리는.) 만약 북극의 기후가 급변하여 아기 북극곰이 열대의 사막과 같은 환경에서 태어난다면, 그 유전자의 예측은 빗나가고 그 유전자는 댓가를 치를 것이다. 아기 북극곰은 죽고 그 속의 유전자도 사라질 것이다...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능력의 진화는 주관적 의식의 진화를 초래한 듯하다. 그 이유는 현대 생물학이 당면한 가장 심오한 미스터리다... 아마도 의식이 생겨난 것은 뇌가 세상을 완벽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서 그 시뮬레이션 속에 자체 모형을 포함해야 할 정도가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분명히 생존 기계의 사지와 몸은 그 생존 기계가 세상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의 중요한 일부가 될 것이다. 아마도 비슷한 이유에서 시뮬레이션 그 자체도 시뮬레이션의 대상인 세상의 일부로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자기 인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만으로는 의식의 진화가 충분히 설명되는 것 같지 않다. 그 이유는 무한 회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형의 모형이 있다면 왜 모형의 모형의 모형은 없는 것일까?
의식에 대해 제기되는 철학적 문제가 무엇이든, 현재 우리의 목적에서 의식이란, 실행의 결정권을 갖는 생존 기계가 그들의 궁극적 주인인 유전자로부터 해방되는 진화의 정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뇌는 생존 기계의 일상생활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도 있다. 또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하는 힘까지 갖추고 있다. 가급적 많은 아이를 낳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인간은 이 점에서 대단히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유전자는 일차적 정책 수립자이며 뇌는 집행자다. 그러나 뇌가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정책 결정권을 갖게 되었으며, 결정권 행사에서 학습이나 시뮬레이션과 같은 책략을 쓰게 되었다. 이 경향이 계속되면 유전자는 생존 기계에 단 하나의 종합적인 정책, 즉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라고 지시하게 될 것이다. 어느 종도 아직까지는 이 시점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5장 공격 - 안정성과 이기적 기계
동물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동종의 경쟁자를 죽이는 데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 크고 복잡한 경쟁 시스템 속에서는 눈앞의 경쟁자를 없애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그 경쟁자의 죽음으로 당사자보다 다른 경쟁자가 이득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해충 방제 관계자들에게서 우리가 배운 쓰라린 교훈이기도 하다...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즉 ESS(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는 개체군에 있는 대부분의 구성원이 일단 그 전략을 채택하면 다른 대체 전략이 그 전략을 능가할 수 없는 전력이락ㅎ 정의된다... 바꿔 말하면, 어떤 개체에게 가장 좋은 전략은 개체군 대부분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6장 유전자의 행동 방식
8촌 간은 이타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지나가는 행인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형제와 친자식(1/2)은 매우 특별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일란성 쌍둥이끼리(근연도 1)는 자기 자신만큼 특별하다...
8장 세대 간의 전쟁
새끼는 포식자를 집으로 불러들일 정도로 시끄럽게 운다... 새끼의 울음소리를 그치게 하기 위해 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다... 이 위험천만한 전술의 원리는 몸값을 받지 못하면 자기가 탄 비행기를 폭파하겠다고 협박하는 납치범의 전술과 같다.
9장 암수의 전쟁
동식물을 통틀어 수컷을 수컷, 암컷을 암컷이라고 명명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한가지 특징은, 수컷의 생식 세포는 암컷에 비해 매우 작고 그 수가 많다는 것이다... 정자와 난자의 경우도 유전자에 대한 기여도는 같다. 그러나 양분의 양에서는 난자의 기여도가 정자를 훨씬 능가한다... 이 때문에 암컷이 만들 수 있는 아이의 수에는 한계가 있는 반면 수컷이 만들 수 있는 아이의 수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다. 수컷의 암컷 착취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 '전략'이 두 강래로 진화했음을 상상할 수 있다... 착취하는 배우자는 점점 더 작고 민첩해졌을 것이다. 정직한 전략의 배우자는 착취하는 배우자의 투자량이 점점 축소되어가는 것을 매우기 위해 계속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것이고, 착취하는 배우자가 늘 적극적으로 이들을 찾아 나서므로 운동성도 잃게 되았을 것이다... 정직한 배우자는 난자가 되고 착취하는 배우자는 정자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 수컷은 쓸데없는 작자들 같다... 어떤 종에서 수컷은 암컷보다 '사라져도 상관없는 존재'이고 암컷은 수컷보다 '소중한' 존재다. 종 전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위의 견해는 조금도 틀림없는 타당한 것이다...
… 아마 평생 교미를 한번도 해보지 못할 독신 수컷이 넘쳐난다. 그러나 이들 독신 수컷도 다른 점에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며, 먹이 자원을 먹어치울 때의 왕성함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종의 이익'이란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끔찍한 낭비가 아닐 수 없으므로…
... 왜냐하면 암컷은 크고 영양소가 풍부한 난자의 향태로 처음부터 수컷보다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식이 죽을 경우 어미는 아비보다 더 많은 것을 잃는다... 따라서 부모가 아직 어린 자식을 내버릴 경우, 버리는 것은 어미가 아니라 아비일 확률이 높다... 암컷이란 착취당하는 성이며, 착취의 근본적인 진화적 근거는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데 있다.
가정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수컷을 선택하는 전략
암수의 ESS - 조신형, 경솔형, 성실형, 바람둥이형. ... 이 시스템은 어떤 안정 상태로 수렴한다. 계산을 해보면 암컷의 5/6가 조신형, 수컷의 5/8가 성실형으로 된 개체군이 진화적으로 안정하다는 결과가 나온다.
... 그러나 물고기를 비롯한 수생 동물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수컷이 암컷의 체내에 정자를 주입하지 않기 때문에 암컷이 '자식을 품은 채' 혼자 남을 필요가 없다. 수정이 막 끝난 알을 상대에게 맡기고 재빨리 도망치는 것이 암수 모두에게 가능하다... 먼저 생식 세포를 방출하는 개체는 수정된 배아를 상대에게 떠맡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지만, 그와 동시에 상대방이 뒤따라주지 않을지 모른다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이 점에서 정자가 난자보다 가벼워 확산되기 쉽다는 사실만으로도 수컷이 취약하다... 확신 문제 때문에 수컷은 우선 암컷이 난자를 방출하기를 기다렸다가 정자를 뿌리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덕분에 암컷은 실로 귀중한 몇초를 얻을 수 있다. 그 사이에 사라짐으로써 난자를 수컷에게 떠맡겨 수컷을 트리버스의 딜레마에 빠뜨릴 수 있다. 그래서 이 이론은 수컷의 자식 돌보기가 왜 물속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고 건조한 육상에서는 보기 드문 일인지를 깔끔하게 설명한다.
예컨대, 바다코끼리는 암컷에게 멋져 보임으로써가 아니라 하렘에 침입하려는 수컷들을 모두 물리침으로써 하렘을 획득하고 그것을 지켜낸다. 하렘의 소유자는 그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었던 명백한 이유만으로도 그 지위를 노리는 침탈자들과의 싸움에서 이긴다. 침탈자는 이길 가능성이 적다. 이길 가능성이 있다면 오래전에 이미 이겼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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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밈 - 새로운 복제자
도대체 유전자는 무엇이 그리 특별할까? 그 해답은 이들이 복제자라는 데에 있다. 물리학의 법칙은 우리가 이를 수 있는 전 우주에 작용된다고 생각되고 있다. 생물학에도 이에 상응하는 보편 타당성을 가지는 원리가 있는 것일까? ... 물론 나는 그 답을 모른다. 그러나 만약 내기를 해야 한다면 나는 하나의 근본 원리에 돈을 걸 것이다. 바로 모든 생명체가 자기 복제를 하는 실체의 생존율 차이에 의해 진화한다는 법칙이다. 우리의 행성 지구에서 자기 복제를 하는 실체로 가장 그 수가 많은 것은 유전자, 즉 DNA 분자다. 어떤 다른 것이 그 실체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가령 그와 같은 것이 존재하고 다른 여러 조간이 충족된다면, 이것이 진화 과정에 기초가 될 것은 거의 필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