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일을 맡겨도 기꺼이 책임진다. 고난을 겪으면서 도전정신을 배우고, 성공의 보람을 느껴야 임원이 될 수 있다'라는 '임원학'의 한 구절이라든가,
전장에서 군인보다 더 적진 가까이 다가가 촬영했던 로버트 카파의 열정에 관한 글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보면, 이전의 나 같았으면 아마 채찍질의 엔돌핀을 내뿜으며 좀더 빨리, 많이, 똑똑하게 일하려고 애썼을 것 같다.
요즘은 좀 다른 생각을 하곤 한다.
열정이니, 목표니, 두려움과 게으름을 버리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느니 하는 것 물론 좋다, 좋은데, 누구에게 좋은 거지? 하고 웬지 의심을 품게 된 것이다.
휴가도 못가고, 평생 좋아하는 악기를 연주해보기는 커녕 음악도 제대로 못듣고,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누리지도 못한 채 죽도록 일만 하는 불쌍한 인생들에 보상심리를 제공하기 위한 '성취의 날조'랄까, 그런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우리 인생에서 재미나, 아름다움이나, 행복이나,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모든 인류가, 지구가 제공하는 풍요를 함께 누리기 위해선 하루에 2시간씩 일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라고 했다던 자크 엘륄(Jacques Ellul)의 말을 생각한다.
느슨히 누워 공상하는 것, 산책을 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수다를 떠는 것, 그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청히 있는 것.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고, 안괜찮은 것이라고 나 자신에게 너무 종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좀더 편안하게, 그저 하고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도 되는 것 아닌가? 이것도 어쩌면 세상이 만들어내거나 내가 만들어낸 하나의 중독이 아닌가 싶다. 처음부터 난, '세상이 원하는 인재'가 되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었는걸.
혹시 로버트 카파가 죽지 않았다면, 한 육십쯤 되어서 그에게 물었다면, 좀 다른 대답이 나오지 않았을까.
"사실 난 그때 어렸어요. 설마 죽을 줄은 몰랐죠. 지금은 그냥 이 해변가에 이렇게 누워서 즐기고 싶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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