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클라이밍 2. 다치지 않게, 에너지 효율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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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소제거로 급작스런 갱년기를 맞은 몸은 나의 어떤 바램이나 노력과도 무관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자고 일어나거나 오래 앉아 일하고 나면 몸이 뻣뻣하게 굳고 모든 관절이 돌아가면서 아프다. 작년에는 힘든 프로젝트를 하면서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왼쪽 무릎에 문제가 생겼고, 나중에는 목디스크가 와서 등과 손, 발꿈치까지 저린 증상이 나타났다. 그 때마다 요가도 클라이밍도 쉴 수 밖에 없었다.
운동을 안하면 몸이 굳고, 운동을 하면 부상을 입었다. 언젠가부터 요가할 때 점프스루(팔로 몸을 들어올리는 전환동작)를 하면 등과 어깨가 아팠다. 클라이밍을 할 때도 처음엔 멋모르고 완등 후 그냥 뛰어내렸는데, 나중에 고관절이나 발목이 너무 아팠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꼭 다운클라이밍을 한다. 고관절 통증 얘기는 주변에서 혹은 유튜브에서도 들은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생각해보니 내 나이에 클라이밍을 시작하는(=무모한) 사람이 거의 없어서가 아닐까.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어떤 운동이나 그렇겠지만 어느 정도 비밀을 알고 난 후, 그러니까 원리나 스킬을 익히고 난 후 문제는 다시 힘과 신체적 조건으로 귀결된다. 클라이밍을 하다 보니 그날그날의 컨디션, 그러니까 힘에 따라 완등할 수 있는 그레이드가 달라지더라. 아픈 곳이 없고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면 가끔은 원래 하던 그레이드를 두개 정도는 뛰어넘을 것 같은(체감일 뿐이다;;) 느낌이 들 때가 있었고, 어딘가 아프거나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그 반대였다. 후자의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근력이 완전히 회복되려면 일주일 정도 시간이 필요한데, 이 시간 역시 점점 길어질 것이다.
신체 조건에 대해 얘기하자면, 클라이밍에서는 일단 키가 작으면 큰 사람에 비해 기본적으로 모든 무브에 에너지가 더 들어간다. 짧은 만큼 더 뻗고 더 당기고 더 높이 올리고 더 뛰어야 한다. 키에 따라 난이도가 심하게 달라지는 문제들도 있고, 심지어 키가 작으면 아예 스타트나 완등이 불가능한 문제들도 있다(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남들이 손만 뻗으면 닿을 홀드를 점프를 해서 잡아야 한다. 초반에는 점프를 여러번 시도하기도 했지만 점프에 실패할 때 마다 바닥에 떨어지고, 완등 후 뛰어내릴 때 만큼 큰 충격은 아니지만 발가락과 고관절에 반복적인 충격을 받아서 통증이 더 심하고 오래 갔다. 발톱에 검은 점 같은 게 생겨서 흑색종 아닌가 하고 피부종양 전문의 예약을 했다가 취소한 적도 있다. 그냥 멍이었고, 클라이밍할 때 점프를 안하니 없어졌다.
이걸 계속해도 될까, 이걸 얼마나 더 오래 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올림픽에 나갈 것도 아니고… 어떤 그레이드에 도달하는 걸 목표로 하거나 누구와 경쟁하는 것도 아닌데 무리를 할 필요가 없지 않나. 비밀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사랑한 거지 아픔까지 사랑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힘을 기르는 트레이닝에 썼던 에너지를 조금 덜고, 부상 위험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적으로 등반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다치지 않게, 에너지 효율적으로
기본적으로 웜업이 너무나 중요하다. 요즘 나는 일주일에 한번 클라이밍을 하려고 나머지 5-6일 동안 새벽마다 요가를 한다. 클라이밍하는 날은 꼭 새벽 요가를 하고, 클라이밍을 한 다음날은 좀더 정성을 들여서 긴장하고 뭉친 근육을 풀어준다. 체온도 중요하다. 여름에 에어컨이 너무 심하거나 겨울에 추운 암장에서는 체온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고 있다. 그리고 아쉽지만 다이내믹 무브는 얼마간 포기했다. 리치 이슈가 있는 문제들, 닿을까말까한 높이의 점프, 그러니까 추락할 가능성이 높은 점프는 굳이 여러번 시도하지 않는다. 여러 암장을 전전하다 보니 그런 문제들이 유독 많은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런 곳들은 잘 가지 않는다.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
접영으로 처음 물 속에서 앞으로 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알게 된 비밀을, 움직임의 원리와 핵심을 나는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할 수 있을까? 초반에 유튜브에서 본 몇몇 영상들에서는 3지점, 2지점, 중력방향, 손과 발의 순서 같은 걸 얘기하는데, 머리로는 이해해도 실제로 벽에 매달렸을 때 여러 상황들에 적용하기가 힘들었다(홀드 위치가 다 다른데 어떻게 손과 발의 순서가 정해져 있을 수가 있는지?). 보고 나면 오히려 무브가 더 헛갈리고 어렵게 느껴졌다. 제일 궁금했던 건 플래깅이었는데, 이걸 잘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은 거 같은데 어떤 원리로 작동하고 어떤 경우에 어떤 유형의 플래깅을 써야 하는지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사례를 들어 보여주는 영상은 찾기가 힘들었다. 수영도, 클라이밍도, 뭐든 잘하는 사람이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제대로 설명을 했다 해도 내가 직접 몸으로 해보기 전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을 수도 있고.
그래도 수영을 처음 배우던 삼십년 전과는 달리 지금은 유튜브에서 세상의 온갖 ‘구루’들을 만날 수 있다. 유튜브를 보다가 ‘매드프로 클라이밍‘ 채널에서 김인경 선생님이 플래깅에 대해 얘기하는 영상을 보게 됐다. 이 사람 누구지! 이 착 붙는 설명은 뭐지! 싶어서 다른 영상도 찾아보았고, 매드짐 클라이밍 인스타(@madgym_climbing)를 찾았고, 때마침 한두달 일을 쉬게 돼서 작년 12월 김인경 선생님(@kik_madpro)의 한달 짜리 강습을 들었다.
매드짐 클라이밍 강습
한달 짜리 총 4회 강습에서 에너지 효율적인 등반을 위한 핵심 - 팔다리의 각도와 자세, 팔다리가 아니라 몸통의 큰 근육을 쓰는 법, 상황에 따른 다양한 그립 방법, 발을 손처럼(‘닻’처럼) 쓰는 법, 물 흐르듯 힘이 이어지게 움직이는 법 등등 - 을 배웠다. 한시간의 강습이 온통 중요한 포인트로 흘러넘쳤고, 찰떡같은 비유와 깨알같이 상세한 설명 및 시범을 통해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이후 몸에 익도록 반복 훈련이 이어졌다. 매드프로 유튜브 채널(@madproclimb)에서는 더 많은 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 마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좋지 않은 등반 습관 같은 것도 꼭 집어서 알려주셨다. 내 경우는 손을 일찍 떼는 것과 필요 이상으로 스윙하는 것(나의 기쁨이지만ㅋㅋ), 두리번거리는 것 등이었는데, 이 모든 게 힘을 낭비하는 일이다. 물론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벽에 붙었을 때 적용하는 건 다른 문제라, 요가를 할 때처럼 최대한 배운 것을 머리 속에 두고 움직임을 알아차리면서 하려고 했…지만 혼자 암장 가서 벽에 붙고 나면 다 잊어버린다는…🌚
제일 좋았던 건, 등반 전 부상 방지를 위해 관절과 근육을 푸는 방법과 다양한 트레이닝 방법(애니멀플로우, 허들러 웜업, 행보드 및 링에서의 그립 트레이닝, 여러 유형의 스쿼트 등), 그리고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피해야 할 등반 자세들을 알려주신 것. 이건 수많은 사람을 가르친 경험에 더해, 김인경 선생님 자신이 오랜 등반 과정에서 숱한 부상을 입고 회복한 경험,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몸이 어떻게 달라져가는지를 몸소 체험한 덕분에 가능한 게 아닐까(그래도 나보다 젊으심ㅋㅋㅋ). 이런 분들 너무나 소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의도에서 퇴근하고 광명까지 달려가 8시 30분 강습을 듣느라 웜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강습에 들어갔다가 자잘한 부상을 여러번 입었다. 무리하게 홀드를 잡고 버티다가 오른쪽 손목이 삐끗했는데 최근까지 거의 3달 가까이 통증이 지속되고 있고, 추운 상태에서 몸이 제대로 안 풀린 채 매달리기나 스쿼트를 하다가 전완근이나 허벅지에 커다란 푸른 멍이 들기도 했다. 근육 내의 혈관이 터졌는데 어딜 부딪히거나 한 게 아니라서 당시에는 바로 알지 못했다. 통증과 멍이 없어질 때까지 또 클라이밍을 쉬어야 했다.
최근에 본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클라이머 아이모리(Ai Mori)는 ‘죽는 날까지 클라이밍을 하고 싶다’고 했다. 갓 스무살이 된 젊은이 답지 않은 그 말이, 다른 때 같으면 클리셰로 들렸을 말이 지금 쇠락하는 몸을 어르고 달래며 가고 있는 내 마음 깊이 와닿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재밌고 즐거운 일을 계속하고 싶은 게 인간이다. 이 글은 한편으로는 “클라이밍? 그거 왜 하는데? 뭐가 재밌어? 나이도 많은데 너무 위험하지 않아?“ 등등을 묻는 사람들이 많아서 썼고, 한편으로는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나도 한번 해볼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썼다. 김인경 선생님 같은 분들이 부상을 방지하고 에너지 효율적으로 등반하는 스킬과 트레이닝 방법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 나이가 들었어도, 혹은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모두들 다치지 않고 오래오래 클라이밍의 비밀을 푸는 기쁨을 즐길 수 있게 되면 좋겠다.
우리는 놀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우리 모두 나이가 들고, 언젠가는 힘을 잃고,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그러니 그 전에 우리가 가진 이 몸을 아끼고 아껴서 오래오래, 재밌게, 그리고 기쁘게, 놀 수 있기를.
* 매드짐 클라이밍 후기는 이래봬도 #내돈내산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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