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시청역 로댕갤러리에서는 2월 8일까지 로댕 전시회가 열린다.
가봤는데 솔직히 대부분의 작품에 아무런 감흥도, 공감도없었다.

현대조각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로댕은 아카데미 미술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인간의 내적인 진실을 표현하려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대상의 단순한 재현에서 벗어나, 인물의 생생한 동작과 역동적인 긴장감을 거친 표면처리로 마무리하는 표현적 이미지를 강조하였다.
- 전시회 리플렛 중. 구경화(삼성미술관 학예연구원)


로댕의 `France`. 1904년 작
사진은 이곳에서 가져옴.
그래, 뭐... 내가 100년 전에 살아서 그의 작품을 보았더라면발칙한 묘사와 역동성에 감동했을지 모르겠다만...
고집스럽게 확대된 손과 발, 과감히 생략되어 뚝뚝 끊긴, 거칠다기보단 민둥민둥한 덩어리들. 드로잉들도 뭐 그리영감을 주는 것들은 아니었고(조각 작품들도 조명발을 받는 것 같다. 사진으로 보는 로댕의 조각들은 전시회에서 직접 보는 것보다 더 멋지다).
다만, 고집스럽게 열심히 했고, 그가 해낸 것들이 그 시대에는 매우 어려운 것이었음은 인정하겠다.
(로댕 아저씨,미안~-_-;)

그렇게 실망하다가 한쪽 구석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두상 하나를 발견했다. `France`라는 제목의 그 조각상은 다른 작품들의 무뚝뚝하고 고집스러운 묘사와는 달리 매우 섬세한 선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다. 청동임에도 불구하고살아있는듯한 묘한 생생함을 주변에 흩뿌리고 있던 그 얼굴은, 까미유였다.

결국 저 위에 길게 설명된 `내적인 진실`이고 뭐고간에,시대와 문화, 철학,예술 사조 등등을 뛰어넘어 사람을(혹은 나를 -_-;) 감동시키는 것은 바로젊고 아름다운 인간의 얼굴, 혹은 아름다운 몸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 아닌가. 쩝...


박세진 `장미도`. 2003년 작
사진은 리플렛에서.

로댕갤러리와 호암갤러리는 둘다 삼성꺼라 그런지 입장권 한장으로 두군데의 전시회를 다 볼 수 있다(거리도가깝다). 호암갤러리에서는 젊은 작가들 6인의 작품을 보여주는 ART SPECTRUM 2003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계획에 없던 발걸음이었지만로댕 전시회와는 달리(혹은 로댕에서 너무 실망한 탓인가?) 유쾌했고, 공감이 갔고, 재미있었다. 이런게 동시대인의 공감이란건가?
백년이 지난후에 이 작품들을 보는 사람은 어떤 것을 느낄까?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백년이 지난 후에 어떻게보일 것인지에 관해 한번이라도 생각을 할까?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머리가 복잡해져서 그만뒀다 -_-;

무게가 사라진 시대랄까. 심각함이 사라진 시대.
나 역시 너무 가벼운 것은 싫지만 또 너무 심각하기만 한 것에 잘 공감할 수가 없다.
볼때마다 농담따먹기만 하는 사이도 싫지만, 볼때마다 심각한 소리만 해대는 사람 또한 그다지 달갑지 않으며, 이런 사람과 같이 일하거나 같이 산다는 것 역시 고역일 거 같다.

여섯명의 작품 모두 괜찮았지만 박세진씨의 회화와 책들이 맘에 들었다.
`재미있었기` 때문에.residues #6.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