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백화점 지하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왔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익숙한 길을 걸으며, 어떤 장소나 지역에 익숙해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곳의 지도가 머리 속에 자리잡기 시작하고, 그 지도가 점점 넓어지고, 점점 상세해지고, 시간의 축을 따라 그 장소에 대한 여러 버전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가는 그런 일들에 대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묘한 편안함과 애착의 느낌에 대해. 이대 앞, 연남동, 경복아파트 사거리, 몇몇 동네들이 머리 속을 스쳐간다.
지하철역의 문 닫힌 헌책방 앞을 기웃거리다가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두권 있어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이 헌책방은 저녁에 문을 연다.
며칠 전 지인에게 이 헌책방 얘기를 들었다. 지금의 주인은 원래 이곳에 자주 들르던 손님이었는데 이곳을 너무도 좋아해서 십년 전 쯤 인수해 직접 운영하고 있다는. 내가 주인을 본 것은 두번 정도였는데, 책을 매만지고 정리하는 품새에서 그가 그 일을 꽤 즐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창문 밖에서만 보던 Ken Don의 화집을 드디어 사러갔을 때, 중간에 찢어진 페이지가 있다고 못팔겠다는 걸 그래도 사겠다고 했더니 값을 얼마간 깎아주었지. 말투와 표정에서 온화한 삶을 살아온 사람의 기운이 풍겼다.
화장을 짙게 하고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일본 관광객들 틈에 섞여 지하철 계단을 올라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는 여기서 무얼 하고 있을까 가끔 생각한다. 어디서 뭘 하고 있다 해도 이런 건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때마다 물 위를 둥둥 떠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떠내려가다가 찰칵.하고 사진을 찍어두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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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가고싶네요. 어렸을 때는 동네에 헌책방이 2개나 있어서 자주 구경갔었는데.
이 헌책방은 아저씨가 들어가 있으면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