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꽁돈의 섭리

잡글.blarrr 2010. 12. 16. 12:57

간만에 꽁돈 비슷한 게 생겼다. 사실 공짜는 아니고 오래 전에 번역한 책이 이제야 나오게 되어서 생긴 건데, 이런 돈 생겼을 때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이름하여 '전액 기부'.

십년 전 쯤인가, 이번과 비슷하게 꽁돈이 생긴 적이 있었다. 그때도 공짜 돈은 아니었고 일해준 거 못받고 있다가 일년도 더 지나서 어쩌다 돈을 받았었는데(금액도 이번과 비슷), 그 돈으로 산 디지털카메라를 일주일도 안돼서 택시에 놓고 내렸다. 꽤 속이 상했는데 그 와중에 깨달은 건 '공으로 들어온 건 쉽게 나가는구나'였다. 그때처럼 쉽게 나가기만 하면 좋겠지만(이 경우는 어쨌든 내가 일한 댓가로 받은 돈이었으니), 정말로 눈먼 돈이 엄청나게 굴러들어온 경우 오히려 큰 화를 입었다는 얘기도 숱하게 들었지 않나.

그 일이 있은 후 부터 노동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해선 안된다고 생각해왔고, 혹시나 꽁돈이 생겼을 때는 적은 금액이나마 꼭 기부를 하곤 했다. 부자여서도 아니고 착해서도 아니고, 꽁돈 때문에 지금 내가 가진 행복이 달아날까봐 두려워서. 돈은 언제든 벌면 되지만 행복이란 게(남이 보기엔 별 거 아닌 거라도) 내겐 그렇게 얻기 쉬운 게 아니라서..

전액 기부는 처음이다. 이 돈으로 뭘 할까 생각하다, 봄이 오면 지인이 보살피는 길고양이들 중성화 수술을 해주기로 했다. 서울 같으면 구청에서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지원비가 나오지만 그곳은 지방이라 아무리 찾아도 그런 게 없단다.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의 필요에 관해서는 더 길게 쓰고 싶지 않다. 사람이 아닌 고양이에게 돈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부연 설명하고 싶지 않고. 어쨌든 이 돈이면 암컷 고양이 다섯 마리 정도, 수컷 고양이는 아마 10-15마리 정도는 넉넉히 중성화 수술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지금 살아있는 놈들이나마 영역 다툼 먹이 다툼 없이 좀더 편안한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수술 후에도 이 놈들을 잘 보살펴달라고 지인에게 당부를 해뒀다.

돈이란 게 참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더라. 얼마 안되는 돈인데도 '화장품 하나만 사고 나머지만 할까'라든가 '카메라 십년이나 썼는데 그 돈이면'하는 생각들이 나도 모르게 들더라. 그래서 이렇게 글 올려둔다.

나중에 내가 느닷없이 새 카메라 샀다고 하면 '길고양이 중성화는 어떻게 된 거야?'라고 의심해주시길.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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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20 08: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noyuna.tistory.com BlogIcon yuna 2010.12.20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네요. 월급 받기보다 번역료 받기가 훨씬 힘들죠. 한 지 오래돼서 다행히 잊고 있었어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