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6-7년간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정치에 대한 포스트를 올려본 적이 한번도 없는 것 같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관심이 없어서. 난 선천적으로 '세력'이란 데 관심이 없고 '정치적'인 인간들을 싫어한다. 그런데 이번엔 올려야겠다.

그것은 지금의 정치가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들 하겠지'라는 이전의 내 신뢰를 전적으로 짓밟고 있고, 지금 당장 옳고 그름을 따지기가 힘들지만 장기적으로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의 삶과 환경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칠 일들이 지능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국민(나)을 완벽하게 바보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두번째가 제일 중요하지만 사실 제일 화가 나는 건 세번째다).

나는 2000년 민노당과 이후 진보신당이 생긴 이래 거의 모든 선거에서 이 두 당을 지지해왔고, 내가 보아온 거의 모든 김규항씨의 글에 공감해왔다. 글밖에 못읽어봤지만 존경하는 분이다. 그렇지만 이번은, 이 글은 어쩐지 그럴 수가 없네. 특히 "중앙정치든 지방정치든 그 안에서 도무지 해결이 안 되면 언제든 촛불을 들고 짱돌을 들고 나가면 된다"는 그의 말에 공감할 수가 없다.

첫째로 나는 지금이 '해결이 안되면 그땐' 운운하며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누가 나랏돈을 얼마 해먹고의 차원이 아니다. 돈이나 권력은 회수나 복원이 가능한 가치지만 사람들의 삶의 질이나 지구 환경은 그게 훨씬 어렵다. 한마디로 나는 지금이 급박하게 '그만둬!'라고 외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고, 그게 당장 효과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둘째로, 나는 가능하면 쉬운, 합법적이고(이 말이 요즘같은 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판단이 안되지만), 안전하고, 우아한(!) 길을 택하고 싶다(우리 모두 그렇지 않은가?) 선거라는 좋은 도구를 놔두고 왜 우리가 촛불과 짱돌을 들고 거리에 나가야 하나? 미안한데 난 그런 것 귀찮고 무섭고 싫다(최후의 수단으로는 생각해보겠다. 최후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그리고, 촛불 들고 나가서 "이명박 정권의 패악질을 잠시나마 멈추게"해서 무엇이 달라졌나? 무엇이 달라질까? "2년 전에 촛불 들고 광우병 운운하던 사람들 지금 다들 쑥 들어갔쟎아"라는 아는 분 말에 나는 대답할 말을 모르겠더라. 뭐가 달라졌는지 누구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시라. 내가 잘 몰라서 그런다. 진짜로.

...휴...

그런데 제일 큰 문제는, 나의 안전하고 우아한, 그러면서도 당장 효과가 있어야 할 그 길조차 확신이 안 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밤중에 다 해놓은 잡채를 먹을 생각도 못하고 이렇게 노트북을 붙잡고 있다. 게다가 이번 선거가 대선이나 총선도 아니고, 어디에 누가 된다고 해도 거기에서 '당장 그만둬!'를 외칠 수 있는 힘이 나오는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난 정말 그냥 예전처럼 정치에 무관심하고 내 먹을 것에만 신경 쓰는(그러나 지구 환경에는 약간 신경써주는) 한마리의 바퀴벌레로 살고 싶다.

내일 아침에 범 야권 후보 진짜 완전 단일화!라는 소식이 들려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 쪽이든 상관 없다. 어차피 티비도 신문도 안보는 나는 양쪽 다 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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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rawberry 2010.06.02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욥! 저도 투표하고 왔습니다.

    2년 전에 촛불 들고 광우병 운운하던 사람들 지금 다들 쑥 들어갔쟎아" 이 질문에 대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그때 촛불 들고 설치던 애들 중 반은 이명박 찍은 애들이야. 기대하는 게 어리석지 않아?"

    김규항씨야 뭐... 아스트랄계에 거주하시는 분이죠. 진보인사들이 대체로 그래요. 현실감각이 없어요. 자기들의 이데아에서는 완벽한 사실들이 지상으로 내려오면 이그러질수도 있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죠.

    • yuna 2010.06.07 1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아스트랄계...
      저는, 우리 모두가 어쩌면 자신만의 아스트랄계에 잠깐씩 거주하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자주 갔다오는 분도 있고 가끔 갔다오는 분도 있겠죠.

  2. 시바 2010.06.07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거 전날 이렇게 피토하듯 글을 남기셨군요. 김규항씨의 공격적인 글쓰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저로선, 유나씨의 느낌에 충분히 공감. 국민의 저항권을 그렇게 쉽고 가볍게 말해버리는 건, 무언가에 꼬인 심산정도로밖에 안보이거든요.

    2년전 촛불집회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말하긴 역시 어려운 듯. 86년 6.10항쟁이 대통령직선제를 이끌어냈지만 선거결과가 달라진 건 없었던 것처럼요. 하지만 저에겐 뭔가 희망을 준 건 있어요. 정말 최후에도 참을 수 없어서 거리로 나갈 때 군중들과 함께 움직일 순 있겠구나. 헌법 근간에 존재하는 국민의 저항권이 적어도 행사는 될 수 있겠구나 하는.

    • yuna 2010.06.13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거 다음날... 지역별로 확연히 갈리는 선거 결과를 지켜보면서... 내가 뭔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국민을 바보취급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이 국민은 어리석은 게 아니라 탐욕스러운 거였어요.
      조중동에 쩔어 속고 있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가진 얼마 안되는 것들을 지키기에 급급해 도덕 따위 (더구나 지구 환경 따위는) 개한테나 줘버린 사람들이라는 게 문제였어요.

      물론 가진 것도 없으면서 정말 불쌍하고 순진하게 속고 있는 사람들도 얼마간 있겠지만, 이들은 선거 때마다 내가 의아해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들'이 아니지요...

      시바님 말씀대로 저도 얼마간 희망을 보긴 했지만, 저는 인간에 관련된 문제에 관해서는 비관론자 쪽에 좀더 가까운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