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백김치를 담갔다. 이번이 아마 네번째 쯤 되려나. 문성희님의 '평화가 깃든 밥상'을 보고 만들었는데 처음엔 책에 나온 대로 양을 정확히 지켜서, 그 다음에는 국물을 조금 적게, 그 다음에는 배추를 좀 덜 절이고 야채를 많이 넣고, 이런 식으로 조금씩 변화를 주어보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양념이나 채소의 양을 어떻게 변화시켜도 익고 난 후에는 다 맛있었다. 그 맛은 양념에서 오는 게 아니라 곡물과 야채가 발효되는 데서 오는 것 같다.

평화가 깃든 밥상 
문성희 지음/샨티

어쨌든 이제 대충 내 입맛에 맞는 레시피를 찾은 것 같아 기록을 해둔다. 나는 요리에 별로 소질도 없고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휙휙 양념을 던져넣을 수 있는 '요리의 대인배'도 아니라서, 항상 양을 기록해두고 그대로 요리를 한다. 그러니까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블로그에 요리의 기록을 올리는 이유는 미래의 나를 위해서다. 지금도 피클을 담그거나 오곡밥을 하거나 미역국을 끓일 때 항상 내 블로그 글을 검색해서 열어놓고 시작한다.

백김치는 지난번 처음 시도했던 단식 이후 식욕을 되찾아준 고마운 음식일 뿐더러, 아마 내가 할 수 있는 음식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일 것이다. 지금으로선 그렇다. 먹을 때만 좋은 것이 아니라 김치를 담글 때의 그 평화로운 느낌과 냄새가 좋다. 생강이나 마늘, 쪽파, 미나리 등 강렬한 냄새를 가진 풀들을 자르고 다질 때의 냄새도 좋아하지만, 절여진 배추에서 나는 희미한 바다 냄새 같은 것과 오곡가루에 남은 싱숭생숭한 풀냄새, 그리고 약초맛물을 끓이고 난 후 건져서 그대로 우적우적 씹어먹는 표고버섯의 냄새도 아주 좋다. 그리고 김치를 다 먹고 나서 잘 익은 백김치 국물을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가끔씩 꺼내어 반나절쯤 녹인 후에 소면을 삶아 말아먹으면 맛있다. 이 소면의 아이디어 역시 문성희님 책에 나온 것.

재료

  • 배추 작은 것 2개 + 굵은 소금
  • 김치속 재료 : 무 1/4개, 노랑, 주황 파프리카 반개씩, 미나리, 청갓 100-150g씩
  • 약초맛물 : 물 1000ml에 표고버섯 1-2개, 구기자 반큰술, 황기 1/2뿌리, 오가피 줄기 하나, 다시마 사방 10cm, 칡뿌리 작게 자른 것 1개, 둥굴레 반줌, 뽕잎도 네다섯개쯤 넣어 20분쯤 끓인 것
  • 오곡가루 300ml : 현미찹쌀4, 차조/차수수/기장/찰보리1의 비율로 간 것
  • 양념 : 다진 생강, 다진 마늘 1큰술씩, 쪽파 한줌, 산야초 효소 50ml, 집간장 80ml
  • 배 큰것 1개

위에서 말한 대로 문성희님 레시피를 내 입맛에 맞게 조절했다(나는 아주아주아주 싱겁게 먹는다). 책에는 배추 2개 기준으로 나왔는데 백화점 유기농 코너에서 구할 수 있는 배추는 정말 작은 쌈배추 밖에 없어서(그나마 구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양념의 양을 반으로 줄였고, 채소를 좋아해서 김치속의 양은 그대로 했다. 그리고 문성희님 책에서는 마늘과 쪽파를 넣지 않지만 나는 마늘을 엄청나게 좋아하기 때문에 넣기로 했다. 안넣어도 맛있긴 하더라. 그리고 배는 너무 비싸서 하나만 -_-;;

만드는 법

  1. 배추를 반으로 쪼개서 물에 흔들어 건진 뒤 굵은 소금을 속까지 잘 뿌려 4시간 정도 절인다. 중간에 소금이 잘 스며들게 뒤적뒤적 해주고, 다 절인 후에 물에 3분쯤 담갔다가 흔들어서 건진 후 물기를 대충 뺀다(책에는 물에 헹구라는 말은 없는데 그대로 하면 좀 짠 것 같아서...).

    소금은 생협과 올가에서 여러가지를 사서 써봤는데 백화점에서 산 굵은 천일염이 잡맛이 없고 제일 나았다. 온라인에서는 어디서 파는지 모르겠다.

  2. 배추가 절여지는 동안 김치속 재료를 모두 3cm 길이로 채썬다. 처음엔 대파도 넣었는데 이후로는 빼고 쪽파만 넣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뭘 넣더라도 대세에 지장은 그다지 없다 -_-;

  3. 약초맛물에 오곡가루를 넣고 끓이면 걸죽한 풀 상태가 된다. 이것을 식힌 후 양념을 넣어서 섞는다.

  4. 김치속 재료에 3번 풀을 3분의 2쯤 넣고 버무리면 김치속이 된다.

  5. 절여놓은 배추의 잎 사이사이에 김치속을 넣고 저장용기에 담는다. 중간중간에 배를 1/8 정도로 큼직하게 썰어서 넣어둔다.

  6. 남은 3번의 풀을 배추들 위에 붓고 뚜껑을 덮어 실온에 하루밤 정도 둔다.

    위쪽 사진은 처음 했던 백김치, 아래쪽은 국물의 양을 줄인, 오늘 한 백김치.

나는 김치냉장고 같은 게 없어서 그냥 냉장실에 넣어두는데, 사오일쯤 후부터 가장 맛있고 열흘쯤 후까지 먹을 수 있다. 그 이후엔 상하는 건 아니겠지만 좀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