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검정 새끼 고양이를 그렇게 보내고 난 이틀 뒤에 그보다 좀 큰 삼색이 한마리가 왔다. 이녀석 역시 길에서 구조되었는데 그동안 데려가는 사람이 없어 안락사 위기에 처해있는 상태였다.

예전에 처음으로 고양이를 키울 생각을 하면서 고양이를 '고르지' 말자고 결심했었다. 가족의 인연을 선택할 수 없듯이 반려동물과의 연도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선택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고양이란, 귀한 품종의 비싼 고양이건 길거리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고양이건 모두 한결같이 아름답고 우아하니 고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리고 더 큰 이유는 아마 나란 인간 자체가 의기양양 선택받는 쪽보다는 선택받지 못하는 쪽에 공감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길고 우아한 털에 날씬한 몸매를 가진 고양이나 작고 귀여운 새끼고양이보다, 출렁거리는 뱃살에 '몸매 따위 흥!' 하는 초월한 표정을 가진 사십대 아저씨 삘의 똥고양이들에게 더 끌리는 변태 취향이다(이건 내 생애 첫 고양이인 방울이와 키키 영향일 수도 있다).

어쨌든, 어떤 사연으로든, 나한테 온 고양이라면 그게 곧 연이라고 생각했지만,  검정 고양이한테 쏟았던 마음이나 정성만큼 이 삼색이한테 쏟을 수 있는 마음이 비어있었던 것 같다. 처음엔 귀엽다는 생각도 사랑스럽다는 생각도 그다지 들지 않았다. 애가 꽤나 당당하고 거칠 것 없는 성격인 데다 특별히 돌봐주지 않아도 혼자 잘 챙겨먹고 방울이 키키한테 주눅들지도 않아서 더 그랬던 듯.

  • 이번엔 삼색이 녀석이 왔네. 생후 세달 정도 된 것 같고 밥을 걸신들린 것처럼 먹더니 바쁘게 집안 탐색중. 하하... 2009-06-12 19:39:28

  • 왠일로 화 안내고 급 관심 보이며 친해지고 싶어하는 키키 2009-06-12 20:29:09

  • 그런 키키에게 무안하게 하악을 날려버린 녀석. 키키 빈정상했어야. 덩치도 작은게 겁도없네. 2009-06-12 20:37:03

  • 높은 곳에서 눈빛으로 제압중인 방울이. 방울이 앞에선 녀석이 얌전해지네. 희한하다. 지난번 병원에서 만난 삼색이도 그랬지. 아무래도 잘생겼쟎아! 후후후후 이번엔 서로 잘 적응하길. 2009-06-12 20:43:55

  • 그건 방울이 자센데 2009-06-12 21:59:27

그러다가 삼일쯤 후부터 구토와 설사가 시작되었고, 닷새쯤 후 '회충 사건'이 있었다. 근본을 알 수 없는(?) 녀석이라 아마도 길에서 이것저것 주워먹은 탓이었을 게다. 검정 고양이에 이어 이번에도 거의 신경쇠약 직전이 되어, 병원 다녀오고 온 식구(고양이3+인간1)가 구충을 하고도 이후 며칠 동안 잠을 거의 못잤다. 거의 두시간마다 벅벅벅 화장실 모래 긁는 소리가 나는데, 그때마다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쫓아가서 휴지로 녀석 똥을 받아 변기에 버리고 락스 희석한 물에 적신 걸레로 바닥에 혹시 묻었을지도 모를 것들을 싹싹 닦아내고 다시 자리에 누워 눈을 붙이고.

새끼 고양이 한마리 더 키우는 게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는 생각을 했다. 일주일 넘게 일은 진행이 안되고, 잠은 부족하고, 머리는 안돌아가고, 녀석은 옆에서 화분 흙을 퍼내거나 실내화를 물어뜯거나 유리병을 쓰러뜨리거나 방울이 키키 사료를 뺏어먹거나 책상 위로 올라오거나 내 발을 물어뜯거나 하며 온 동네 참견을 하고 다니고...

생각해보면 (회충을 제외하고는) 화분 흙을 짓밟고 혹은 설사를 묻히고 나와서 온 방안을 돌아다닌다든가, 잘 시간에 우다다다 배와 얼굴을 밟고 뛰어다닌다든가 하는 것들 모두 방울이 키키 어렸을 때 다 겪었던 일인데, 이젠 다 커버려서 놀자고 해도 안놀고 벌렁 드러누워 '여기 좀 주물러 보아', '털 빗을 때가 됐는데' 하는 녀석들과 살다 보니 잊고 있었던 거다.

  • 어제부터 계속 설사와 구토. 엄마품이 그리운지 저 담요를 젖빨듯이 빨면서 꾹꾹이를 한다. 그래도 깨어있을 땐 …(잘 노는데. 가느다란 목이 안쓰럽다. 주사기로 설탕물 먹이고 닭가슴살 다져서 먹였더니 잘 먹는다. 밥 잘먹고 어서 방울이처럼 돼야지 녀석아.) 2009-06-16 10:55:47

  • 새끼 고양이가 새벽에 토했는데 살아있는 긴 벌레가 ㅜ.ㅜ 나왔어요. 기생충이란 본 적도 없어서;; 완전 패닉상태임. 흑흑. 방울이 키키한테 옮지나 않았는지 엉엉엉 동물병원 몇시에 여나 엉엉엉엉(살아있었어요 벌레가 ㅜ.ㅜ. 그래도 원인을 알아서 다행. 이제 치료만 하면 되는 거야!)2009-06-17 06:51:05
  • 그러고보니 세수도 안하고 나왔네 2009-06-17 11:14:53
  • 모두들 구충제를 먹고 바르고 락스와 알콜로 온 집안을 문지르는 중!(지문이 없어진다) 2009-06-17 13:46:53
  • 꼬맹이 얘 당분간 '회충쟁이'라고 부른다.(아니다 '숙주'라고 부를까?) 2009-06-17 16:30:27

  • everything is back to normal 2009-06-18 11:11:20
  • 쫄면 먹으면서 지인에게 메신저로 어제 기생충 자료 찾다가 나온 아프리카 소년 사진 이야기 해주는 중.(수술하려고 마취중인데 코와 입으로 굵기 약 0.5센치 되는 애들 서너마리가 슬슬슬슬~ 기어나오는 사진. 링크 찾아서 좀있다 올려야지 쫄면좀 먹고. 어제는 앞으로 면 종류 절대 못먹을 거 같았는데. 망각이란 좋은 것이여)2009-06-18 21:32:05
  • 어쩜 애가 잠도 안자. 이명박보다 더 부지런하겠어. 피곤하다 정말 2009-06-21 06:56:40

다시 닷새 후 병원에 가서 예방 접종과 귀청소를 하고 구충약을 더 타왔다. 그동안 설사는 멈추었고 밥도 잘 먹고,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갔다. 1킬로도 안되던 놈이 닷새동안 200그램이 불어났다고 의사선생님 놀라셨다. 이후 계속해서 먹는 양이 늘어나고 있고, 방울이 키키를 점점 더 못살게 굴고 있고, 변기 훈련 2단계를 성공적으로 수행중이다.

  • 새끼 고양이 녀석 사과랑 수박, 계란, 못먹는게 없다. 나는 삶은 계란을 네개째 먹고 있고. 좀 힘이 든다.(방울인 며칠째 먹질 않고. 키키가 제일 착하다.) 2009-06-22 01:42:10
  • 꼬맹이는 완전 접대묘! 관리실 아저씨 형광등 고치는 거 감독중. (방울이 키키는 평소처럼 으슥한 곳으로 자취를 감춤) 2009-06-23 19:27:51

  • 꼬맹이는 늙은오빠들의 활력소 (이름을 '똥꼬'라고 지을까 생각중. 똥꼬에 까만 얼룩이 그려져있다. 덕분에 똥꼬가 지저분해도 잘 알 수 없다) 2009-06-24 13:05:21

  • 꼬맹이 업둥이 데려다주신 분이 이름을 '지지'라고 지어주었다. 카우보이 비밥의 그 zizi(라고 나는 멋대로 생각해버렸다). 2009-06-27 16:05:01

    첫 목욕 후

  • 꼬맹이 지지를 데려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인가! 녀석의 천방지축 날뜀에 자극받아 키키가 전에없게 방안을 달리곤 한다. 옆구리 살이 흔들려 맘대로 턴이 안되고 가속도가 붙어 정지를 못하고 현관문에 쿵 부딪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흐뭇하네. 흐뭇해.(방울이는 여전히 잠고양이) 2009-06-27 16:08:23
  • 꼬맹이 이름을 잘못 지은 것일까. 애가 잘 때 침을 질질 흘리고 자는데 침 냄새가 ㅎㄷㄷ; '깔끔이'로 지을걸 그랬나. 2009-06-28 23:41:44
  • 꼬맹이녀석 방울이키키를 꽤 귀찮게 한다. 하지만 방울이키키는 때리는 척만 하지 실제로 때리진 않는다. 착한 녀석들. 2009-06-29 00:40:10

  • 방울이 녀석 내가 보고있으면 변기에 올라가 싸고 내가 안볼 땐 꼬맹이 모래화장실에 슬쩍 싸고는 시치미를 뗀다.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가보다.(똥 굵기가 세배다 이놈아) 2009-07-01 04:48:54

  • 꼬맹이 발광 덕에 몇시간 못자고 일어나고 말았다. 쟤는 무슨 의무 발광 시간이라도 채워야 하는 것처럼 열심이다. 애가 아주 힘들어서 헉헉거리면서도 쉬질 않아. 2009-07-01 10:45:39
  • 방울이 키키 한세트요 2009-07-02 03:18:30

  • 꼬맹이 온 뒤로 소소하게 없어지는 게 많네. 이십년 된 삔 두개나 없어졌고 맥미니 리모콘도 없어졌고. 어디다 감췄냐 이눔시끼 2009-07-05 05:01:24

이 글은 yuna님의 2009년 6월 12일에서 2009년 7월 5일까지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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