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대학때 같은 과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있었던 수업은 젊고 친절한 교수님이 가르치던 컴퓨터를 이용한 타이포그래피(정확하진 않지만 내 기억에... -_-;)였고, 가장 인기 없었던 수업은 은발의 노교수님이 가르치던 '디자인 철학'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 집을 짓는 일. 모두 '다른 사람이 볼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다. 보는 데서 끝나기도 하고, 그 안에 살거나 그 안에서 일하기도 하고, 그것을 써서 무언가를 하기도 한다는 점은 다르지만 일단은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느낌이, 좀더 바란다면 '의도'가 전달될 수 있다. 보여지는 것을 통해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려면 다음의 두가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1. 어떤 시각 요소가 어떤 이유로 어떤 심리적 효과를 가져오는지
  2. 어떤 도구와 재료로 그 시각 요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눈빛이 형형한 은발의 노교수님에게서 내가 배운 것은 전자요, 젊은 교수님에게 배운 것은 후자였다(물론 젊은 선생님도 전자를 가르쳐주셨다. 내 기억에 없을 뿐. 하하). 전자는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어떤 것을 보고 '좋다', '아름답다', '기분나쁘다', '답답하다' 등의 느낌을 갖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대화하거나 무마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시절 내가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 수업 중 하나였다.

이 책은 건축에서의 이 두가지를 모두 다루고 있다.

이 책에는 총 4부에 걸친 건축 이야기와, 저자가 뽑은 다섯개의 건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현대 건축과 전통 건축을 이루는 구체적인 요소들에 대한 자료가 부록으로 들어있다. 1부에서는 점, 선, 면과 덩어리에서 시작해 비례와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일) 공간을 이야기한다. 조형 예술이나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다 배웠을 기본적인 요소들이지만 매일 지나치던 건축물들에 대입되면 자못 흥미진진하다.

... 그러나 이보다는 전문가의 간단한 해설을 듣고 자신이 직접 그려보는 것이 더 그림에 쉽게 접근하는 길이다. 붓을 쥔 이의 애환을 그제서야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건축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건축을 이해하겠다는 의지로 실제로 건물을 지어보자고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건축가가 된 듯 가정하는 것이다.
- p.22

이제까지 드러난 것처럼 건물을 보면서 필요한 것은 "저렇지 않다면?" 하는 가정이다. 즉 "저렇게 꺾이지 않았다면?" "저렇게 잘라내지 않았다면?" 하는 상상이 우리가 건축을 감상하는 데 필요한 훈련의 첫걸음이다.
- p.76

2부에서는 벽돌, 철, 유리, 콘크리트 등 대표적인 건축 재료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중세, 근대와 현대의 건축 재료와 건축 방법의 변화같은 실제적인 건축 이야기가 나온다. 건축가가 아닌 사람이 쓴 건축 이야기와의 차이를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무리 '건축가가 된 듯 가정'한다고 해도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니까.

이 아름다움은 단지 벽돌을 쌓았다고 해서 그냥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쌓았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도 얼마나 '조심스럽게' 쌓았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벽돌무늬를 인쇄한 벽지를 바른 것이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쌓음의 흔적은 줄눈에 새겨진다. 여기서 건축가는 시멘트 줄눈을 모조리 깊이 파냈다.
- p.114

건축가는 채석장에서 만들어지는 원석의 크기와 이를 잘라낼 톱날의 크기와 돌을 사용할 벽의 크기 사이 어딘가에 있을 적당한 값을 찾아내기 위해 몇 번이나 경제성을 저울질하는 것이다... 소화전이나 엘리베이터 스위치도 이 선 안에 꼭 맞게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돌의 줄눈이 애매하게 중단되지 않고 잘 맞도록 조정하는 것은 건축가들에게 천재적인 기지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근면함은 요구한다. 그리고 시공자의 성실한 협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건물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부분이 되기도 한다.
- p.125

벤딩모멘트를 고스란히 따라가면서 만들어저 꽉 짜이고 시원하게 뻗은 '성산대교'의 아름다움은 이유 없이 덧붙여진 판 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덧붙여진 부재는 엔지니어의 명쾌한 논리가 아닌 또 다른 의지의 개입에 의하여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 p.156

자신의 일을 이루는 가장 미시적이고도 구체적인 단위(벽돌)에 대한 이해와, 기술의 반복적 연마(줄눈 맞추기)를 다 지나온, 그리고 건물을 만드는 사람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의 어떤 힘과도 여러번 맞서본 사람이 쓴 글이다.
(그래. 내가 뒤적거렸던 - 몇 안되는 - 다른 건축 책들에서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게 이거였어. 나는 이런 게 알고 싶었단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이 위에서 말한 두가지만을 다루었다면 '인문적 건축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을 수 없었을 것이다. 3부 '건물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다'에서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그 안을 지나는 움직임, 촉감과 소리, 그 안과 밖을 지나가는 빛과 그림자, 그리고 그것이 견뎌내야 하는 세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4부 '건물과 도시를 누가 만드는가'에서는 건물과 건물의 관계, 건물이 모이고 길이 생기고 도시가 모습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그 시대 인간들의 정신이 어떻게 그 모습에 직, 간접적인 영향을 주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가 스스로 이 책의 결론이라고 이야기하는 '건축은 벽돌과 콘크리트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으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비로소 조목조목 풀려나오는 것이다.

건물은 지어지는 과정에서부터 철거되는 순간까지 사회와 계속 관계를 맺는다. 고층 아파트를 짓겠다고 저층 아파트를 허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총독부 청사를 허무는 예와 같이, 건물은 존재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회의 정치, 경제적 논리를 반영하게 된다. 누가 자본의 흐름을 통제하고 권력의 중심에 가까이 있느냐 하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건축에 반영된다.
- p.247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는 세가지 종류의 직업이 있고, 그에 따라 기본적으로 일에 대한 세가지 종류의 태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1. 일은 내가 한때 배웠던 기술로 먹고 살 돈을 버는 수단이며, 인생의 긴 시간을 보내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활동이다. 일이란 게 다 그렇지 뭐.
  2.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 일을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더 빨리 일을 끝내고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알 것도 같다. 나는 이 일을 잘 할 수 있고, 그것이 자랑스럽다(아님 말고).
  3. 매일매일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문제를 풀고 나면 뭔가 새롭게 깨닫게 되는데, 이건 다음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 재미있다(재미있어야만 한다).

내가 얘기하려는 것은 물론 세번째 인간들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을 이런 정도의 통찰력을 얻기까지, 그리고 그것을 책으로 내기까지, 이사람 정말 이 집짓는 일을 즐겼을 것이다. 자신의 일을 이루는 가장 미미하고 구체적인 단위(웹사이트로 치자면 픽셀 하나하나 정도?)에 대한 이해와 기술의 반복적 연마에서 시작해, 매일매일 일을 해나가면서 좀더 크고 깊고 추상적인 깨달음과 이론이 머리 속에 차곡차곡 쌓여갔을 것이고, 그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것을 누군가에게는 꼭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이야기해야만 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은 이런 책이다.

하긴 뭐는 다르겠나. 다 인간이 하는 일이다. 특히 '다른 사람이 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이런 종류의 일에서, 모든 결과물의 뒤에는 인간의 정신 - 관계, 의도, 의지, 힘 같은 온갖 형태의 정신 - 이 도사리고 있으니 흥미진진할 수 밖에. 그것을 뒤지고 곱씹다 보면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인간들에 대한 이해해 도달할 밖에. 그 이해는 결국은 '글'로 쓰여져 남에게 읽혀지는 것이고. 그래서 이 책이 '인문적 건축 이야기'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일생 동안 끽해야 한두가지, 많아야 서너가지의 직업 밖에는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 한가지에서만이라도 이런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재미있을까 생각한다.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깨달은 것들이라도 한번 기웃거려보고 싶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인간에 대한 이해는 아직 모르겠고) 벽돌 사이의 깊이나 건물 벽의 줄눈, 건물 앞의 공터, 주차장과 계단의 위치까지 눈여겨 보게 된다. 지겹게도 길고 황량한 지하철 환승로를 설계한 사람과 지하철을 디자인한 사람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니,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는데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지하철이 제공하는 것은 여행이 아니고 운송이다. 사람은 승객이라기보다 움직이는 소포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사실 도시 생활에서 지하철을 타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이제 선택의 문제를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밤에 지나가는 기차의 불 켜진 창을 보고 기차의 영혼이 있다고 느끼는 감수성을 담을 여지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어도, 손잡이를 붙들고 서 있어도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앞 사람의 피곤한 얼굴이다. 아니면 그보다 더 피곤한 내 얼굴이다. 그러다 보니 지하철 안에서는 무신경하게 신문을 들여다보거나 눈을 감고 졸면서 이 좁고 긴 지하 공간을 벗어날 시간만을 가늠하게 된다.
- p.183



흠.
건축가가 쓴 건축 이야기를 읽었으니 이제 '이 책을 구입한 분들이 제일 많이 구입했다'는 건축가가 아닌 사람이 쓴 건축 이야기를 읽어봐야겠구나(보통 씨는 안 건드린 분야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