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새벽 산책

산보.picnic 2008. 9. 10. 05:52







환하지만 아직 햇살이 비추기 전의 세상.
비슷비슷한 집들이 가득 들어선 좁은 골목길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들이 하나둘씩 걸어나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강변에는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바람이 불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들이 로봇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같은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강가의 벤치에 앉아있자니 등뒤에서 노란 햇빛이 비추었다.

통통한 아주머니가 옆에 와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누구를 향해 치는 박수도 아닌 모양인데, 다음에는 배로 박수를 쳤다. 철썩철썩. 그리고 팔을 붕붕 돌리고, 그후 어디론가 가버렸다. 조금 후 늙은 남자가 구명대 옆에 서서 강을 바라보고 '으악'하고 소리를 질렀고, 반짝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온 중년의 남자와, 자전거 없이 걸어온 중늙은이는 강을 보고 나란히 서서 서로 아무말도 않고 이쪽저쪽으로 굽신굽신, 허리를 움직이더니 한명, 또 한명 가버렸다.

아침 숲은 뭐랄까, 색도 냄새도 달랐는데, 거기에 취해 한참을 걷다 보니 마약이라도 한 듯 몽롱하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동네 도서관에서 달디단 하드를 하나 물고, 신문을 들여다보는 척 하고, 책을 실컷 보고, 집에 돌아와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

해가 지는 것을 보는 것만큼이나
해가 뜨는 것을 보는 것도 좋았다.
달콤한 하루. 달콤한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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