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2022-03-12 10:05 올해는 베란다 개장이 늦었다. 아직은 기온이 조금 차가운데, 역시 루시가 제일 먼저 나가서 봄의 맛을 보고 방울이 할아버지는 뜨뜻한 내 침실에 누워서 뭐하냐며 얼른 오라며 찡찡거리고 있다.
흐린 봄날의 일상.
……

박근혜 정권 2년째인 2013년에 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 후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 몸은 회복하고 있었는데 마음은 점점 지옥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유방암 유전자 때문에 암이 또다시 재발할지 모른다는, 통제불가능함에 대한 두려움에, 어차피 다 죽는다는 삶의 부질없음에, 세상이 온통 옳지 않은 것 투성이라는 불신에, (나를 포함한) 인류라는 어리석고 추한 종에 대한 절망과 짜증에, 검고 마주하기 힘든 감정들이 켜켜이 쌓이고 또 쌓여서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불교 공부와 수행을 시작했고… 그렇게 살아남아서… 문재인 대통령 시절을 보냈다. 기쁘고, 대부분 평안했고, 마음이 놓이는 시간이었다.
……

얼마 전부터 갑자기 몸에서 이상한 증상들을 느꼈는데 그게 우려하던 암 재발의 초기 증상과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밤에 자주 잠에서 깨어 두려움에 떤다. 엊그제는 한시간마다 잠에서 깼고, 새벽에 선거 결과를 확인한 후로는 더이상 잠들지 못했다. 설마 아니겠지 하던 게 현실이 되었고, 설마 또 암은 아니겠지 하던 마음 한 구석도 어쩐지 같이 무너졌다.

오래되고 익숙한 두려움의 목소리와, 지난 몇년간 자라난 또다른 목소리가 내 안에서 하루종일 싸웠다.
‘그것 봐.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 나는 아무것도 몰라. 너무 무서워!’ 그런 목소리가 한쪽에서 미친 듯이 내달렸고 한쪽에서는
‘그래.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겠지. 이런 날들을 위해 그동안 공부하고 수행한 거 아냐? 내 몸은 그때보다 쇠했지만 내 마음은 어떨까. 어떻게 변했을까. 한번 알아보자. 게다가 잘 따져보면 지금 걱정할 건 하나도 없어!’
그런 목소리가 조그맣게 애를 쓰고 있다.
……

나중에 생긴 목소리가 이겼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겠지. 병에 걸릴 수도, 죽을 수도 있고, 그보다 더 큰 상실이 있을 수도 있겠지.
지금은 그저 일상을 지켜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년일기

2022-03-13 14:34 #shopping

2022-03-12 17:30 #뒤꿈치각질 #중년일기

2022-03-13 1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