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2021-08-13 12:17

2021-08-13 15:11 카톨릭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보고 왔다.
코로나 때문에 임종하시기 전 가족 두명만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우린 하루에 두명인 줄 알고 갔다. 입구에서 관리하시는 분이 안된다고 하셔서 못보고 돌아오나 하고 병원 앞 마당에서 망연자실해 하고 있었는데… 수녀님 한분이 나오셔서 마지막으로 할머니 보고 가라고 하셨다. 코로나 검사를 받고 기다려서 할머니를 보고 나왔다.

우리 형제 여섯명 중 네째 춘심이까지 할머니가 키웠다. 어려서 우린 할머니 덕분에 성당에 다녔고 영세를 받았다. 할머닌 수십년 동안 매일 새벽마다 모든 식구들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기도를 했다. 내게도 항상 성당에 나가라고 기도하라고 했다. 나는 그냥 건성으로 대답하곤 했지만 정말 힘들 때는 나도 모르게 성당을 찾았고 주기도문을 외웠다. 일하다 힘든 일이 있을 때 할머니랑 통화를 하곤 했다. 일 얘기를 한 건 아니고 주로 할머니 얘기를 들었다. 대부분 옛날 얘기랑 아빠, 고모들 자랑이랑 성당 다니라는 잔소리였지만 할머니랑 얘기하고 나면 속상했던 것들, 다른 데서 받은 상처들을 조금 잊곤 했다. 언젠가부터 할머닌 좀전에 한 얘기를 반복해서 하기 시작했고, 그나마도 나중엔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자기 얘기만 했다.
왕할머니.

할머니는 힘들어보였다. 할머니한테 나 왔다고 얘기하고, 이마를 한참 쓰다듬어주고, 손과 발을 쓰다듬어주고, 고맙다고 하고 나왔다.

평화롭고 조용하고 오래된 병원의 앞마당에서 2년 가까이 못본 누룽게이네 가족을 봤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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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보고 나왔는데… 어쩐지 예전에 살던 집(우리 어렸을 때 살던 삼정주택)에 가면 예전 모습 그대로의 할머니가 있을 것만 같다. 재작년에 우리 동네 아파트에서 다른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전에 살던 아파트 쪽에 산책을 갔는데, 우리가 살았던 집에 가면 거기에 또 다른 내가 아직도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었다.
그 또다른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낯설었다. 낯설고 좀 부러웠다.

1년 뒤, 10년 뒤의 나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그는 지금의 나를 부러워할까.

2021-08-13 16:29 형제들 식구들 모여앉아 맛있는 거 먹으면서 실없는 농담을 하고 낄낄 웃다가 스르륵 잠들고 싶다. 쓸데없는 얘기도 잔뜩 하고 싶다.

 

2021-08-13 20:47 이번주 슬의생 보면서 여러 모로 생각이 많아진다.
정원이 엄마 치매인 줄 알았다가 수두증이라며 안심하는 거 보고 우리 엄마도 저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고…
아들 딸 눈치 보며 살면 얼마나 더 사냐며 뇌종양 수술을 하지 않겠다는 할머니. 딸이 말리는데 그 자리에서 수술하겠다고,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겠다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할머니 아들 딸의 대화를 보면서, 사람답게 산다는 게 뭔지, 생각하게 된다.
피곤하다. 일주일쯤 자고 싶다. 오늘은 똥맛 차 마시고 일찍 자야지.
#tvshow #슬기로운의사생활2 #S02E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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