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 2018-12-18 11:50 파김치가 되어 누워있다 겨우 일어나 아침 겸 점심. 명상모임의 은주님이 나눠주신 고구마와 동치미 한그릇.

  • 2018-12-18 21:42 동생이 수술을 해서 서울대병원에 병문안을 왔다. 종합병원은 아산만 다니다가 여길 처음 와봤는데, 잠깐 돌아다녔는데도 문제가 여럿 보였다.

    1. 사인 시스템
    방향을 알려주는 사인 시스템에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없고 난잡하며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졌다. 보여야 할 곳에서 보여야 할 정보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얘기하기 시작하면 너무 길어지니 #할많하않

    2. 공간 디자인
    동선이나 목적에 따라 공간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았다. 대기 공간과 이동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화물이나 환자가 지나갈 때 계속 이리저리 비켜야 했고, 검사와 진료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안과 진료실 한쪽에서는 상담을 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는 검사를 하느라 불을 껐다켰다하는 등;; 혼란스럽고 불편했다.

    공간 내의 동선이나 편의 역시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듯. 2인실인데 화장실 안에는 변기와 샤워시설만 있고 세면대는 화장실 밖, 그러니까 다른 환자와 보호자가 있는 공간에 놓여있다. 손을 자주 씻어야 하기 때문에 세면대를 바깥에 내놓은 것 같은데, 동생은 다른 환자와 보호자가 있는 공간에서 이를 닦고 손을 씻고 세수를 해야 하는 걸 꽤 불편해했다. 아산병원은 화장실 안과 문앞에(환자 침대 옆이 아니라) 세면대가 두개 있어서, 환자는 편하게 화장실 안에서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세수를 할 수 있고, 보호자나 방문자는 환자나 다른 보호자를 방해하지 않고 손을 씻거나 간단히 이를 닦거나 할 수 있다.

    3. 보호자 편의
    게다가 이건 병원 정책이거나 무슨 이유가 있나 싶을 만큼 보호자의 편의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보호자가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입원실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카드를 찍고 출입해야 하는 곳에 있는 데다 층마다 한칸 뿐이어서, 보호자들이 입원실 내의 환자용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심지어 샤워까지 하곤 한다. 복부 수술 환자는 화장실을 급하게 자주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른 환자의 보호자가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어이없는 상황.

    보호자들이 뭔가 먹을 수 있는 곳은 ‘직원식당’ 밖에 없다. 직원식당에는 환자복을 입은 동생과 같이 들어갈 수 없어서 (사실은 이런 기회에 평소에 못먹던 컵라면을 먹고 싶어서;) 컵라면을 샀는데 앉아서 컵라면 하나 먹을 공간이 없어서 라면이 불어터질 때까지 헤매다가 환자 식판을 가득 실은 커다란 카트들이 왔다갔다하는 ‘배선실’이라는 곳에 가서 뜨거운 물을 부어 선 채로 컵라면을 먹었다(편의점 계산원이 가르쳐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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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병원 지하의 호화로운(...) 쇼핑몰과 식당가, 병원 곳곳에 있는 아름답기까지 한 휴게 공간들을 생각하며 “병원 구경 가자!”고 나섰다가 대실망. 병원이라 뭐 할일도 없고 병문안이라는 원래 목적에 충실하게(...) 보호자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이 장문의 글을 쓴다.

    국내 최고의 대학 병원이 이런데 다른 데는 오죽할까 싶고, 역시 민간 자본이 좋은 건가 싶기도 하고, 이렇게 불편한데도, 그걸 알면서도 굳이 여길 오는 사람들의 사정과 심정도 이해가 가고, 그렇네.

    아산병원의 고객 경험이 그렇게까지 훌륭했던 데는 모든 걸 고객 입장이 되어 지켜보고 설계하고 그 설계 그대로 구현할 수 있었던, 그만한 권력을 가졌거나 등에 진 집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경험 디자인에서는, 이렇게 크고 복잡한 구조에서는 더더욱, 권력 혹은 권한이 중요하지. 이게 꼭 민간자본이라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 같은데...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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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 수술은 잘됐고, 몸이 붓거나 열이 나는 등의 증상들이 있었으나 이런저런 관들을 제거하고 일어나 걷기 시작하면서 대부분 좋아졌다. 내일 퇴원한다고.

    고향에선 요양원에 계시던 엄마가 폐렴으로 입원을 하셨다. 형제들 모두 마음을 졸였는데 나쁜 상황은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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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지구가 아픈 것과 사람이 아픈 게 별개일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수긍할 수 밖에 없더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지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