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토요일.
생각보다 늦었다 생각하면서도
설렁설렁 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운이 좋은 건지...
넷째주 토요일 무료입장에 밤 9시까지 야간 개장.
덕분에,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걸 할 수 있었다.
사람없는 박물관 전시실을 유령처럼 돌아다니기.
지난번 고고관도 마음에 들었지만 2층에도 예쁜 것들이 가득하다.

17세기 조선 전김식이라는 화가의 '고목과 소'
따뜻함이 풍겨나온다.

역시 17세기 조선 이계호라는 문인의 여덟폭 짜리 거대한 포도그림.
저 의자에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좋다.

한문에 도안을 넣은 병풍.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로 쓰여져서 품격이 넘친다.

나무로 만들어진 '나한' 인형은, 예쁜 고양이를 안고 있다.

나무로 만든 반닫이와 농과 함, 소반, 뒤주, 궤, 찬탁, 장, 문갑, 탁자, 약장...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색색의 죽은 나무들,
묵직하니 낡아 죽은 나무를 그러쥐고 있는 쇠붙이들.
거기 새겨진 장식과 상처들.

그리고 반질반질한 다듬이돌들.

유령처럼 살살 발걸음을 옮긴다.
착 가라앉아 오래된 꿈처럼 흘러가는 박물관 안의 시간이 좋다.
아주 오래된 꿈처럼, 부옇게 흐릿하고 어두운 공간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방과 방을 잇는 모퉁이를 돌아들 때마다
오랫동안 나를 기다렸다는 듯 눈길을 잡아 끄는 그것들.

지난번 카메라를 안챙겨가서 못찍었던 1층 고고관의 신라시대 토우들을 다시 찾았다.
(엄지손가락 보다 작은 이것들이, 내내 눈앞에 아른거렸었다)

이것은 '사랑'

이것은 '춤'

그리고 '죽음'

죽은 자의 영혼을 실어 나른다는 배.

휴대폰, mp3p, 카메라의 모든 배터리와
메모리카드까지 다써버리고서야 집으로 발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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