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내가 동물의(전반적인) 고통에 대해 좀더 민감해진 것은 그들이 인간이 느끼는 감정들을 거의 모두, 거의 흡사하게 느끼고 표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고양이를 키우면서..다.
물리적인 아픔은 물론이고 분노, 질투, 미안함,미움, 애정까지, 인간이 하등동물이라 여기는 많은 동물들이 이 모든 감정을 가지고 있고, 표현한다. 다만 인간이 잘 알 수 없을 뿐이다.


나와 같이 사는 고양이 방울이와 키키는 서로 질투가 대단하다.
방울이는 내 옆에 와서 자리를 잡고 앉을때 꼭 키키의 눈치를 본다.
키키는 저쪽 구석에서 이쪽을 주시하다가 안본척 고개를 짐짓 딴데로 돌린다.
그 작은 얼굴에, 그 털투성이 얼굴에, 자기만 떨어져 있다는 외로움과몰래 쳐다보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겸연쩍음까지, 다 드러난다.
그러다가 점점 삐지고 심술이 나면 슬금슬금 내 발치쯤에 와서 엉덩이를 내쪽으로 하고 자리를 잡고,
더 심술이 나면 몰래 다가와서 가만히 있는 방울이 꼬리를 앞발로 툭툭 치고 싸움을 건다.
그러면 이제, 싸움이 난다.
고양이털이 이리저리 휘날리고, 침이 튀기는(?) 무시무시한 싸움이 벌어진다.


어쩌다 내가 오랜만에 집에 들어가면
반가워서 바닥에 등을 대고 구르고 내 다리에 얼굴을 문지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내 얼굴 가까운 높은 곳에 올라와 쓰다듬어 달라고 얼굴을 들이민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내 눈을 바라본다.
인간처럼 눈가에 주름을 잡지도, 입을 벌려 소리내며 웃거나 얘기하지도 못하지만,
그 동그란 눈과 작게 찢어진 조용한 입만으로도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네가 집에 와서 너무 좋아'라든가 '빨리 먹을 걸 좀 주지 그래?' 등등
나는 이제야 그 표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애정이 가득 담긴 그 조용한 눈
맛있는 것을 주려고 할때나 너무너무 반가울때만 내는 작은 '야오오옹~' 소리

이런 건 대개 막내인 키키가 하는 짓이고, 형인 방울이는 좀더 세심하다.
키키가 청소기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이불 속에 머리만 처박고 달달 떠는데반해, 방울이는 조용히 높은 곳에 올라가서청소기를 빤히 관찰한다.
장난감을 가지고 신나게 놀다가도, 키키가 끼어들면 장난감을 키키한테 내어주고 자기는 구석으로 가서 키키를 쳐다본다. 키키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책장 밑 같은 곳으로 굴러들어가버리면, 키키는 어쩔 줄 모르고 방울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고, 구석에 있던 방울이가 천천히 일어나 장난감을 꺼내준다(방울이가 못꺼낼 때는 내가 꺼내어준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키키가 노는 것을 바라본다.
방울이가 내게 애교를 떠는 경우는 좀체로 없는데, 아주 가끔 키키가 먼저 잠들거나 다른데 정신이 팔려 있으면
내 옆에 와서 아기 고양이처럼 누워 장난을 친다.
'놀고싶어. 장난치고 싶어. 내가 형이라서 점잖아야 하지만, 나도 아직 아기고양이라구'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모든 얘기들을 키우는 사람이 만들어내거나 어느 정도 자기식으로 오버해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만이 고도의 감정을 향유할 수 있고, 동물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어쨌거나 우리는 동물을 죽여 그 시체를 먹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오랫동안 동물과 같이 있다 보면 동물이 마치 사람처럼 내게 이야기를 걸어오는 것을 무시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어쩌면기쁘고 신기한 일이지만, 어쩌면 참으로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나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어쩌면 나와 상관없던 많은 생명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그들의생로병사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는 것.
더 쉽게 말하자면, 내가 먹고 걸치던 것들도이전에는 나처럼 즐겁거나 심술이 나거나 사랑을 했거나 분노했을 한 생명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는 것.
하이고... 인간도 다 챙기기 힘든데,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이 있나. 내가 뭐 그린피스 단원도 아니고...
그저...
나와 인연이 닿은 생명들(사람을 포함해서), 나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생명들에 대해 평생 책임감을 가지자고, 먹는 것이든 입는 것이든 돈이든 뭐든, 불필요하게 욕심을 내어서 다른 생명들에 해가 되는 일은 없게 하자고,
거기까지만 하자고, 생각하고, 생각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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