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오월아...

고양이.cats 2010. 8. 30. 15:51

5년이 넘게 길고양이들 밥을 챙겨주고 있지만 먼저 나타나 밥을 내놓으라고 양양거린 고양이는 처음이었다. 이토록 수다스런 놈도 처음이었고, 자기가 먼저 다가와 바짓가랭이에 궁둥이를 비벼댄 놈도 처음이었다.
길고양이를 쓰다듬어본 것도 처음이었고, 내 손으로 땅에 묻은 고양이도 오월이가 처음이다...
일부러 길고양이들과 너무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했었다. 이런 일이 언젠가는 일어날 줄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인간은 그저 잠깐 즐겁자고 길고양이를 꼬여내지만, 길고양이는 어차피 길에서 살아간다. 인간과 가까워져봤자 위험해지기만 할 뿐이다.


처음 만났던 날 아마 비가 왔던 것 같다. 주차장 옆에 똥글이 밥을 주고 돌아서려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우렁찬(그러나 앳된) 고양이 울음소리. 똑같은 소리로 대답을 하면서 살펴보니 주차장 옆 장난감 가게 창고에 쌓여있는 짐들 틈에서 손바닥만한 시커먼 게 우물쭈물 나왔다. 사료를 씹어먹을 줄 아는 걸 보니 한달은 넘은 것 같았고 아픈 데는 없어보였다. 아마 어미가 버리고 갔는데 비도 오고 먹을 것도 없고 하니까 용기를 내서(라고 하기엔 너무 당당했지만;;) 나를 부른 것 같았다. 밥을 허겁지겁 많이도 먹었다.


  • 아요 그녀석. 얼마전 나타난 애기인데 한달좀 넘었으려나? 목소리가 어찌나 크고 수다스런지, 처음 본 날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고 가보니 배고프다고 밥 내놓으란 거였다. 그후로도 계속 그자리에서 밥을 받아잡숫고 계시다. 약먹는 사진좀 찍겠다고 플래쉬 몇번 터뜨렸더니 입에 밥을 가득 문 채로 나를 째려보면서 "냥냥 냐웅냐웅"(씹으면서 말하느라고) 이런다. 2010-06-16 20:56:27

  • 새끼 고등어 길고양이 녀석, 밥을 다먹고도 안가고 계속 쳐다보며 양양거리다가 가려고하니 같이갈듯 따라나서네. 너무 애절하게 호소하는 울음이라 발이 안떨어진다. 어쩌나. 2010-06-20 20:53:20

  • 밥 달라고 아앙 아앙. 6월 27일

    호기심 만땅의 전형적인 새끼 고양이.

그 후로 녀석은 계속 그 주차장 구석에 살면서 내게 밥을 얻어먹었고, 타고난 재롱둥이라 주차장 아저씨를 비롯해 그곳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귀염둥이가 되었다. 몇몇 사람들이 사료와 간식, 장난감까지 가져다주었고 주차장 아저씨는 자기가 없을 때 오월이가 들어가서 잘 수 있게 퇴근할 때 부스 문을 살짝 열어놓고 가곤 하셨다. 지인과 나는 녀석이 3개월 쯤 되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병원에 데려가서 예방주사를 맞히고 (수의사 아저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심장사상충약을 발라주고 귀청소를 해주었다.

  • 어제 그 주차장 새끼고등어 녀석. 이녀석 알고보니 주차장 관리하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한테도 귀염을 듬뿍 받고 있다. 아저씨 출근시간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한시간반쯤 놀고 어디로 사라져서 저녁 먹을 때 쯤 또 나타난다고. 다행이다.('아줌마 뭐 찍어여? 네? 네? 네?') 2010-06-28 19:25:01

  • 그년(똥꼬 보니 암놈임) 이젠 손 닿는 데까지 와서 애웅거리며 아양을 떤다. 어쩌라고. 아무래도 소라찜님이 데려가셔야 할 듯. 기생충약도 먹였어요 :=) 밥도 잘먹고 똥도 잘묻는대요. 2010-07-04 20:31:50

  • 잡혔어 꼬맹이. 처음에 화 엄청 내더니 조용해졌네. 2010-07-13 19:54:41

    me2photo

  • 주사 맞을 때나 귀청소할 때도 어찌나 얌전한지 얘가 길고양이 맞나 싶더라니까. 게다가 또 어찌나 깨끗한지. 우리 방울이보다도 털이 깨끗하더라고. 2010-07-13 21:15:04
  • 오늘 어떤 아줌마가 그러더라. 왜 고양이한테 그렇게 잘해주냐고. 그것도 길고양이한테. 사람도 그냥 좋고 이뻐서 잘해주고 싶은 사람 있지 않나? 막 밥도 사주고 싶고 선물도 해주고 싶고. 고양이한테 그러면 안되나? 아무리 성자라 해도 세상 모든 사람을, 생명을 구원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한번에 한사람이라도 구원할 수 있으면 족하지. 난 스스로 나를 찾아온 한 고양이만 건강하게 할 수 있어도 족하고 기뻐. 그래서 기쁘다. 오래 행복하게 살아줘. 꼬맹이 길고양이씨. 2010-07-13 23:49:18

  • 녀석, 휴일이라 주차장 아저씨도 안나오시고 해서 하루종일 심심했던 모양이다. 아주 비비고 난리네. 아무한테나 그러면 안되는데… 내 신발만한 녀석. 꾀는 나보다 말짱한 듯. 하하 2010-07-18 20:52:22

  • 좋은날. 그동안 안보이던 똥글이가 나타나서 오월이(같이 밥주는 분이 꼬맹이 고등어에게 지어준 이름) 조우. 새침한 똥글이 밥먹다 말고 약간 하악질. 꼬마 여자애랑 아줌마랑 주차장 주변인들이 다들 귀여워서 난리..지만… 어딘가에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인간들도 있을 테지. 오월이 똥글이 둘이 마주보는 장면을 찍었는데 흔들리고 각이 안나왔네. 2010-07-27 18:56:33

    기분 좋아서 빳빳하게 치켜든 꼬리.

  • 오월이년 지지난주만해도 주차장 초소 옆에 꼭 붙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심심했다고 놀아달라고 성화더니 이젠 주변 길로 막 뛰어다니면서 내가 가도 딴 데만 정신이 팔려있다. 차가 워낙 많은 동네라 걱정일세. 2010-08-04 20:43:55

  • 지지를 데리고 가서 오월이와 인사시켰던 날. 지지가 있건 말건 오월인 역시 막 아양을 떨었다. (이에 지지 표정은 굳었다;;;) 2010년 8월 8일

  • 하드를 뒤져 가장 최근 찍었던 오월이 사진을 찾아냈다. 똥글이가 오랜만에 밥먹으러 나와서 둘이 또 만났던 날. 2010년 8월 15일

  • 오월이, 똥글이, 넓적하고 못생긴 터주대감 고등어, 지난번 회충약 이인분 먹고 튄 삼색이년, 가끔 오는 조심스런 노랑이, 뚜비두님네 나비닮은 새끼고등어. 요즘의 단골손님은 이렇게 여섯인듯. 오늘 이중에서 다섯놈 봤으니 대박인 셈이다. 요즘 밥도 많이 먹는듯. 벌써 겨울준비하나? 2010-08-18 19:51:06
  • 오월이가 차에 치어 죽었어요.. 2010-08-29 20:20:38
  •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 하나하나가 누군가 다른 생명들로부터 사랑받고 소중히 여겨지기를. 갑작스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생명들은 모두 좋은 세상에서 평안히 잠들기를. 다시 태어날 때는 천수를 누리기를. 기원한다. 2010-08-30 02:35:25
  • 쓸쓸하네. 오월이 무덤에 들렀다가 길고양이들 밥을 주러 가니 무서운 아저씨네 체육사 앞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어서 무서워서 밥을 못주고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서 오월이 사진을 보고 있었어. 그때 동네 사는 지인의 어머니가 마르티즈 두마리를 업고 지나가시다가 '가자! 뭐가 무서워. 지들두 끼니 되면 배고프다고 밥먹는데 애들두 먹어야지.'라며 앞장을 서시길래 따라가서 밥을 주었지 :-) 2010-08-30 18:52:15
  • 이사갈 준비하다 오월이 건강수첩을 찾았다. 수의사 아저씨가 만들지 말자고 했는데 우겨서 굳이 만들었던. 내일이 삼차접종 하기로 했던 날이다. 이사 2010-08-31 10:47:17

  •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이가 들 수록 그런 게 겁이 난다. 교통사고에서 한쪽 눈과 두 귀를 잃고도 살아남은 고양이 얘기를 보면서 오월이도 혹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 어떤 상처는 잊어버리고, 회복되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도려져나가는 것 같고... 그런 식으로 점점 마음이 작아지는 것 같다. 2010-09-07 08:46:25


차가 많은 동네라고 걱정만 하지 말고 그때 입양처가 났을 때 보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주차장 아저씨가 잘 키워주신다는 말 믿지 말고 그냥 보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일 많다고 길고양이 밥을 지인에게 미루지 않고 일찍 가서 줬으면 오월이가 그 찻길까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일요일은 주차장 아저씨가 안나오시는 날이라 저녁에 밥주러 가보면 왜 이제야 왔냐는 듯 애앵거리고 난리를 쳤었는데.

"오월이가 차에 치어 죽었어요"라는 울음 섞인 목소리의 전화를 받자마자 문을 박차고 나가 미친 여자처럼 울며 뛰어갔다. '아. 이럴 줄 알았어야 했는데...'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신문지 위에 눕혀진 오월이의 시신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지 않았다. 차가 머리 위로 지나간 모양이었다. 그 예쁘던 오월이 얼굴이 못알아볼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고 한쪽 눈이 튀어나와 있었다. 내게 다가와 궁둥이를 비빌 때 항상 그랬던 것처럼 오월이 등허리를 어루만져주었는데 살아있을 때처럼 따뜻하고 말랑말랑했다. 내가 조금만 일찍 왔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가슴이 죄어드는 것 같았다. 나만 보면 항상 기세좋게 빳빳하던 꼬리는 힘없이 처져 있었다. 우습게도, 그 와중에 나는 오월이를 땅에 묻기 전에 꼬리를 어떻게 두면 좋을까 하고 고민했다. 기분 좋았을 때처럼 위로 올려줄까 아니면 안정감있게 다리 쪽으로 붙여줄까 하고. 그런데 어떻게 묻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오월이가 항상 뛰어놀던 주차장 옆 화단에 묻어주었다. 오월이를 들고 가면서 '너무 가볍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작았다... 오월에 나서 이제 겨우 네 달을 살았을 뿐이다.

지인의 집에서 물을 얻어마시고 진정한 뒤 나와서 오월이 무덤 옆에 한참 앉아있었다. 어느 구석에 있다가도 내가 밥주러 가면 항상 어디선가 애앵 하는 소리를 내며 촐랑촐랑 뛰어나오곤 했었다. 단 하루도 녀석을 못본 날이 없었다. 단 한번, 한참을 불러도 나오지 않아서 가슴이 철렁했던 날이 있었는데 또 어디선가 졸린 눈을 비비는 듯한 표정을 하고 애앵거리며 나타났었다. 분명 거기에 오월이를 묻었는데 또 어디서 오월이가 애앵 하면서 나올 것 같아서 오월아 오월아 하고 몇번이나 불렀다.

못되고 보기싫은 것들은 질기게도 살아남는데, 예쁜 것들은 너무도 쉽게 스러져간다. 오월이 사진을 다 모아보아도 그저 이것밖에 안되더라. 그게 기가 막혀서 또 눈물이 난다.
나도, 지금은 마음이 텅 빈 것 같이 슬퍼도, 얼마 안 지나 오월이를 잊겠지.
나는 모든 걸 잘 잊어버리니까.


잘 가. 오월아.
잠깐이었지만.. 네 덕분에 세상이 아름다웠었다. 
사람들하고 고양이들하고 같이 어울려서 행복하게 사는 세상 꿈을 잠깐 꾸었었어.
고맙다.

P.S. : 어제 밤에 키키가 계속 옆에 엎드려서 그릉그릉 자장가를 불러주더라. 나랑 눈을 마주치면 눈을 껌뻑껌뻑 하면서. 덕분에 몇시간이나마 눈을 붙였다. 지지년도 변함없이 놀자고 징징대면서 방석에 오줌을 싸놓아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자다가 문득문득 깨어서 지지야! 방울아! 하면서 두리번거렸다(부른다고 오지는 않는다. 쳐다봐주기만 해도 감지덕지다).

오월이 사진을 몇장 더 찾아내서 덧붙였다. 그러고보니 지지랑 인사도 했었구나. 지지한테 '오월이 죽었어'라고 했더니 까불다가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다른 글 같으면 비슷한 사진들 중 하나씩만 올리고 나머진 버렸을텐데 이 글은 그럴 수가 없네. 그냥 나한테 있는 오월이 사진을 너무 많이 흔들린 것들 빼고 다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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