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2017-08-23 21:14 #불한당 사람들이 권하신, 읽기도 전에 마음에 든 책.
이북으로 나왔다!
#books #불교를철학하다​​​​​

​2018-03-25 12:18 ‘지금 다가온 연기적 조건은 과거와 다른 삶을 향해 업의 방향을 바꾸게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만족할 수 없는 업의 궤도에서 벗어나려면 지금 조건에서 어떤게 좋은 삶인지를 매번 다시 생각하고, 매번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 작년에 읽다 다른 책에 밀려 중단했던 이진경의 ‘불교를 철학하다’를 다시 꺼내들었다. 겨우 일년도 안됐는데 그때 그었던 밑줄과 지금 긋고 싶은 밑줄이 다르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아졌다.
#books #이진경 #불교를철학하다


'사람의 의지가 스며든 "모든 유위법이 꿈같고 환영같다"라고 할 때 '환'이란 개인의 주관적 착각이 아니라 모두의 이 필연적 착각을 뜻한다고 해야 한다. 모든 여래의 열반이 '유위도 아니고 유위를 떠난 것도 아니'라 함은 그것이 실상이 아님을 알기에 그 착각에 머물지 않지만, 동시에 현실적으로는 피할 수 없고 유용하기도 한 착각이기에 그것을 그저 '거짓'이라며 떠나지도 않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
무상의 실상을 놓치고 있음을 지적하는 '인식론적' 관심보다는 동일화하려는 의지의 다른 이름인 애착과 집착으로부터 각자의 삶을 벗어나게 하려는 '윤리학적' 관심에 따른 것이다. '저 사람 몸에 꽂힌 화살이 어디서 어떻게 날아온 것인가를 아는 게 아니라, 그 화살을 얼른 뽑아 치유하는 것'이란 <아함경>의 얘기가 뜻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2018-03-25 16:00 불교의 십이연기 중 첫번째 ‘무명’에 대한 해석.
밑줄을 긋다가 한 페이지를 다 그어야 해서(...) 포기했다.
도법스님이 십이연기를 짚고 넘어가자고 하신 데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었군. 열두개의 덩어리에 대한 설명을 아무리 찾고 들여다봐도 그 관계가 이해되지 않고 의문만 늘어가던 차에 이 글을 읽으니, 역시 너무 쉽게 봤구나 싶다.
#books #이진경 #불교를철학하다

2017-03-25 18:06 ‘고통의 발생에 열두개의 단계나 필요한가? 앞에 나오는 ‘식’과 뒤에 나오는 육처(오감+정신)에 의한 ‘수’는 또 뭐가 다른가?’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통찰이.

‘식’은 인간 이외의 모든 생명에게서 살기 위해 일어나는, 그리고 인간에 있어서는 육처 이전의 세포 수준에서 일어나는 식별 작용을 말한다.
#books #이진경 #불교를철학하다​

2018-03-26 14:29 십이연기 중에서 두번째로 이해가 안갔던 것은 '취(clinging)' 다음에 어떻게 '유(existence)'가, 그리고 '생(birth)'이 오냐는 것이었다. 좋아하고 집착하는 것에서 어떻게 '존재'가 생겨나고 탄생이 이어지지?

이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취착하는 마음은 자신이 달라붙어 있는 것이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어'주기를 욕망하게 된다. 취착을 조건으로 유가 생겨난다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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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착하는 마음은 생멸하는 변화만이 있음을 인정하지 못한다. 있다고 보이는 것에 집착하여 존재를 지속하는 '유'라는 관념을 만들어낸다.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생멸은 그런 유가 달라져가는 것으로 간주된다.
...
생멸하는 것의 어느 한순간을 억지로 멈춘 것이 '유'이건만, '유'가 있고 그것이 생멸한다고 뒤집어 생각하는 것이다. ... 있음과 없음을 대립시키고 생성을 존재에 복속시키는 이 전도된 관념 속에서 생에 집착하고 노사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십이연기란 '무상한 세계의 실상에서 시작해 그 무상한 세계를 '노사'라는 상실의 고통으로 느끼는 과정에 대한 해명'이라고 말한다. 무지에서 전도몽상으로, 그리고 고통으로 이르는 과정의 해부학인 셈이다. 그리고 그 고통을 어떻게 기쁨과 긍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관한 짧은 이야기로 끝맺는다.

하아아. 무릎을 침.
어제와 오늘에 걸쳐 이 책에서 말하는 십이연기를 (나의 취미이자 즐거움인) 한장의 도표로 정리해보았;;;후후후후

#books #이진경 #불교를철학하다​

2018-03-28 14:02 이진경의 책 '불교를 철학하다'의 '자비'에 관한 장에서 달라이 라마의 이야기를 읽었다.

"우리 자신의 친구들에게(즉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베푸는 자비와 사랑은 사실은 집착입니다. '나의 것'이고 '나의 친구'이고 '나'를 위해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집착입니다."

좁디좁은 나의 인간관계에서도 가끔 파도가 치듯 들고나는 움직임이 있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 생각과 같지 않다는 것을, 혹은 나에 대한 태도가 변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에 대한 내 호의는 얼마나 빨리 사그라들었던가. 아마 그에게 가졌던 호의 만큼 밉고 싫은 감정은 더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나는 내가 하려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아니 들으려고 하지 않은 그를 속으로 비난하며 '그런 사람과의 관계는 더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지'라고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사실 그가 '나의 편'이고 '나'를 위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틀어진 데 대한 실망과 짜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란 뭘까?

'달라이 라마는 '인간 아닌 것을 포함하는 '모든 중생이 나와 마찬가지로 기쁨을 얻고자 하고 고통을 피하고자 함을 인식하는 것'으로 평등한 자비심이 나온다고 말한다.'

나와 가까워서, 불쌍해서, 같은 고통을 겪어서 불쌍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저 사람도, 모든 사람이 '잠재적 부처'라는 생각에 기반해 나와 그 모두의 '기쁨의 증가와 슬픔의 감소를 추구'하는 것이다.

#books #이진경 #불교를철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