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lifelog


  • 2017-06-07 14:40
    머리말
    '붓다는 인간이 되는 새로운 방식을 찾으려고 했다.'
    - 인간이 되는 새로운 방식. 뭔가 어색해서 원어로 뭐였을까 궁금했는데 계속 되뇌어보니 'being'을 가장 적절히 번역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는'도 아니고 '존재하는'도 아닌 '되는'.
    #books #스스로깨어난자붓다​​

    '괴로움이라는 현실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 다면 영적 삶은 시작도 할 수 없다. 그 현실이 우리의 존재 전체에 완전히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한 다른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느끼는 데서부터 영적 삶은 시작한다.'

    1. 버림
    '그는 닙바나가 인간에게 완전히 자연스러운 상태이며, 진정으로 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고타마는 자신이 구하는 자유를 이 불완전한 세상 한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신들이 주는 메시지를 기다리는 대신 자신 안에서 답을 찾으려 했고, 자기 정신의 가장 먼 영역을 탐사했으며, 자신의 모든 신체적 자원을 활용하려 했다. 그는 제자들에게도 똑같은 일을 하라고 가르쳤으며, 누구도 자신의 가르침을 귀로 듣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누구든 그가 제시한 해결책의 타당성을 자신의 경험으로 입증해야 하며, 그의 방법이 진정 효과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해야 했다. 신들에게 저는 아무런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다. 고타마는 신들이 존재한다고 믿었지만 신들에게 별 관심은 가지지 않았다.' (p.41)

    2. 구도

  • 2017-06-12 12:55 '그것이 한 개인을 바꾸고, 삶의 고통을 덜어 주며, 궁극적 해방의 평화를 주거나 혹은 그것을 얻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가?' (p.87)
    - 멋진 시대였군.
    #books #스스로깨어난자붓다​

    '중도(middle way)'에서 '가운데 중'을 굳이 쓴 이유.​

    불한당에서 반야심경을 접한 이후 줄곧 '고통(이 책에서 말하는 '둑카')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고통의 유형에는 싫어하는 것을 마주해야 하는 고통과 좋아하는 것을 잃는 고통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보니 하나가 더 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그리고 육체의 고통과 정신의 고통에 대해서도 줄곧 생각하고 있다. 어느 쪽이 더 제어하거나 manipulate하기 쉬운가(내 경우는 육체적 고통은 상대적으로 쉽다), 이 둘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인가, 둘은 어떤 관계인가 등.
    ​그리고 (정신적) 고통의 원인.

    지난주 불한당 뒷풀이에서 참선이나 명상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토론이 뜨거웠는데, 이 책을 읽으니 좀 이해하겠다. '자기 중심주의를 완전히 벗어버리기, 개인적 선호를 버리고 아무런 사심 없는 자비심을 택하기' 위한 것. 이것을 매 순간 능숙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욕망과 고통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의식 상태에서 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시간을 투자하고 집중을 해야 하는 것. 정말 매일매일 운동하는 것과 비슷하네.​

    '깨어있는 마음의 효과가 나타나고 능숙한 상태들을 계발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고타마 자신은 적어도 7년은 걸린다고 말했으며, 새로운 자아는 오랜 기간에 걸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한다고 강조했다.'(p.137)
    - 인간의 몸 세포가 모두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이 7년이라고 들었는데 마음이 바뀌는 데도 꼭 그만큼이 걸리는구나. 신기한 일이다. 아니, 몸이 곧 마음이니 그럴 수 밖에 없는지도.

    ​고타마가 깨달았다는 네가지 진리. 그래. 앞의 세가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고.

  • 2017-06-13 23:51 붓다(고타마 싯다르타)의 생애를 다룬 책을 보며, 불한당 가입 이후 지난 1년의 내 고민과 결론들이 붓다가 갔던 길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내게도 언젠가 "다 이루었다!"고 외칠 수 있는 때가 올까.
    #books #스스로깨어난자붓다
    (부처님이 다 이루었다며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모습 상상하니까 웃기다ㅋ)​

    '붓다가 규정한 명상과 도덕이 없으면 진리들은 음악의 악보 - 악보에 적힌 음악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거나 능숙한 연주자가 해석할 때만 드러난다 - 처럼 추상적인 것이 되고 만다.'
    - 이건 정말 탁월한 비유인 듯.​

  • 2017-06-15 13:01 '곧 역겨운 공포는 사라지고, 행복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이 즐겁고 평화로워졌다는 것은 깨달음을 위한 적절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뜻이었다.'
    - 내가 도법스님을 뵐 때마다 느끼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그러나 '영혼으로 스며든 진리'는 너무도 빨리 영혼을 빠져나가버리고...
    #books #스스로깨어난자붓다​

  • 2017-06-16 13:34 진화 과정에서 유전자가 살아남기 위해 식욕과 성욕이라는 강력한 욕망의 코드, 동지와 적의 구분, 호불호의 본능을 인간에게 심었다. 지금도 우리는 끊임없는 생존 경쟁 한가운데 서있는데, 붓다의 가르침은 너무 착하기만 하다. 깨어있음이나 고통의 공감, 자비만으로 적대적인 환경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나? 성욕이라는 본능을 억누르고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넘길 수 있나?
    라는 의문이 슬슬 일어나기 시작할 무렵...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의 5장 '전도'에는
    '고귀한 진리들은 일반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나온다. 붓다는 욕망에 기반한 생업을 이어가고 후손을 낳는 일반인들이 깨달음을 얻기는 어렵다고 보고 수도자와 일반인을 위한 설교를 구분했다고. 그래서 '수도자들은 명상의 기술을 배우는 반면 일반인들은 도덕성에 촛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지킬 수 있는 '초보자들을 위한 담마'로 오계(죽이지 말 것, 훔치거나, 거짓말하거나, 취하거나, 성적으로 난잡하지 않을 것)를 권장했다(하아아 정말 고민 많이 하셨구먼). 어쨌든 일반인이든 수도자든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원칙은 같았다.

    * 상가(지금의 절) 밖에서 일반인이 혼자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있었는데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즉시 상가에 가입하거나 아니면 죽었다'고 함. 조심해야겠음ㅋㅋㅋㅋㅋ 함부로 깨달으면 안되겠엌ㅋㅋㅋㅋㅋ.

    #books #스스로깨어난자붓다​

    2017-06-16 역자 후기도 참 좋았다.​

  • 2017-06-26 14:09 지난주 #불한당 모임에서 초전법륜경을 공부하다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에 한 말 "나는 깨달았다,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는 말의 의미를 스님께 물었다. "석가모니는 윤회라는 것이 없다고 얘기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면 윤회가 있다는 것을 긍정한 것인가요?"라고.

    도법스님은 여기서의 '윤회'를 '고(통)'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고 답하셨다. 석가모니 자신은 윤회를 믿지 않았지만 당시 모든 사람들이 윤회를 당연한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윤회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수 있다고. (이 외에도 불교 경전에는 불완전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거나 애매한 부분이 꽤 있는 것 같다.)

    다른 걸 찾다가 우연히 아래 구절을 발견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뭔가 다른 것이 되기를 갈망하고, 어딘가 다른 곳에 가기를 갈망하며, 가지지 않은 뭔가를 얻으려고 갈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계속해서 다른 형태의 환생, 새로운 종류의 존재를 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p.131 사진 참고).

    뭔가 다른 것이 되려는 갈망은 고통을 낳는다. 이 '다른 것이 됨'의 궁극적 형태가 환생이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석가모니의 '더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 아닌 과거나 미래에 대한 갈망에서 벗어남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결론: 아아 도법스님 말이 맞았구나ㅋㅋㅋㅋ
    #books #스스로깨어난자붓다​